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로나19와 열번째 사람

위기 선제 예측 시스템 통한 감염병 대응 필요해

기자수첩입력 :2021/05/17 18:06    수정: 2021/05/18 07:41

영화 ‘월드워Z’(2013년·감독 마르크 포르스터) 속 세상은 갑자기 발생한 좀비 바이러스로 국가 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간 세계다. 브래드 피트가 분한 유엔 조사관 제리는 바이러스 발생의 근원을 찾아 헤맨다.

작중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주변에 거대 방벽을 세워 좀비 유입을 막는데 성공한다. 방벽 건설 결정은 과거 정보 예측에 실패했던 경험을 거울삼아 만든 ‘열 번째 사람’의 룰이 적용된다. 

최종 정책 결정자 가운데 한 사람은 의무적으로 앞선 이들과 반대 의견을 내도록 하고, 모두가 그 의견을 따르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방벽을 세워 좀비로부터 도시를 지켜낸다.

열 번째 사람은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역할이 아닌, 발생 확률이 낮더라도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둬 선제적 위기관리를 유도하는 중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현실에도 필요하다.

일 년 반이 넘도록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을 맞아 전대미문의 길을 가고 있다. 전례가 없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유동적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완벽한 감염병 위기관리린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열한 번째, 열두 번째 이상의 위기 진단 프로세스가 작동해야만 바이러스의 위협에서 생존할 수 있다. (사진=영화 '월드워Z' 예고편 중 캡쳐)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은 도움보다는 방해가 되고 있다. 정부가 백신 개발사와 체결한 비밀유지협약을 공개하라고 당국자에게 으름장을 놓거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싫으니 화이자 백신을 맞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기도 한다. 외국 당국자에게 자신이 속한 당의 지지자가 분포해 있는 지역에 쓸 백신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는 일마저 있다.

이들은 애초에 열 번째 사람이 되고픈 생각이 없다. 첫 번째 사람이 되어서 나머지를 좌지우지하고픈 욕망뿐이다. 여기에는 공익, 국익, 국민이고 나발이고 없다. 

좀비보다 무서운 것은 극한의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이다. 팬데믹 상황에서조차 본인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방역에 해가 되는 가짜뉴스와 인포데믹(infodemic)을 쏟아내는 이들이 여의도를 누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본다. 예루살렘은 방벽을 넘어온 좀비 떼에 순식간에 초토화된다. 열 번째 사람의 위기 예측조차 뛰어넘은 바이러스의 승리. 이 우울한 결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감염병의 완벽한 관리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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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뻔한 이야기다. 방역 시스템 안과 밖에서 열한 번째, 열두 번째 이상의 위기 진단 프로세스가 작동해 이중 삼중의 감염병 시나리오 예측이 이뤄져야만 감염을 막을 수 있고, 나아가 코로나19 이후를 기약할 수 있다. 이 뻔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열번 째 사람의 부재 때문이다. 

지금 열 번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