AP통신, NFT로 역사에 '진본' 도장 찍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기술복제 시대의 새로운 아우라

데스크 칼럼입력 :2022/01/12 21:56    수정: 2022/01/12 22:1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어린 소녀가 울면서 달려오고 있다. 함께 뛰는 다른 아이들도 겁에 질린 채 울고 있다. 아이들의 뒤에선 총을 든 군인들이 따라오고 있다. 

AP 종군 기자인 닉 우트가 촬영한 ‘베트남-전쟁의 테러’ (Vietnam - Terror of War)란 사진에 담긴 장면이다.

흔히 ‘네이팜탄 소녀’로 불린 이 사진은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반전 여론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진을 찍은 닉 우트는 1973년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AP의 특종 사진. (사진=AP)

AP가 역사의 현장에서 건져 낸 사진은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다. 6.25전쟁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폭파된 대동강 철교’ 모습 역시 AP가 잡아낸 역사속 특종이다. 이 사진을 찍은 막스 데스포 기자도 퓰리처 상을 받았다.

■ AP, 맥락 정보까지 담아 '디지털 진본' 만들 계획 

역사의 기록자를 자처한 AP통신이 대체불가토큰(NFT)을 이용해 방대한 사진 기사를 판매하는 장터를 만든다. AP는 블록체인 기술 업체 슈아(Xooa)와 협력해 오는 31일 NFT 마켓플레이스를 오픈한다.

이 장터에선 우주, 기후, 전쟁 관련 사진들을 순차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네이팜판 소녀’나 ‘폭파된 대동강 철교’처럼 퓰리처 상을 받았던 명품 사진들도 함께 판매될 예정이다.

NFT는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상품에 ‘원본성’을 부여해주는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세계 유일의 진품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따라서 AP의 NFT 사진은 세계 최고 통신사가 인증해주는 디지털 진본 사진이다.

AP는 NFT 사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역사성’에 '현장성'을 덧붙인다. 촬영 시간과 날짜, 위치, 장비, 기술사항 등 원본의 메타데이터를 담을 계획이다. 촬영 장비와 카메라 설정 같은 정보까지도 제공한다.

AP는 사이트를 통해 NFT 마켓플레이스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그 동안 CNN,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많은 언론사들이 NFT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에서도 여러 신문, 방송사들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기사나 방송을 판매했다.

따라서 AP의 NFT 마켓플레이스는 특별한 뉴스는 아닐 수도 있다. 게임, 음반사, 캐릭터사업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너도나도 NFT 사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AP의 NFT 마켓플레이스에 관심을 갖는 걸까?

그건 AP의 남다른 장점과 관련이 있다. AP는 그 어떤 언론사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진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AP 기자들은 격변의 현장에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달려갔다. 이런 방대한 역사적 기록물에 ‘디지털 진본’이란 가치를 곁들일 경우 상당한 매력을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일까? AP가 NFT로 사진을 판매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발터 벤야민이 90여 년 전에 썼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란 글을 떠올리게 됐다.

벤야민은 당시 막 관심을 끌던 사진을 ‘기술복제’란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그는 완벽한 기술복제에도 한 가지는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아우라’라고 표현했다.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는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위축된다는 것이 벤야민의 주장이었다. 이는 곧 예술작품의 진품성이란 말로 바꿀 수도 있다. 벤야민은 이렇게 주장한다.

“어떤 사물의 진품성이란, 그 사물의 물질적 속성과 함께 그 사물의 역사적 증언 가치까지 포함하여 그 사물에서 원천으로부터 전승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 개념이다.”

■ 사진 이후 사라졌던 아우라, NFT가 살려낼까

벤야민의 기준으로 접근할 경우 역사현장을 담은 AP의 많은 사진들은 이미 ‘진품성’이 상실돼 있었다. 우리가 접한 사진들은 결국 ‘기술복제’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AP의 NFT 사업은 아날로그 시대에 사라졌던 ‘사진 특유의 아우라’를 첨단 디지털 공간에서 되살리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사업에 유독 더 관심이 쏠린다.

AP는 NFT 사진 2차 거래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메타마켓을 비롯해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등 저명 거래소들과도 적극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2차 거래될 경우 10% 수수료를 받게 된다. 수수료는 블록체인 기술 협력사인 슈아와 나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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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복제가 일반화된 디지털 시대에 역사물 기록물에 ‘아우라’를 입히겠다는 AP의 야심찬 시도는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역사적 증언 가치’에 ‘현재적 의미’까지 덧붙인 AP의 NFT 사진이 시장에서 신선한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

멋진 개념이 ‘또 다른 투기’의 대상 취급을 받고 있는 NFT 시장이 AP의 이번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 못내 궁금하다. 그래서일까? 이 소식을 접하면서 책장 깊숙이 꽂아놨던 벤야민의 케케묵은 책을 계속 뒤적이게 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