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최근 보여준 갈등과 봉합의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극적’이었다. 그런데 너무 드라마틱해 어쩌면 그 모든 과정이 진짜로 꾸며낸 연극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홍준표 의원 지지자 일부도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준표 형 갖고 장난쳤나"라는 취지의 지지자 글에 홍 의원은 “쇼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답하였다.
둘의 갈등과 봉합이 우발적으로 생긴 현실인지 아니면 누군가 사전에 기획한 연극인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건 현실일 수도, 연극일 수도, 홍 의원이 말한 쇼일 수도, 그의 지지자 일부가 표현한 장난일 수도 있다. 이 통속적인 스토리의 장르가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새로운 생각 거리가 생겼다. 정치가 메타버스로 들어왔을 때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이 혼합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이 넓어지면 우리는 ‘꾸며낸 이야기, 그러므로 거짓의 세계’와 진실한 현실의 경계를 구별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2500년 전 장자(莊子)가 설파한 호접몽(胡蝶之夢)은 그런 점에서 ‘오래된 메타버스’다. 문제는 그거다. 장자가 나비와 자신을 헷갈린 것처럼, 우리의 현실은 누군가 ‘꾸며낸 이야기, 그러므로 거짓의 세계’에 포획될 수 있는 것.
이 스토리에서 가장 먼저 궁금한 건 홍준표 의원이다. 그는 대선후보로 뛸 만큼 영향력 있는 현실 정치가다. 하지만 이 스토리에선 정치가라기보다 배우였을 수 있다. 그것도 주인공이 아니라 짧은 단역. 그런데 누군가의 연극에 대본도 읽지 못한 채 포획돼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좋았을 리 없다. 미리 알고 하는 연극도 아니고 꼭두각시처럼 조종을 당하면 누가 좋아하겠나.
위에 쓴 홍 의원 답이 궁금한 건 그 때문이다. 홍 의원은 며칠 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한 수 배우고 싶다”며 2030 인기 이유를 묻자 “거짓말 안 해서”라고 말했다. 그런데 홍 의원이 거짓 쇼에 포획된 것으로 느낀 지지자의 격분어린 질문에는 “쇼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 말했다. 홍 의원의 진짜 메시지는 과연 뭘까. 쇼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까, 쇼를 하려면 잘해야 한다는 걸까.
4박5일 동안 이 스토리를 전한 언론과 기자에게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우선 이 전달 행위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보도일까, 상영 혹은 공연일까. 전달 행위의 주체들이 언론사와 그 소속 기자였으므로 형식은 보도처럼 보인다. 그런데 내용 또한 보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스토리의 장르를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어디까지 설계고 어디까지 우발인지 누가 구별할 수 있겠나.
언론 중에서도 JTBC에 대한 궁금증이 제일 크다. 이 스토리에서 둘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점은 아마도 JTBC가 이준석 대표와 인터뷰 한 직후였을 것이다. "당 대표는 후보 부하 아냐…윤핵관은 여러명"이란 제목이었고 20분에 육박하는 분량이었다. 인터뷰를 성사시킨 뒤 JTBC는 크게 환호했을 것이다. 중대한 시국이었고 단독으로 결정적인 인터뷰를 성사시켰으니 왜 환호하지 않았겠나.
궁금증은 그 느낌과 환호가 다음날 밤까지 계속됐을지 여부다. 그 인터뷰 이후 불과 24시간 만에 두 사람은 불콰해진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극적으로 어깨동무했다. 다음날엔 사전에 준비된 빨간 후드티로 같이 입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았을까. 홍 의원이 얼핏 생각한 것처럼 누군가 잘 기획한 쇼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보도’라는 이름으로 드라마 배역을 맡고 있었다는 생각이…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에 대한 궁금증은 말할 것도 없다. 윤 후보에 대한 궁금증은 이 모든 스토리에 대해 어디서부터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하는 거다. 갑자기 그가 검찰도 대통령 후보도 아닌 광대로 보일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에 대한 궁금증은 이거다. 연극 무대도 아니고 영화 스크린도 아니고 TV 화면도 아닌 현실에서 드라마를 방영한 느낌이 얼마나 신났을지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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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은 팩트나 진실을 전하는 도구일 수 있고, ‘꾸며낸 이야기, 그러므로 거짓의 세계’를 창조하는 벽돌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거짓 세계 창조가 팩트나 진실 전달보다 하위 작업이라거나 부당한 일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 또한 말과 글의 분명한 역할이고, 그것이 곧 창작이며 창조 행위다. 문제는 창작자가 허구와 사실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
어느 대통령은 국민에게 ‘깨어 있는 시민’이 돼야 한다고 했다. 다른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또 어떤 대통령은 누군가의 꼭두각시였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금은 국회의원과 대통령 후보와 언론인조차 누군가의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광대 노릇을 했을 수 있다. 그런 시대에 ‘깨어 있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깨어 있지 못하면 행동할 양심은 어디서 생긴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