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정부가 ‘대출규제’ 정책을 내놨다. 쉬운 대출 때문에 불필요한 부동산 거래가 늘고 있으니, 그 목줄을 죄어 놓으면 과열된 시장이 조금 진정되지 않겠냐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선의에서 나온 정책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수혜 대상으로 상정했던 20, 30대가 더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사다리 걷어차기’ 란 생각까지 하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 규제 대책이 왜 실패했을까? 드러난 현상의 표면만 보고 접근한 때문이다. 일단 눈에 보이는 불만 끄자는 생각이 설익은 대책으로 이어졌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열린 포털’ 얘기를 들으면서 부동산 정책을 떠올렸다. 급한 불 끄려고 정책을 쏟아내다 오히려 더 꼬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열린 포털, 의도는 좋지만…문제 본질 어디 있는지 더 고민해야
김의겸의 구상은 간단하다.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 제3의 포털뉴스 사이트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곤 학계·시민단체·언론사로 구성된 편집위원회가 양질의 뉴스를 노출시키자는 게 핵심이다. 시민참여 방안도 제안했다. 바우처를 배포해 좋은 기사에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김의겸은 13일 기자협회보 기고 칼럼에선 “알고리즘이 추천한 기사가 아니라 언론사가 ‘바우처를 받을 만한 기사’라고 스스로 내놓고, 독자가 읽어본 뒤 ‘좋은 기사’라고 평가한 기사들을 주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플랫폼, 그걸 열어두는 것 자체로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지 않을까”라고 의미부여했다.
김 의원은 이날 TBS 뉴스공장에도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낙연 멍청하다"는 진중권 발언을 기사화한 조선일보 기사를 예로 들면서 포털 개혁 필요성을 설명했다. 함량 미달 기사가 해당 언론사 사이트에는 한쪽 구석에 박혀 있고, 종이신문에는 아예 게재되지도 않았다는 것. 그러면서 "포털 뉴스는 포르노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공영 포털, 혹은 열린 포털이다. 혼탁한 포털 뉴스 공간을 정화하자는 건전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제안이다. 읽을 가치가 있는 기사는 홀대받고, 깜냥도 안되는 기사가 메인에 뜨는 상황이 불편했을 것이다. 오랜 언론 경력을 가진 기자 출신으로서, 답답했을 수도 있다.
김의겸 의원의 제안 중 새길만한 부분도 있다. 포털 뉴스 문제점의 상당 부분이 '트래픽 지상주의'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적 자금을 활용한 시민 후원제도는 일견 타당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1조1천억원에 달하는 정부 광고비를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 역시 충분히 검토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 포털은 좋게 말해 순진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언론들이 주장하는 '여론 통제' 같은 관점에 동의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 주도로 포털을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성과 시장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김준일 뉴스톱 대표를 비롯한 여러분들의 비판적인 의견을 참고하기 바란다.)
나는 김의겸의 '선한 제안'이 갖고 있는 더 큰 문제는 '현상에 대한 무지'라고 생각한다. 언론사들이 ‘바우처를 받을만한' 좋은 기사를 추천하고, 독자가 투표하도록 하자는 제안에선 절망감까지 느꼈다. 문제의 본질이 어느 쪽에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다.
혼탁한 포털 뉴스, 포털만의 문제일까
포털 뉴스의 부작용은 왜 생겼을까? 물론 공유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포털 책임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공유지를 마구 황폐화시킨 책임은 오히려 언론사 쪽이 더 크다.
잠시 시간을 내서 포털뉴스를 한번 들여다보라. 빌 게이츠 이혼 발표 이후 온갖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 같은 신뢰도 떨어진 외신을 무차별 중계하는 기사가 넘친다. 김의겸이 보기에 수준 낮은 인터넷 언론사만 그렇게 할 것 같은가? 퀄리티 저널리즘을 표방한 중앙 언론사들이 오히려 더 심하다.
한강 의대생 사망 사고는 또 어떤가? 거의 실시간 생중계를 하다시피한다. 물론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렇지만 전 언론사가 달려들어서 하루 종일 기사를 쏟아낼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큰 이슈'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같은 기간 평택항 부두 야적장에서 숨진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더 구조적인 문제를 담고 있지 않을까? 역시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건 중앙 언론사들이다.
김 의원이 사례로 든 '진중권 저널리즘'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깜냥도 안 되는 기사를 마구 쏟아낸 것 역시 유력 중앙 언론사들이었다.
미디어 바우처를 결합한 열린 포털이 나오면 언론사들이 갑자기 개과천선할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다.
한 때 포털엔 '가장 많이 본 뉴스'가 있었다. 이용자들이 많이 읽고 반응을 보인 기사들을 모아놓은 코너였다. 의도는 좋았다. 어떤 뉴스가 주목받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너무 컸다. '가장 많이 본 뉴스'에 오르면 트래픽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언론사들이 너도나도 '눈길 끄는 기사'를 쏟아낸 때문이다. 결국 그 코너는 폐지됐다. '가장 많이 본 뉴스' 황폐화는 언론과 이용자들의 합작품이었다.
네이버가 '모바일 뉴스판'을 만든 뒤 벌어진 언론사들의 구독 경쟁도 상상을 초월한다. 기상천외한 이벤트를 총동원해 이용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 바우처를 나눠준 뒤 후원하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온갖 꼼수가 난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 동안 해 온 행태들을 통해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언론사에 ‘좋은 기사’를 제안하게 하자는 건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은 채 ‘종이신문 중심적 사고’에 빠져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본질은 외면한 채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든다.
포털 뉴스 황폐화와 여론 독점은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대한 해법을 모색할 경우엔 오히려 문제가 더 꼬일 수도 있다. 요즘 꼬이고 있는 부동산 대책처럼.
김의겸의 선의에서 나왔을 ‘열린 포털’ 제안에 내가 크게 실망한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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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20년 포털 뉴스 역사는 ‘선한 의도’와 ‘나쁜 활용’이 반복됐다. 한 때 ‘어뷰징’의 주범으로 비판받았던 ‘뉴스 검색 아웃링크’는 원래 네이버가 언론사와 상생 방안으로 내놨던 정책이었다. 이 사례만 놓고 봐도 포털 뉴스 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플랫폼 뿐 아니라 공급자 문제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걸 잘 알 수 있다. ‘열린 포털’을 제안한 김의겸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다. 그는 이제 현실 정치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