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와 미디어 플랫폼의 관계는 실과 바늘의 관계다. 동전의 양면이다. 떼려고 해도 뗄 수가 없는 관계라는 의미다. 최근 국내 제작진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흥행은 좋은 콘텐츠와 막강한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대표적 성공사례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를 전 세계 많은 이용자들이 즐겨 보고, 높은 평가를 하는 것은 더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구조를 살펴보면 마냥 기뻐할 일만도 아니다. 오히려 오징어게임의 성공이 국내 미디어시장에 던진 숙제가 만만치 않다. 지금부터가 더 큰 문제다.
좋은 콘텐츠 못지않게 그것을 유통시키는 플랫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아니 경쟁력 있는 미디어 플랫폼이야말로 콘텐츠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 세계 1억 4200만 가구가 오징어게임을 시청했다. 넷플릭스 프로그램 역대 시청 순위에서 압도적 1위다.
이런 결과는 전 세계적으로 2억 1360만 가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라는 거대 글로벌 유통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런 관점에서 오징어게임의 성공이 ‘넷플릭스의 성공’일 수 있으나, 국내 콘텐츠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잘 알려졌듯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의 특성 상 국내 제작사에는 제작비와 일부 수익만 보장될 뿐, 성공에 따른 추가 수익 배분은 보장되지 않는다. 모두 넷플릭스 차지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이 넷플릭스 내부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에 제작비로 2140만달러(약 253억원)를 투자해 약 9억달러(1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재주는 국내 제작사가 넘고, 돈은 넷플릭스가 벌고 있다’는 불평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의 원인은 국내 콘텐츠 부문의 성장을 플랫폼 부문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불균형 성장에 있다. K-팝이나 영화, 드라마와 같은 ‘한류 콘텐츠’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반면, 이에 상응한 경쟁력을 갖춘 플랫폼이 없기 때문에 글로벌 OTT와 같은 플랫폼에 콘텐츠 유통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해답 또한 분명하다. 국내 콘텐츠 부문의 성장에 맞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플랫폼을 육성해야 한다. 그러나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 육성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민간기업이나 정부가 선언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콘텐츠와 플랫폼 시장의 경우, 규모나 속성이 다른 만큼 ‘성공 방정식’ 또한 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토종 글로벌 플랫폼의 육성은 중장기 정책과제로 삼더라도 국내 플랫폼업계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는 시급하게 개선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IPTV를 운영하고 있는 국내 이동통신3사는 너무 쉽게 경영을 하려는 타성에 젖어 있다. 외부에는 지능정보화를 말하지만, 내부의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는 전형적인 산업화 시대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창의나 혁신과는 거리가 먼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을 하고 있다.
국내 콘텐츠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는 이통3사에 IPTV사업권을 허가했고, 최근에는 케이블TV의 인수합병(M&A)까지 허용했다. 미디어산업의 특성인 규모의 경제 실현과 취약한 콘텐츠 플랫폼 부문의 경쟁력 제고, 이를 통한 국내 콘텐츠산업의 육성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적 결단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통3사는 미국계 글로벌 OTT사업자들의 ‘국내 대리점’ 역할을 자임하면서 가입자 지키기와 실적 관리에만 몰두하고 있다. 과거 넷플릭스 유치를 놓고 경쟁하던 이통3사는 최근 애플TV와 디즈니+의 국내 진출을 놓고 다시 한번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였다. 자사 IPTV 플랫폼에 유치하지 못할까, 경쟁사에 뒤질까 글로벌 OTT를 품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해외시장 진출 대신 콘텐츠시장의 안방을 스스로 글로벌 사업자에게 내주고 있는 꼴이다. 한마디로 ‘목불인견’이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미디어 및 콘텐츠 정책에 관해서는 비전도, 전략도,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거대한 미디어시장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우물 안에서 업무 소관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으로 밤낮을 보내고 있다.
미디어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규제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정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글로벌 OTT의 국내시장 잠식에 대한 ‘걱정’과 부처 간 갈등에서 나오는 ‘파열음’뿐이다. 시장에서는 비실시간 방송인 OTT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해 한류의 근간인 ‘실시간 방송(채널)의 소멸’을 걱정하지만, 정책 당국자들은 전혀 딴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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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은 변곡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징어게임 이후 한국 콘텐츠를 앞세우려는 글로벌 사업자들이 늘어나고 그들에게 기회를 찾으려는 국내 콘텐츠사업자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리는 기회를 버리고 종속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최근 필자와 대화를 나눈 국내 콘텐츠업계 고위 임원이 전한 업계 상황이다.
물론 과도한 우려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혀 잘못된 분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장의 경고를 결코 가볍게 들어서는 안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게임은 대성공으로 끝을 맺었지만, 현실 속 ‘미디어판 오징어게임’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