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아마존·애플·페북 잡을 저승사자가 온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반독점 최고전문가' 리나 칸 FTC 위원 지명

데스크 칼럼입력 :2021/03/23 13:55    수정: 2021/03/23 19:2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거대 플랫폼이 시장경쟁을 방해하고 독점적 행위를 하는 게 사실이라면, 해결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핵심은 경쟁을 통해 그들을 지배할 것인지, 아니면 독점이나 과점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을 규제할 지 여부다.

전자를 택할 경우엔 독점금지법을 개혁해야 한다. 후자를 선택하려면 규모의 이점을 활용하면서도 지배력을 남용할 능력을 거세해버리는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이란 논문 끝부분에 나오는 주장입니다. 예일대 로스쿨 졸업반이던 리나 칸이 2017년 ‘예일 로 저널(The Yale Law Journal)’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 '아마존의 역설' 논문 바로가기)

리나 칸은 이 논문에서 “현재의 독점금지법으로는 21세기 독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시장의 역동적인 구조나 상황을 심도 있게 파악해야 하는 데,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독점금지법의 규제 프레임은 이 작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겁니다. 숫자로 드러난 점유율만 규제하는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이후 리나 칸은 ‘아마존 저격수’로 불렸습니다. 뉴욕타임스가 2018년 리나 칸을 ‘아마존 반독점 적대자(Amazon Antitrust Antagonist)’로 묘사했을 정도입니다.

리나 칸 FTC 위원 지명자

■ 작년 미국 하원의 '디지털 시장의 경쟁조사' 보고서 작업도 관여 

‘아마존 저격수’ 리나 칸이 미국의 대표적인 규제 기관에 몸을 담을 것 같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리나 칸을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으로 지명했습니다. 리나 칸은 상원에서 인준되는대로 곧바로 FTC 위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바이든은 ‘망중립성 창시자’인 팀 우 콜롬비아대학 교수를 국가경제위원회(NEC)에 합류시킨 데 이어 리나 칸까지 FTC 위원으로 지명하면서 거대 IT 기업 견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리나 칸은 팀 우보다 FANG을 견제할 더 강력한 카드로 평가됩니다.

콜롬비아 로스쿨 교수인 리나 칸은 미국의 대표적인 반독점 전문가입니다. 게다가 그는 강단에만 머물러 있는 학자는 아닙니다. 다양한 활동을 펼치면서 미국 거대 IT 기업들의 독점적 행위를 타파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리나 칸이 쓴 '아마존 반독점의 역설' 논문

리나 칸은 오픈마켓연구소 법률 담당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픈마켓연구소는 기업들의 독점 관행을 퇴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기관입니다.

칸은 지난 해 미국 하원이 내놓은 450쪽 분량의 ‘디지털 시장의 경쟁 조사(Investigation of competition in digital market)’ 보고서 작업에도 깊숙하게 관여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하원 법사위원회 산하 반독점소위는 16개월 동안 4대 IT기업의 비즈니스 관행을 조사한 결과물입니다. 보고서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이 어떻게 시장에서 경쟁을 말살했는지 적나라하게 담겨 있습니다. 

간단하게 소개해볼까요?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 왓츠앱 인수를 통해 독점적 지위를 공고하게 다졌습니다. 구글과 아마존은 플랫폼과 상용 서비스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이익충돌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애플은 앱스토어를 통해 시장 경쟁을 방해했습니다. 보고서엔 구체적인 사례를 토대로 이들이 어떻게 경쟁 위반 행위를 저질렀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FANG 독점 문제를 집중 분석한 미국 하원 보고서에 리나 칸이 깊이 관여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미국 내에서 FANG의 경쟁 방해 행위에 대해 리나 칸 만큼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리나 칸이 FTC 위원 지명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

■ "독점금지법 제 역할 못하고 있다" 비판  

리나 칸은 ‘아마존 독점의 역설’에서 “21세기 시장의 진짜 경쟁을 측정하기 위해선 시장 밑바닥 구조와 역학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플랫폼 사업자들을 규제할 땐 이런 새로운 접근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독점금지법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합니다. 독점기업의 횡포를 저지한다는 원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수직 계열화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특정 영역의 지배력을 이용해 다른 사업 영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걸 견제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나,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가 별 문제없이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고 비판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나 칸은 "특정 형태의 데이터 교환이 포함된 합병에 대해선 (FTC가) 무조건 심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 인수는 FTC의 정밀 심사를 받았을 거란 주장입니다. 데이터란 관점으로 보면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왓츠앱) 인수는 FTC가 쉽게 승인하기 힘든 거래입니다. 

리나 칸이 "지금의 독점금지법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팀 우 교수

팀 우에 이어 리나 칸까지 영입하면서 거대 IT 기업 견제라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가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 때 거대 IT 기업을 향해 강력한 공격을 퍼붓진 않았다. 하지만 초기 행보는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미국 IT 매체 테크크런치는 리나 칸 지명 소식을 전하는 기사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리나 칸은 거대 독점 기업들에겐 두려운 존재입니다. 

"독점금지법은 낡았다"고 외치는 리나 칸. 과연 그는 명성대로 독점기업들의 저승사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 이래 일관되게 주장해 온 신념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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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답을 하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테크크런치 표현대로, 리나 칸 영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FANG으로 대표되는 거대 IT 기업 독점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건 분명해 보입니다. 게다가 바이든은 아직 FTC 위원 지명권을 한 장 더 갖고 있습니다.

팀 우와 리나 칸이 앞으로 보여줄 활약상에 많은 기대를 갖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바이든이 FTC의 남은 한 자리를 누구로 채울 지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어쩌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함께 갖게 됩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