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의 전제조건

방송/통신입력 :2020/06/30 10:51    수정: 2024/02/26 13:53

고삼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정부가 지난 주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이하 ‘미디어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문재인정부 4년차에 범정부 차원에서 미디어 종합 정책을 수립, 발표했다는데 우선 의미가 있다. 지금 국내외 미디어 시장은 한마디로 ‘전시상태’다. 미디어사업자 간 무한경쟁에 돌입했다는 의미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시장과 이용자가 수렴되면서 전쟁터의 경계가 사라진 탓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넷플릭스의 이용자가 급증하고, 스마트폰과 콘텐츠 이용시간이 최대 67% 이상 증가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시장의 치열한 경쟁 상황 때문인지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번에 발표된 ‘미디어 발전방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장의 반응을 중심으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의 ‘성공조건’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고삼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먼저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부분. 다수의 사람들은 정부가 미디어 산업을 활성화하고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최소 규제, 최대 진흥’ 원칙을 천명한 것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 등 미디어 산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허가 혹은 승인사업자란 이유로 방송통신기업에 대해서는 진입규제부터 시장 내 각종 영업활동에 대한 규제와 이익의 사회 환원 규제까지 규제망이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다. 문제는 미디어 산업구조와 경쟁 환경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시대에 정립된 규제 기조와 체계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 산업이 특히 그렇다. 그래서 이번에 정부가 미디어 분야의 규제혁파를 선언한 것을 놓고 ‘진일보한 조치’라는 우호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만, 최소 규제 원칙 천명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보다 정교한 규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OTT시장에 대한 규제이다. 지금 국내외 OTT시장은 넷플릭스 등 미국계 글로벌 기업들이 사실상 장악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여기에 최근 디즈니 , 애플TV, 아마존 등 소위 ‘글로벌 미디어 자이언트’들이 OTT시장으로 몰려오고 있다. 그에 비하면 웨이브나 티빙 등 국내 OTT기업들은 자본력과 영업망 등 글로벌 경쟁력 면에서 아직 ‘유치원생’ 수준에도 못 미친다. 글로벌 OTT기업들은 향후 미디어시장의 체인지메이커(change maker)가 될 것이다. 그래서 미디어 기업들의 전쟁터로 급부상하고 있는 OTT시장에 대한 규제체계를 제대로 정립하는 것은 미디어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정책이 될 것이다. 또한 미디어시장을 보다 성숙된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진입규제나 행위규제는 최소화하되, 성과규제로 규제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다음으로 ‘미디어 발전방안’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는 부분. 이번에 마련된 범정부 종합 정책은 ‘디지털(digital)’ 미디어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지상파방송사처럼 지금 당장 위기가 현실로 다가 온 ‘전통적(legacy)’ 방송사업자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대책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아니 “홀대를 받고 있다”는 불만이 지상파방송업계로부터 나올 정도다. 규제를 탓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지상파방송사들이 위기에 직면한 직접적 원인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진 공룡처럼 변화에 둔감한 내부 조직문화에서 찾는 것이 보다 빠를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현재와 같이 지상파방송사들은 선(先) 정부규제 해소를, 정부는 지상파방송사들의 ‘뼈를 깎는 경영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평행선 달리듯 계속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관전자 입장에서 보면, 옆집에서 큰 불이 일어나 ‘우리집’으로 옮겨 붙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먼저 나가서 불을 끌 것인지를 놓고 논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로 보인다. 지금의 위기는 ‘지상파방송만’의 위기가 아니다. 미디어 콘텐츠 산업 전체의 위기이고, 이것은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대응해야 할 심각한 위기라는 의미다. 공적 측면은 물론, 미디어 산업적 측면에서 지상파방송사들을 대체할 사업자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위상이나 역할이 급격하게 약화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지금 당장 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기 위해 정부와 지상파방송사들, 그리고 여타 방송사업자들까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리는 말씀.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디어 발전방안’ 발표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담당자들이나 미디어업계, 특히 지상파방송사 종사자들이 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국내 미디어업계가 직면한 위기 수준에 대한 인식이 다르니 정책에 대한 인식이 같을 리가 없다. ‘소통(communication)’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정책 당국자들과 미디어업계 종사자들, 그리고 미디어 전문가들 간 긴밀한 소통과 협업을 통해 상호 신뢰를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미디어업계와 정부가 ‘이인삼각’ 달리기하듯이 협력해야 소기의 정책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과 협업은 민관 관계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 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미디어 발전방안은 7개 중앙 부처가 함께 만든 것이다. 각 부처가 자신들이 관장하는 영역에서 착실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해당 부처들이 긴밀하게 협업을 해야 정책의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정책을 최종 조율·관리하는 청와대나 국무조정실, 그리고 이를 감독하는 국회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할 때 그 결과는 참혹하다. 위기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해도 백약이 무효하다. 정교한 정책 이상으로 신속한 정책추진이 필요하고, 정책 ‘발표’보다는 ‘성과관리’에 집중해 달라는 당부를 정부에 하고 싶다. 시간이 별로 없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