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C·페북 소송이 던진 과제…"역시 반독점법 현대화"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낡은 반독점법+보수적인 법원

데스크 칼럼입력 :2021/06/30 09:36    수정: 2021/06/30 15:1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페이스북이 또 다시 면죄부를 받았다. 미국 워싱턴DC 지역법원이 28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인수에 대해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제소로 시작된 이번 소송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속도를 내고 있는 거대 IT 기업 독점 규제 행보가 법원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 지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잣대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1심 법원은 이번에도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예상대로하고 표현한 것은, 최근 수 십 년 동안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한 반독점 소송에서 미국 정부가 승리한 사례를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가 독점금지법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19세기에 기본 틀이 갖춰진 현행 독점금지법으로는 21세기 첨단 산업의 질서를 바로 잡기 힘들다. 

물론 이런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법원 역시 친기업 성향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워싱턴DC 지역법원

명확한 시장 규정과 독점 행위 입증, 생각보다 어려워 

특히 최고 법원인 연방대법원의 보수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가뜩이나 보수적이던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관 3명을 임명하면서 더 오른쪽으로 쏠리게 됐다. 

상하원 반독점 소위원장인 에이미 클로버샤 의원과 데이비드 시실린 의원이 독점금지법 개정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이런 한계와도 관계가 있다.

이번 소송 역시 독점금지법의 한계와 법원의 친기업 성향을 잘 보여줬다.

워싱턴DC 지역법원은 페이스북의 주장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FTC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소장을 보완해서 다시 제소할 기회를 줬다.

(사진=씨넷)

그런데 이 부분이 반독점 소송에서 승리하기 힘든 지점이다. 법원이 제기한 FTC 패소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소송 대상이 된 개인용 소셜 네트워크 시장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했다.

둘째. 페이스북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

결국 FTC가 ‘시장 규정’과 ‘입증 책임’이란 두 가지 모두 미흡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그 동안 반독점 소송을 제기해 온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참단 IT 산업은 전통적인 잣대로 평가하기 힘들다. 독점의 양상 역시 전통 산업과는 다르다.

이를테면 페이스북은 소비자를 상대로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다. 그래서 약탈적 가격(predatory price)이란 전통 잣대는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독점적 행위의 결과가 당장 소비자의 가격 부담으로 전가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오히려 겉보기엔 더 편해진 측면이 많다.

미국 최초 연방차원 독점금지법인 셔먼법을 발의한 존 셔먼.

1890년 제정된 ‘셔먼법’을 기본으로 한 미국 독점금지법이나 경쟁법의 법망 바깥에 존재하는 시장이다.

그런데 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쪽에 ‘입증 책임’을 요구한다. 반독점 소송에선, 해당 기업이 어떻게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시장 경쟁을 방해했는지’ 법관들을 논리적으로 설득시켜야 한다. 

워싱턴DC 지역법원은 FTC 패소 판결을 하면서 “(이 정도 소장으로는) 페이스북이 독점기업이라는 통상적인 지식에 대해 법원이 고개를 끄덕여달라는 것 밖에 안된다”고 꼬집은 건 바로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문제는 시장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21세기 최첨단 산업 현장에서 독점행위까지 입증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독점규제법의 기본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런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리나 칸의 FTC와 민주당 주도 의회 앞에 던져진 과제 

이번 소송은 2012년과 2014년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FTC도 두 회사 합병을 승인했다. 결국 FTC 입장에선 일종의 ‘과거사 바로잡기’ 소송인 셈이다.

판결문만 놓고 보면 법원은 그 동안의 판례에 충실한 판결을 한 셈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주도하는 미국 의회와 ‘아마존 저격수’ 리나 칸이 이끄는 FTC의 공조 작업이 더 중요해 보인다.

리나 칸 FTC 위원장

워싱턴DC 지역법원의 이번 판결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왜 독점금지법 현대화 작업에 공을 들이는 지, 아마존을 비롯한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비즈니스 행태에 정통한 리나 칸을 FTC 수장에 임명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미국 하원 역시 ▲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 ▲플랫폼 경쟁 및 기회법 ▲플랫폼독점종식법 ▲호환성 및 경쟁증진법 ▲합병수수료 현대화법 등 5개 법안 입법 작업을 집중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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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애플 등에 초점을 맞춘 이 법들이 최종 확정되면 법원 판결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플랫폼 경쟁 및 기회법’은 경쟁 위협이 되는 기업들을 한 발 앞서 인수하는 행위를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다. 플랫폼독점종식법은 법 규정 위반 기업들을 분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다시 한번 독점금지법 현대화 작업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