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성년자 게임금지와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중독과 몰입, 그리고 개인의 선택권

데스크 칼럼입력 :2021/08/31 10:30    수정: 2021/08/31 23:2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시계태엽 오렌지(Clockwork Orange)’란 영화가 있다. SF 명작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대표적인 컬트 영화로 꼽히는 이 작품은 선과 악,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알렉스는 불량 청소년이다. 폭력과 성 폭행, 살인까지 서슴없이 저지른다. 결국 감옥에 수감된 알렉스는 그곳에서 교화 프로그램을 받는다. 약물을 주입해 폭력과 섹스 의지를 말살해버리는 루도비코 실험 대상이 된다. 그는 실험에 참여한 대가로 2주 만에 풀려 난다.

하지만 알렉스는 이미 선택권이 없는, 도덕적 능력을 상실한 생물로 전락해버렸다. 영화 후반부는 ‘교화된(?)’ 알렉스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폭력에 초점을 맞춘다. 비행 청소년 알렉스는 잔인하다. 그런데 그런 알렉스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폭력은 더 잔인하다.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한 장면.

하지만 교화 프로그램을 주도한 장관은 단호하다. 그는 이렇게 되묻는다.

“우리는 더 높은 윤리적 동기에는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범죄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가 하는 것에만 관심 있다.”

중국, 얼굴인식·실명등록 통해 강력한 게임 규제 

중국 정부가 18세 이하 미성년자들에게 온라인 게임 금지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엉뚱하게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떠올렸다.

중국 국가신문출판서는 30일 미성년자의 온라인 게임 이용을 극도로 제한하는 규제를 발표했다.

규제 내용은 단순하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게임 금지. 금, 토, 일 사흘 동안은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 게임 허용. 국가공휴일에도 주말과 동일한 기준 적용.

이 조치를 위해 모든 게임은 국가신문출판서의 ‘중독방지 시스템’과 연결해야만 한다. 이 시스템과 연결되면 실명등록한 이용자에 한해 게임에 접속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전에도 미성년자의 온라인 게임 이용을 강하게 규제해 왔다. 2019년엔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셧다운제'를 적용했다. 또 주중엔 하루 90분 이상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세계 최대 비디오게임 회사인 텐센트는 중국 정부의 이런 조치를 따르기 위해 다양한 감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게임이 자동으로 꺼져버리도록 했으며, 실명 확인을 위해 얼굴인식시스템을 적용했다.

게임 규제를 단행하는 측에선 ‘선한 의도’를 들먹인다. 판단 능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을 게임 중독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의도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게임 규제 소식을 전하면서 “미성년자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인민일보는 사설을 통해 “새 조치에 대한 타협과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강조했다.

겉보기엔 '선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국가의 폭력적 제재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교화 프로그램에는 범죄율만 줄이면 다른 모든 것은 감수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개인의 선택권 따위는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중국 정부의 조치 역시 청소년들이 (사악한) 게임에 중독되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국가가 어떤 제한도 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폭력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알렉스는 사악하다. 하지만 그런 알렉스의 자유의지를 인위적으로 없애버린 정부는 더 잔인하다. 마찬가지로 게임 선택권을 말살해 버린 국가의 선택은, 그 어떤 행위 못지 않게 가혹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중국이란 특수한 나라의 규제 조치를 갖고 너무 거창한 의미 부여하는 것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얼마 전까지 '게임 강제 셧다운제'가 버젓이 적용되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10년 동안이나. 게임 셧다운제가 폐지된 게 불과 일주일 전이다. 

전체주의적 규제 하나가 풀려나간 건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게임에 몰입’하는 건 중독이고, 학원이나 각종 과외에 몰입하는 건, 학생의 본분을 지키는 행동이란 고정관념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강하게 덮고 있다. 그런 고정관념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자율적 선택권의 범위'에 대해서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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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한 마디. ‘시계태엽 오렌지’를 빗대서 설명했지만, 게임하는 행위와, 교화되기 전 알렉스의 행위가 유사점이 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렇게 이해할 분은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덧붙인다.

2. ‘중독’에 대해서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했으면 좋겠다. 게임에 몰입하는 것이 중독이라면, 독서에 몰입하는 것도 중독 아닐까? 결국 그 차이는 교과 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만이 학생의 본분이란 전통 사회의 고정 관념에서 나온 건 아닐까?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