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2년째 이어진 올해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는 명암이 갈렸다. 사람들이 온라인 세상에서 만나느라 정보기술(IT) 수요가 늘어 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풍족한 해를 보냈다. 차량용을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는 부족했다. 반도체 업계가 자동차 시장 수요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산업이 성장했다.
■ 메모리 반도체 호황
산업통상자원부는 13일 오전까지 집계한 수출액이 기존 최대 실적(6천49억 달러)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 품목이 선전한 덕분이다.
국산 메모리 반도체는 1~9월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지켰다.
삼성전자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 3분기 매출액으로 분기 사상 최대인 73조9천800억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15조8천175억원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 영업이익만 10조원이 넘는다. 삼성전자 실적 3분의 2를 반도체가 책임진 셈이다.
3분기 SK하이닉스는 2년 반 만에 4조원대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창사 이래 분기 최대치인 11조8천53억원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반사이익을 얻었다. 재택 근무, 온라인 학습, 인터넷 쇼핑 등에 대응하고자 세계 주요 IT 기업이 데이터센터에 투자했다. 서버용 D램 수요가 늘었다.
■ 비메모리 반도체 공급 불안
시스템 반도체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폭발했지만 시장 분위기는 메모리와 다르다.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해 자동차 제조사는 계획한 만큼 차를 많이 만들지 못했다. 소비자는 신차를 계약하고도 출고까지 몇 달씩 기다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주요 파운드리 가동률이 100%에 이르렀고 생산 단가가 비싸졌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파운드리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통 큰 투자를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국내 기흥·화성캠퍼스와 평택캠퍼스에 더해 미국 오스틴·테일러를 잇는 시스템 반도체 삼각편대를 구축한다. 20조원(170억 달러) 들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제2공장을 짓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9년 4월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고 말했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생산·연구개발(R&D)에 133조원 투자해 세계 1위 파운드리 회사 TSMC를 넘어서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50%를 넘는 TSMC는 14조원(120억 달러) 들여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일본에서도 8조원(70억 달러) 투입해 파운드리 공장을 설립할 참이다. 미국 인텔 역시 파운드리 사업을 다시 하겠다며 24조원(200억 달러)으로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2개 짓기로 했다.
■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 경쟁
주요 업체들이 미국으로 달려간 이유는 미국이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겠다며 회사들에 회유와 압박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이 왜 부족한지 알아보겠다며 지난 9월 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TSMC·인텔 등 세계 반도체 회사에 최근 3년간 매출과 고객 정보, 주문·판매·재고 현황 등을 요구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민감한 고객 정보는 빼고 자료를 냈다.
미국에 맞선 중국도 반도체 공급망을 잡겠다고 나섰다. TSMC 공장을 유치한 일본을 포함해 다른 나라들도 반도체 공급망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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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희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이 첨단 기술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패권을 다툰다”며 “코로나19 사태로 보호무역주의가 심해지면서 국가별 각자도생 산업 정책이 추진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력 산업에 필수인 원자재 공급망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공급망 때문에 산업 소재가 부족할 때를 대비하기로 했다. 특정 나라에 50% 이상 수입을 의존하는 품목 등 4천개에 조기경보시스템(EWS)을 적용한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마그네슘·텅스텐 등 200개 경제 안보 핵심 품목도 지정한다. 경제 안보에 필요한 법안을 정비하고 예산도 늘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