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언론’이란 말이 유행했던 적 있다. 발행부수나 영향력이 확연히 차이나기 때문에 생긴 용어였다. 한 때는 기자들조차 ‘메이저’ ‘마이너’란 말을 썼다. 한쪽에선 ‘선민의식’을 담아서, 또 한 쪽에선 ‘자조감’을 담아서 썼다.
실제로 그 땐 메이저 언론과 마이너 언론 보도의 영향력이 크게 차이가 났다. 이른바 마이너 언론이 특종 보도할 때는 아무런 반향이 없다가, 메이저 언론이 받아 쓰면서 사회적 의제가 된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도 ‘메이저 언론’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규모와 발행부수로 매체를 가르는 것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그런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8일 기자 회견에서 ‘메이저 언론 발언’으로 구설수에 휘말렸다. 윤 후보는 이날 '고발 사주'의혹과 관련된 기자회견에서 "인터넷 매체 말고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제기해라”고 말했다.
매체환경 급속하게 변하면서 메이저·마이너 구분 무의미
이 발언에 대해선 이미 여러 사람들이 비판을 했다. 그러니 굳이 숟가락 하나 더 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치적인 공방이나 성향에 대한 비판 역시 내 영역이 아니다. 그 부분 역시 전문가들에게 맡겨 둔다.
다만 윤 예비후보의 발언을 들으면서 “아직도 20세기 미디어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몇 가지 자료를 들쳐봤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해 말 발간한 ‘2020 언론수용자조사’는 신문의 최근 상황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종이신문은 언론수용자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급격하게 쇠락한 매체로, 약 20년 전에는 조사 참여자의 대다수가(1993년 이용률 87.8%), 10년 전에는 절반이 (2010년 이용률 52.6%) 종이신문을 이용했으나 이제는 열 명 중 한 명 정도만 이용하고 있다(2020년 이용률 10.2%). 이용률 뿐만 아니라 열독시간도 작년 4.2분에서 올해는 2.8분으로 감소했으며, 열독자의 경우로 한정해도 33.9분에서 27.8분으로 감소 추세가 지속됐다.” (25쪽)
'4대 매체 뉴스 이용률 추이' 그래프는 이런 상황을 한 눈에 보여준다.
한 때 유행했던 ‘메이저 언론’이란 말이 사라진 건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급격하게 영향력이 쇠락하고 있는 신문을 ‘메이저 매체’와 ‘마이너 매체’로 나누는 건 의미가 없다.
윤 예비후보가 21세기 미디어 환경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제기해라”는 발언은 쉽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윤 후보는 메이저 언론으로 KBS나 MBC 같은 지상파 방송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에 던져 놓고 쭉 따라가지 말고 자신 있으면 처음부터 독자가 많은 KBS나 MBC에서 바로 시작하라는 것”이란 말도 했다.
이 부분 역시 달라진 뉴스 소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예전처럼 8시나 9시 정규뉴스 시간에 TV 앞에 앉아서 뉴스를 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한다. 그리고 습득 경로 역시 방송보다는 포털이나 SNS 플랫폼을 통하는 경우가 더 많다.
뉴스 소비 경로는 이미 플랫폼 중심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매체의 메이저, 마이너를 논하는 건 요즘 시대와는 맞지 않는 구분법이다.
스마트폰 주도 모바일 혁명이 몰고온 환경변화에 대한 성찰 필요
그렇다면 매체 환경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모바일 혁명이 변화의 기폭제가 된 것으로 꼽는다. 미국 자료이긴 하지만, 아래 그래프를 통해 달라진 환경을 살펴보자.
예전엔 ‘일정한 시간’에 뉴스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침과 점심 무렵 조석간 신문 배달 시간, 그리고 저녁 TV 뉴스 시간에 집중적으로 뉴스를 소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수시로 뉴스를 확인하게 됐다.
그 계기가 된 것이 스마트폰 혁명이다. 미국 자료에서 2007년에 골든 크로스가 일어난 것은 의미 심장하다. 2007년엔 아이폰이 출시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 해에는 또 하둡(Hadoop)이 등장하면서 빅데이터 혁명이 본격화됐다.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들이 하둡 기반으로 구축됐다.
모바일과 빅데이터, 그리고 소셜 플랫폼 혁명이 겹치면서 뉴스 소비 시장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언론사들이 제공하던 묶음 상품 해체다. 이젠 개별 기사 단위 소비가 더 일반적인 행태가 됐다.
이런 변화는 매체를 기준으로 한 뉴스 소비 시장은 평평하게 만들었다. 이젠 메이저 언론사들의 '의제 설정 능력'은 예전에 비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반면 뉴스버스처럼 두 세 명이 운영하는 언론사라도 콘텐츠만 좋으면 이른바 메이저 언론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고발 사주 논란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건 이런 환경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매체를 ‘메이저’와 ‘마이너’로 분류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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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예비후보의 ‘메이저 언론 발언’에 대해 많은 언론들은 ‘실언’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난 실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달라진 매체 환경에 대한 고민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메이저 언론 발언’이 아쉬웠던 건 내가 윤 후보가 폄하한 인터넷 언론 기자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매체 환경 변화에 대한 무지가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