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나 코미디는 삶에서 불가피한 고통을 잠시라도 씻어 내거나 잊기 위한 청량제와 같다. 그 웃김이 웃기려고 하는 작위적인 행위인 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현실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잠시라도 그것을 잊기 위해 그 뻔한 웃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것이 인생을 바꿔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거기에다 시간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답답할 때 잠깐 쐬는 바람 같다.
개그나 코미디는 그러나 진지하게 말하건대 단순히 한 순간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은 아니다. 모든 웃김에는 시대와 공간을 관통한 세상의 이치가 깊게 스며있다. 다만 시대와 공간에 따라 그걸 받아들이는 입장과 자세가 다를 뿐이다. 그래서 웃김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모두가 배꼽을 잡는 멋진 풍자가 되기도 하고, 똑같은 내용이어도 어떨 때와 어떤 공간에서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기도 한다.
당대와 시간적으로 멀거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일을 소재로 삼아 웃기려 할 때는 멋진 풍자가 된다. 당대 그 곳에서의 문제를 비켜 말하기 위해 비슷한 과거 사례나 그곳 아닌 곳의 사례를 소재로 삼으면 모두에게 배꼽을 잡는 풍자가 되지만, 당대 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례를 직접 끄집어내 풍자하면 어떤 이들에게는 배꼽을 잡는 풍자가 되지만 다른 이에겐 '전쟁 선언'이 되기도 한다.
개그맨이나 코미디어은 이 점에서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대부분은 과거와 다른 곳의 사례로 지금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을 웃기려 한다. 그러면 크게 분란이 생길 이유가 없으면서도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당대 이 곳의 문제를 소재로 삼는 분도 있다. 개그나 코미디가 현실의 문제를 변화 발전시키는 데 더 직접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다.
재미있는 건 당대 이곳이 아니라 과거 다른 곳의 이야기면 더 많이 공감하고 같이 웃을 수 있는데 사실상 똑같은 이야기라도 당대 이곳의 이야기를 소재로 풀어내면 왜 웃는 이와 분노하는 이가 극명하게 갈라지느냐의 문제다. 사실은 웃기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당대 지금의 문제라면 크게 분노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현실이고 그 때 웃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재밌는 일 아닌가 말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제 그 역설적인 웃김이 개그맨이나 코미디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 지도층이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보다 더 웃겨서 이제 그들의 직업이 위태롭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게 참으로 웃기는 현실 아닌가. 기술의 발달로 산업의 장벽이 무너지고 직업의 장벽이 무너진다더니 진짜로 그렇다. 지도층의 웃김 가운데 으뜸 순위는 아마도 정치인일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과 당 대표 이준석의 최근 행동은 살벌한 전쟁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작가도 쉽게 쓰지 못할 코미디 시나리오 같기도 하다. 이 ‘드라마’를 보고 분노에 치를 떠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고 배꼽을 잡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서 누군가는 치를 떨고 누군가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대부분 그렇게 나뉠 것이다.
누가 웃고 누가 화났을까. 왜 그들은 똑같은 ‘드라마’에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걸까. 그것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핵심은 그 ‘드라마’가 나의 문제냐, 아니면 남의 문제냐, 일 것이다.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쪽은 분노할 가능성이 많고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배꼽을 잡고 웃을 가능성이 많다. 외국인과 미래 우리 후손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드라마’는 ‘객관적’으로 볼 때 한 마디로 웃기는 촌극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국민은 다시 나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외국인과 미래 우리 후손이 그럴 것처럼 배꼽을 잡고 웃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내 돈을 누군가 강탈해 갔을 때처럼 분노할 것이다. 외국인과 우리 후손과 지금 어떤 이들에게는 더 없이 웃기는 일인데, 왜 어떤 이들에게는 분노해야만 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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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굳이 이글에선 밝히고 싶진 않다. 다만 그 ‘드라마’를 보고 웃는 분과 분노하는 분 모두 이 글을 통해 본인이 왜 그러고 있는지 생각하는 기회가 되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또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도 전쟁처럼 진지한 자신들의 행동이 어떻게 보일지 한 번 더 고민할 계기가 되면 뭘 더 바라겠는가. 당연히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후보라고 해서 그 덫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치, 그것 참 아무나 할 일 아니다. 존경받는 정치인은 사후에나 판별되고, 모든 정치인은 비난을 피할 길이 없으며, 보통이라면 조롱당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니, 그 일을 어떻게 아무나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