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인앱결제' 포기? 맥락 알면 큰 그림이 보인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외부결제 홍보 허용'은 개발자·대형사 분할 작전

데스크 칼럼입력 :2021/08/29 16:22    수정: 2021/08/29 17:4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앱결제’는 요즘 IT업계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국내에선 세계 첫 인앱결제 강제 금지를 규정한 법 때문에 관심이 집중됐다. 세계적으론 애플, 구글 같은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 규제와 맞물려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주말 애플과 중소개발자들간의 합의 사항에 관심이 쏠린 것도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 합의 직후 ‘애플, 인앱결제 사실상 포기’라거나, ‘외부결제 허용’같은 사실과 조금 다른 보도들이 쏟아져나왔다.

왜 이런 잘못된 해석이 나왔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사건 맥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다소 부족했다.

둘째. 합의 원문을 꼼꼼하게 읽지 않았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사진=씨넷)

개발자들과 합의문 제출한 판사=에픽과 소송 담당 판사 

우선 사건 맥락 문제부터 살펴보자. 

애플과 개발자들이 합의문을 제출한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 오클랜드 지원이다. 사건 담당은 이본느 곤잘레스 로저스 판사다.

어딘지 익숙한 이름이다. 그렇다. 얼마 전 끝난 애플과 에픽게임즈 간의 반독점 소송 진행을 맡았던 판사다. 애플과 에픽은 모든 공판 절차를 마무리하고 현재 판사의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소송에서 애플과 에픽은 인앱결제 강제 문제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애플은 인앱결제 때 다른 결제 시스템을 허용할 경우 보안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본느 곤잘레스 로저스 판사

그런데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인앱결제 강제 조치를 포기한다’는 합의문을 제출한다? 그것도 같은 법원, 같은 판사에게? 지금 인앱결제를 포기할 경우, 애플은 불과 몇 개월 전 ‘보안 우려, 소비자 불편’을 역설한 것이 엉터리였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애플 입장에선 중소 개발자들과의 소송보다는 에픽과 소송에서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 앱스토어의 기본 운영 원칙과 관련된 소송이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애플이 ‘인앱결제 강제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해석을 내놓기 쉽지 않다.

애플, 개발자들과 분쟁보다 독점금지법 공세 대응이 더 시급 

둘째. 합의 주체가 누구인지도 중요하다.

애플은 2019년부터 앱스토어 불공정 관행 문제로 미국 개발자들과 집단 소송을 진행해 왔다. 따라서 이번 합의문의 상대방은 개발자들이다. 에픽이나 스포티파이 같은 대형 서비스업체가 아니다.

중소 개발자들의 핵심 관심사는 인앱결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매출이 일정 수준을 밑돌 경우엔 수수료를 감면받는 게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중소 개발자 지원프로그램도 중요하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중소 개발자 지원 프로그램 3년 동안 유지, 연간 앱스토어 매출 100만 달러 이하인 경우 수수료 15%로 감면 같은 조치들에 흔쾌히 도장을 찍었다고 봐야 한다.

외부 결제 홍보 허용도 마찬가지다. 중소 개발자들은 오히려 앱스토어 내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다른 결제 방식을 홍보하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할 수 있다.

팀 스위니 에픽 CEO와 팀 쿡 애플 CEO

애플은 개발자들과도 계속 소송을 진행할 능력이 있다. 그런데 왜 이들과 합의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최근 애플이 처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애플은 에픽과 반독점 소송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물론 어떤 판결이 나오든 진 쪽에선 항소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쓸 수 있는 전략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애플은 중소 개발자들의 친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효과적인 전략일 수도 있다. 에픽 같은 대형 서비스업체와, 중소 개발자를 분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이런 전략적 고려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많다.

이플에겐 에픽과의 소송보다 더 중요한 문제도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플랫폼 규제 움직임이다. 특히 미국 의회의 플랫폼 독점 규제 움직임은 애플 입장에선 심각한 사안이다. 

그 동안 독점금지법에선 독점 횡포 판단 때 ‘소비자들의 권익’을 중요한 잣대로 활용했다. 독점 기업이 가격을 인상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최근 들어 이런 기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짜 서비스 대가로 개인 정보를 수집한 뒤 더 큰 이익을 챙기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비즈니스 모델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대표적인 인물이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다.

애플, 에픽 같은 거대 기업과 개발자 모두 적으로 돌리는 건 불리 

한번 따져보자.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누구와 싸워야 할까? 에픽 같은 거대 기업들과 싸우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생태계에선 강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소 개발자들과 싸운다? 그것도 앱스토어에서 취득한 정보로 외부 결제 수단 홍보 좀 하려는 것까지 막으면서 싸운다? 제 아무리 애플이라도 이런 상황까지 계속 밀고 나가긴 힘들었을 것이다.

애플이 미국 개발자들에게 상당 부분 양보하면서 합의한 건 ‘그들의 힘’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더 큰 싸움을 앞두고 전선을 단순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사진=씨넷

이런 배경을 깔고 애플과 미국 개발자들이 합의한 7개 항목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합의문 그 어디에도 애플이 기존 입장을 철회하거나 양보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들이 대서 특필한 ‘외부 결제 방식 홍보 허용’ 역시 곰곰 따져보면 애플 입장에선 크게 잃을 것 없는 부분이다. 어차피 넷플릭스를 비롯한 구독형 서비스는 지금까지도 전부 외부 결제를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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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앱결제의 핵심은 게임 아이템이나 인터넷 캐릭터 같은 것들일 텐데, 한번이라도 이런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들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서비스들은 인앱결제 대신 외부에서 결제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지를.

냉정하게 정리하자. 애플이 미국 개발자들에게 ‘통 큰 합의’를 해 준 건 맞다. 하지만 그 합의는 애플 입장에선 크게 양보한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오히려 더 큰 싸움을 앞두고, 지방의 작은 분쟁을 해결하는 수순 정도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