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업계에도 1년간 크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6월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동시에 친환경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국형 그린뉴딜' 정책이 나왔다. 10월엔 문재인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저탄소 발전인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이 잇따라 나온 배경엔 국민 안전을 위협하고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 기후위기가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기후변화 파급과 시급함이 재평가됐다. 기후 악당으로 지목된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낮추고 그 자리를 재생에너지로 채워야하는 것이 전 지구적인 과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그린뉴딜 정책 시행과 탄소중립 선언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를 분명히했다는 점에 정부에 높은 점수를 줬다. 지난해 3년차 점검에서 주문한 '일관성있는 제도 추진' 측면에서도 1년간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태양광·풍력·수소에너지를 3대 '그린에너지'로 규정해 육성하겠다는 선택과 집중 전략도 유효했다.
반면에 업계 수익성을 좌우하는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 하락 등 사업성 악화,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이끌 전력거래시장의 자유화 측면에선 미흡했다는 평가다. 태양광·풍력발전에 대한 주민수용성 문제도 여전하다. 목표에 비해 세부 정책 설정이 미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재생에너지 불모지 韓, 탄소중립 선언이 눈높이 키웠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위해 집중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은 ▲석탄감축 ▲수소경제 활성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다. 탄소를 배출하진 않지만 '안전한 에너지'를 위해 진행하는 탈(脫)원전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한다.
석탄발전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와 수소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은 '제5차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과 이용보급 기본계획(신기본)'에서 구체화했다. 5차 신기본에 따르면 2034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2019년보다 약 20% 늘어 석탄발전과 원전을 넘어서는 주력 에너지원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서는 2034년 신재생에너지(사업자가용) 설비용량을 82.2기가와트(GW)로 잡았다. 논란이 있지만 재생에너지원에 포함돼있는 혼소바이오매스를 더하면 84.4GW로 늘어난다. 계획대로라면 이 때 전원별 설비 비중은 신재생에너지(40.3%), LNG·석탄(15.0%), 원전(10.1%) 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해 7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발표에서 태양광·풍력·수소에너지를 '그린에너지'로 명명한 점은 업계에 의미가 크다. 그린에너지 정책은 재생에너지와 수소 생태계 육성에 방점이 찍혔다.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사업을 큰 틀로 태양광·풍력·수소에너지 발전 사업을 집중적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태양광과 풍력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재생에너지 발전원으로 꼽힌다. 수소에너지 확대는 정부가 힘줘 추진하는 '수소경제'와 연결된다. 내년까지 그린에너지 분야에만 4조5천억원이 투입된다. 정부는 2025년까지 그린에너지 사업비를 11조3천억원 규모로 늘리고 일자리 총 3만8천개를 만들 계획이다.
정부는 태양광을 선두에 세워놓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있다. 국내외 시장 성장에 따라 연구개발(R&D)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최근 5년간 태양광 R&D 투자는 연평균 9.2% 증가했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 31년간 태양광 R&D에 투입된 금액은 약 1조1천억원이다.
전체 전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태양광발전이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신규 태양광 설비규모는 2.4GW, 2019년 3.8GW, 지난해 4.1GW(잠정)로 증가했다. 3년 만에 1.7GW 규모가 늘어났다. 재생에너지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85%다.
정우식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정부가 지난해 한국형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선언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분명히 한 점은 긍정적이고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전반적으로 저탄소 흐름에 맞춰 재생에너지 확대를 골자로 한 에너지 정책을 일관되게 펼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태양광과 함께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풍력발전도 정책적으로 한발 나아갔다는 평가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육해상 풍력발전설비는 약 1.7GW 보급됐다. 육상풍력은 약 1.5GW 보급됐고, 해상풍력은 142MW 용량이 구축됐다.
전문가들은 풍력 인허가 원스톱 샵을 도입하고 지자체 중심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추진을 통해 보급 활성화에 나선 점을 높이 샀다. 권경락 기후솔루션 이사는 "풍력 원스톱 샵 개정안 추진 등 인허가 이슈와 주민수용성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였다"고 평가했다.
지난 2년간 수소경제 이행에 따른 성과도 속속 나타났다. 수소전기차 글로벌 판매량은 지난해 2년 연속 1위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판매량은 6천25대로 일본 도요타(1천64대), 혼다(218대)를 제치고 전체의 82%를 차지했다. 현대차 '넥쏘' 판매량은 일본 도요타 '미라이'보다 세 배 가량 많았다. 충전소도 같은 기간 세계 최다 구축 기록을 세웠다.
주민참여형 사업 펼쳤지만 수용성은 '산 넘어 산'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기 위해 지난 1년간 전국 각지에서 주민참여형 이익공유 사업을 전개했다. '재생에너지 3020' 계획에도 포함된 주민참여형 발전사업은 에너지 보급 주체를 외지 사업자에서 주민참여 유도로 전환한 것이 핵심이다. 지역 주민이 사업에 직접 지분을 투자하거나 발전용 부지를 제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결국 국민 참여가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경남 합천에 들어서는 세계 최대 댐 수상태양광 발전소인 합천댐 수상태양광도 공사 현장에 지역 인력을 우선 고용하고 발전소 수익을 주민에게 분배하는 주민참여형 사업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LS일렉트릭 등이 전남 신안지역 염전에서 추진하는 '비금 주민태양광발전사업'도 있다. 국토의 효율적인 활용과 농가 소득 확대, 탄소 절감 등 일석삼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도 화제가 됐다.
다만, 아직 성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안형근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정부의 의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며 "신재생에너지는 단숨에 되는 것이 아니고 시차를 가지고 간헐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보조해가면서 설치·운영해야 하는데 이 점이 미비하면 한계점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재생에너지 설치 허가권을 가진 지자체가 민원을 근거로 설비 개발행위 허가를 미루거나 취소하는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혐오시설이나 위험 설비가 주거시설과 도로에 인접하지 못하게 하는 '이격거리' 규제 탓이 크다. 관련 법률에 따라 지자체가 결정하는 사안이다. 지자체별로 기준이 제각각인데다 군도나 농어촌 도로 등으로부터 최대 1km 이내엔 입지가 불가하도록 설정하기도 한다.
도시와 인접해 태양광 경제성이 낮은 경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광역단체가 이격거리 규제를 도입했다. 충북·충남·전북·전남지역은 모든 시군 단위가 이격거리 규제를 조례 등으로 시행 중이다. 입지 규제 강화로 인한 불똥은 업계로도 튀었다. 이격거리 규제나 계획심의 과정에서 추상적인 기준에 따라 불허되는 사례 때문에 재생에너지 비용이 더욱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풍력업계도 주민수용성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국내 시장 창출이 지연됨에 따른 경쟁력 약화와 경영여건 악화를 호소해 왔다. 업계가 가장 큰 난관인 입지발굴 문제 해결에 생태계 확장 초점을 맞춰 진행하는 이유다.
수소 역시 주민수용성 확보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정부는 충전소 설치 부지를 미리 확보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구축 지연을 최소화하고, 충전소 구축 전 ‘안전평가제’를 통해 주민수용성을 높일 계획이다.
권경락 기후솔루션 이사는 "재생에너지 확산의 주요 동력인 중소형 태양광과 관련해 기초지자체의 이격거리 규제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었다"며 "규제를 해소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조기에 마련하고, 영농형 태양광 등 이슈가 되고 있는 사업에 대한 농민·주민 수용성 해결을 위해 성공사례와 절차를 조기 정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우식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도 "지자체별 이격거리 규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로, 아파트 옥상에도 미니태양광을 설치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보면 낡은 방식"이라며 "특정 지자체에 속한 주민은 태양광 발전을 운영하고 싶어도 규제 때문에 못하고, 인접한 군에서는 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이어 "태양광 발전은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저감에 기여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사업인데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발상"이라며 "문화나 환경 또는 특별한 가치가 있는 지역이나 공간은 제외하는 입지규제 형태로 가야한다"고 했다.
산사태에 '와르르' 무너진 태양광…계통부족은 덤
작년 여름엔 최악의 장마와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산지태양광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전국에서 발생한 6천여건의 산사태 피해 가운데 27건의 산지태양광 설비에서 토사유출이 발생했다. 전체 산지태양광 1만2천923건의 0.2% 수준이었지만 환경보호지 등 개발 제한 지역에 설치된 산지태양광이 적법하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태양광 에너지 확대 기조로 태양광 폐패널은 급격히 늘어나지만, 이를 재활용 처리하는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탓에 태양광이 환경오염 문제로 부상했다. 2023년까지 태양광 폐패널이 3만톤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었다.
계통 연결 지연으로 생산한 전기를 보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도 문제다. 한국전력공사의 태양광발전소 전력계통 연계 현황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지난해 8월까지 송배전 전력계통 연계 신청 건 수는 8만8천919건이었다.
이 가운데 접속이 완료된 건수는 5만5천980건으로 63%에 불과했다. 소규모 사업자가 대부분인 1MW 이하 태양광발전소는 2016년 10월 접속보장 정책 시행 이후 8월까지 신청한 8만3천745건 가운데 61%인 5만1천460건만 접속이 완료됐다.
제주지역에서 풍력 발전량이 수용 한계를 빈번히 초과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설비 보급은 지속하면서 수용능력을 확대해 출력제어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구축하고, 육지로 전력을 내보내는 역송(逆送)도 추진한다. 한전과 에너지공단도 발전량 수용 한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창구를 만들었다.
황우현 제주에너지공사 사장은 "정부도 정부대로 노력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며 "발전출력 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육지로 역송하는 것이 참 어려운 기술인 만큼, 이해관계를 조정해 성공시킨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 사장은 이어 "전력산업은 근 100년 이상 된 산업인 만큼, 한순간 패러다임이 바뀌는 지금 상황에서 정부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책은 글로벌 시장에 뒤처지지 않는 반면, 민간 분야의 기술 수준은 아직 멀었다. 기술은 정부 정책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된다.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가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저가 중국산 태양광 부품 수입량이 늘고 있다는 건 더 현실적인 문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중국산 태양광 모듈 수입액은 지난해보다 22% 증가한 2천43억원이었다. 이는 상반기 태양광 모듈 수입량의 98.4% 규모다. 같은 기간 국내 업체가 수출한 금액은 13억원에 불과했다.
재생에너지 육성정책 과실의 상당부분이 중국 기업에 돌아가고 있다. 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국산 태양광 모듈 점유율은 지난해 79.8%에서 67.4%로 12.4%포인트 떨어졌다. 국산 모듈이 주춤하는 사이에 중국산 모듈이 입지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태양광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평가하고 이를 등급화해 저탄소 제품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태양광 탄소인증제'를 지난해 7월 시행했다. 그러나 탄소인증제가 국내 태양광 소재·부품 생태계를 구원할 수 있을 지엔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가 이 제도 도입 의사를 밝힌 1년 전과 비교하면 직접적으로 혜택을 보게 될 기업의 숫자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결실 맺은 해상풍력, 쑥쑥 크는 수소…"보급 위주 정책 넘어서야"
지난 11년간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전북 서남권 일대 대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 구축 사업이 결실을 맺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올해 2월엔 신안 해상풍력 사업이 첫발을 내딛었다. 2030년까지 연평균 약 1.2GW 규모 해상풍력 발전이 신규 공급될 전망이다.
수소전기차 보급과 충전소 구축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정부는 올해 전기·수소전기차를 30만대 이상 보급한다는 목표다. 구매 보조금 등의 재정지원 강화와 이용자 편의성을 제고해 보급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구분한 맞춤형 시장 내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업체나 판매업체에 연료전지 발전 의무를 부과하는 수소발전의무화제도(HPS)도 도입됐다. 타 재생에너지 발전과 경쟁 없이 수소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취지다.
별도 전력시장에 연료전지로 생산한 전력을 구매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도록 하는 수소법도 올해 2월 시행됐다. 수소경제 이행 추진체계를 구체화하고 수소전문기업 육성과 인력양성 등 기반 조성에 초점을 둔 법이다. 이 법 시행으로 수소경제 인프라 확충과 민간투자 활성화 지원 등의 정책 추진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기업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는 'RE100' 캠페인에 참여하는 업체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가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확산을 돕기 위해 '한국형 RE100(K-RE100)' 플랫폼을 출시하면서다. 참여 문턱을 낮춘 한국형 플랫폼을 도입해 더 많은 기업의 에너지전환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기업의 사용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전체 전력에서 산업용 전력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을 기준으로 산업용 전력 판매량은 2만2천623기가와트시(GWh)에 이르렀다. 전체 판매량의 58% 수준이다. 같은 기간 주택용 전력 판매량은 5천766GWh에 불과했다.
전기 소비자가 한전에 비용을 지불하고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는 '녹색 프리미엄'도 첫발을 뗐다. 녹색 프리미엄 판매량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발전차액지원제도(FIT)의 연도별 재생에너지 발전량으로 설정된다. 다만 상반기 한전이 시행한 1차 입찰 결과, 낙찰물량이 전체 판매물량의 7%에 그치는 등 기업 참여는 아직 저조한 편이다.
이제는 보급 위주 정책을 넘어 전통적인 전원 수준의 계통 기여와 시장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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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형근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보급도 중요하지만, 현재 가동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가지고 100% 쓸 수 있는 조건이 되려면 부하관리가 따라야 한다"며 "전기요금을 시간대별로 차등하는 정책과 국민적인 공감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안 교수는 "에너지공단이 진행하는 고효율기기 전환 사업과 같이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펼쳐야한다"며 "사회 전반적으로 부하 사용량에 따라 차등화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