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지난 1년 동안 어느 업계보다도 정부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입 모아 말했다. 규제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부처마다 서로 규제를 하겠다고 싸우는 형국이란 이유에서다.
특히 전문가들은 IT 강국으로 자리 잡은 한국이 타 국가의 법안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지만, 정부와 국회는 존재감을 드러려는 듯 따라가기 식·찍어내기 식 법안을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인터넷 기업들은 소비자 보호 명목으로 각종 규제를 쏟아내는 정부와 국회에 대한 실망감은 크지만, 올해도 이들을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세계적으로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지금이라도 플랫폼 산업 육성에 의지를 갖고 여느 정부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정부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공정위까지 가세한 역차별…소비자 보호 명분으로 규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막고, 디지털 공정경제 질서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내놓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은 인터넷 기업들이 대표적으로 혁신을 저해한다고 반대하는 법안이다.
온플법은 네이버나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등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금지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가 계약을 체결할 때 필수 기재사항을 포함한 중개 거래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고, 플랫폼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금지한다는 것이 골자다.
법안 내용에 별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는 100만개가 넘는 입점업체와 개별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고, 그 계약서 안에 민감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시켜야 해 영업비밀 누출 우려를 안고 있다.
이는 완전 경쟁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게 불리한 법안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플랫폼 기업을 대상으로 규제를 강행하는 것은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규제라는 비판이다.
공정위에서는 EU에서 실행중인 디지털시장법을 예를 들며 “EU는 모든 플랫폼에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있고, 대형 플랫폼에 대해서는 별도로 강한 규제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미국 빅테크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EU와 국내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기업을 겨냥한 규제가 자국산업 보호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될 수 있지만, 국내에서 이 법이 실행되면 경쟁력 있는 토종 플랫폼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다.
리걸테크산업협회장인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정부와 국회는 소비자를 앞세워 국내 인터넷 기업들을 규제하려고 들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불만 있는 기업이 있으면 불매운동을 통해 바로 행동으로 보여준다”며 “디지털 경제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실태조사도 없이 규제를 만든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익 공유하라는 정부·해외 기업에 휘둘리는 국회...국내 기업만 운다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은 인터넷 플랫폼 업계와 만나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이익 공유제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그러나 이는 코로나19로 이익을 본 플랫폼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한 중소상공인을 도우라는 일종의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한숨이 커졌다.
여당은 플랫폼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다고 하면서, 기업을 대표하는 협단체들을 모아 간담회를 진행했다. 인터넷 기업들은 이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매출상승이 명확하게 증명되지도 않고 있고, 매출은 늘어도 투자로 인한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플랫폼 특성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정부와 여당의 관심을 덜 받기 위해 코로나19로 수혜를 봤다는 꼬리표를 떼고 싶은 의지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예전 대기업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법도 무섭지만, 소비자가 더 무서운 플랫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소상공인들과 상생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뛰고 있는데 이를 강제하려고 하면 역효과만 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구글이나 애플 등 앱마켓 수수료 갑질을 막기 위한 법안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구글이 자사 앱마켓인 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된 앱의 인앱결제를 강제하고, 수수료를 30% 올리겠다는 정책에 국회에서는 이를 막는 법안을 서둘러 만들어냈지만, 구글이 지난 3월 매출 100만달러까지는 수수료율을 15% 적용하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법안 처리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업계는 야당과 일부 여당 의원이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이라고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처리가 힘든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야당에서는 법안 입법으로 한미간 통상 마찰에 우려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구글의 의도라는 지적이다. 결제 수단을 강제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하고 바꾸려고 하고 있는데, 구글이 일부를 위한 수수료 인하라는 카드를 내세워 본질을 흐리고 있기 때문이다.
D학점…실리 없는 규제만 남았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기업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무조건적인 규제로 국내 기업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시각이다. 특히 제대로된 실태 조사도 없이 부처들이 서로 나서 법안을 만들고 규제 주체가 되려고 하는 것은 "MRI도 찍지 않았는데 서로 수술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같다"는 비유도 했다.
박성호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정부가 디지털 뉴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지만, 공정위나 방통위 등 서로 인터넷 기업들을 규제하고 나서겠다는 모습은 이율배반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면서 “지난 1년간 인터넷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규제와 역차별은 더 심해졌다”고 평가했다.
영원한 1등이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 기업 생태계에서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도 힘든데 규제 리스크까지 작용하고 있어 해마다 녹록지 않다는 입장이다.
박 협회장은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은 기대할 만큼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진 않지만, 애플과 구글의 독점 고착화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을 국회가 이해한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며 “논의의 장을 만든 것 만으로도 관심을 가졌다고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터넷 기업들은 사회의 오해, 지도층의 오해를 어떻게 잘 풀어나갈지에 대한 고민이 크다”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규제에 대한 태도가 바뀌길 바란다는 마음에서 C 학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구태언 변호사는 시장을 획정하고 지배적사업자라고 낙인 찍는 것은 청소년에게 “너의 미래는 이미 결정됐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권력을 유지하기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힘이 있고, 소비자 보호를 하지 않으면 불매운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정부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며 “빅테크가 전세계 인터넷 시장을 초토화 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만 유일하게 토종 플랫폼들이 선전하고 있는데, 우리가 다른 나라의 법안과 모델을 참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E학점을 줬다.
김가연 오픈넷 변호사는 인터넷 기업들에게 불리한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법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데,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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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새로운 법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기업들도 혼란스럽고, 이용자에게도 좋은 현상은 아니다”라며 “정부 법안은 통과되기 어렵고 까다로우니까 청부 입법이 생겨나고 있고 부처 이기주의가 발현되는 등 총체적인 문제점들이 발견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D학점을 줬다.
그는 “국회에서 전문성을 갖고 기존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충고도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