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대부의 등판…구글·페북은 떨고 있을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바이든 국가경제위원회 합류한 팀 우 교수

데스크 칼럼입력 :2021/03/09 11:17    수정: 2021/03/11 08:3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2003년 미국의 한 통신-기술법 전문 학술지에 흥미로운 논문이 게재됐습니다. ‘망중립성, 광대역 차별(Network Neutrality, Broadband Discrimination)’이란 논문입니다. 제목으로 사용된 ‘망중립성’과 ‘광대역 차별’은 그 무렵엔 모두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저자는 대만계 미국 학자인 팀 우. 당시 그는 버지니아대학 법학 교수였습니다. (팀 우는 2006년 콜롬비아대학 로스쿨 교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논문에서 팀 우는 “모든 망 사업자는 모든 인터넷 콘텐츠를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원칙을 보증하기 위해 차별금지, 차단금지, 동등처리 등 3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팀 우의 이 논문은 통신 및 인터넷 정책에 중요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 때까지 생소했던 망중립성 원칙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망중립성은 이제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정부와 학자들이 사용하는 일반 용어가 됐습니다. 원칙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늘 망중립성이란 기준점에서 출발합니다.

팀 우 교수

2003년 망중립성 첫 거론…거대기업 해체 강력 주장   

‘망중립성’이란 말을 고안했던 팀 우가 또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경제위원회(NEC)에 합류한 때문입니다. 팀 우 합류 소식이 들리면서 곧바로 미국 4대 IT기업인 FANG(페이스북, 에플, 구글, 아마존)으로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팀 우 교수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대 IT 기업의 독점과 시장 지배 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망중립성 대부의 등장에 벌써부터 실리콘밸리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미국 거대 IT 기업 독점 문제는 민주당 쪽이 특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해 민주당 하원 의원들 주도로 450쪽에 이르는 ‘디지털 시장의 경쟁 조사(Investigation of competition in digital market)’ 보고서를 내놓은 적도 있습니다. 하원 법사위원회 산하 반독점소위가 16개월 동안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비즈니스 관행을 조사한 결과물이었습니다.

팀 우가 2003년 발표한 망중립성 관련 논문.

팀 우의 백악관 NEC 합류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건 이런 상황 때문입니다. 거대 IT기업의 경쟁 방해 관행에 대해 팀 우 교수만큼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미국 역사, 특히 IT 역사는 늘 거대 독점기업이 주도해 왔습니다. AT&T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 최근의 구글,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늘 그랬습니다. 반독점 소송과 분할 공방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초기 몇 년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경쟁이 존재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AT&T를 제외하면 실제로 분할이 단행된 적은 없습니다.

팀 우는 이런 역사를 끊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동안 독점 기업이 횡행했던 건 전 세계의 반독점 프로그램이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합니다. 따라서 독점 피해를 막기 위해선 합병에 접근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빅니스-거대 기업에 지배당하는 세계’에 잘 담겨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의심스러운 합병은 가석방 상태로 묶어두자”고 제안합니다. 합병 5년 후 재조사해서 명백한 반경쟁적 행위가 적발되면 해체하자는 겁니다. 합병을 제안하는 주체들에게 가격이 올라가거나, 혁신을 억누르거나, 공공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라는 부담을 안길 필요도 있다고 제안합니다(175쪽).

냅스터 소송 주도했던 로렌스 레식의 제자 

팀 우는 하버드대학에서 로렌스 레식 제자였습니다. '코드 2.0'으로 유명한 레식 교수는 대표적인 카피레프트 운동가입니다. 2000년대 초반 냅스터를 말살하려는 음반회사들에 맞서 싸운 이력도 있습니다.

스승의 영향을 짙게 받은 팀 우는 스승 못지 않은 행동가입니다. 아니 스승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을 분할하려는 여러 시도들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을 독식하고 있는 페이스북을 분할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빅니스’에서도 이 부분을 직접 거론합니다.

“인스타그램, 왓츠앱과의 합병을 재평가해서 페이스북의 해체를 고려한다고 가정해보자. 의심할 여지 없이 페이스북은 그런 식의 해산에 반대할 것이고, 새로운 경쟁을 달가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때의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클지는 설령 발생한다 하더라도 알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런 회사들을 합쳐서 상당한 사회적 효율을 얻을 수 있을까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반면 소셜 미디어업계에 다시 경쟁이 도입된다면, (중간생략) 일반 대중에게는 아주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단일 플랫폼에 의사 표현의 힘이 너무도 집주되어 있는 등 비경제적 분야의 우려에 대해서는 아직 건드리지도 못했다.” (179쪽)

그는 “기업 해체를 제대로 실행하면 침체된 산업을 개혁하고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도록 영감을 불어 넣으며 업계의 판을 다시 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팀 우의 백악관 진입에 유독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건 이런 이력과 주장들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이버 법 이론가인 로렌스 레식 교수. (사진=로렌스 레식 홈페이지)

그렇다면 학자 팀 우는 현실세계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선 선뜻 “그렇다”는 답을 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크게 두 가지 점 때문입니다.

첫째. 특별보좌관이란 직책이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자리일까.

둘째.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현실 정치의 두터운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첫 번째 질문부터 한번 살펴볼까요? 미국 IT 전문매체 프로토콜이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테크 관련 싱크탱크인 테크프리덤을 이끌고 있는 베린 스조카는 “바이든 행정부가 팀 우를 영입한 건 놀랄 일은 아니다”고 주장했습니다. 진보적인 느낌을 갖도록 하는 데 아주 적합한 인재라는 겁니다.

하지만 백악관 내 직책 자체가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팀 우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스조카는 콜롬비아대학 로스쿨에서 팀 우에게 배운 제자이기도 합니다.

반면 백악관 핵심 인사는 프로토콜과 인터뷰에서 “팀 우는 NEC 내에서 몇 안 되는 고위직 인사다”고 밝혔습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라는 의미로 영입한 인사라고 설명했습니다. 모든 걸 경영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회의 석상에서 큰 목소리를 내기엔 충분한 직위라는 겁니다.

뛰어난 이론가 팀 우, 현실정치의 두터운 벽 뚫을 수 있을까 

여러 평가를 종합해보며, 팀 우는 학자 중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거대 IT 기업 견제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팀 우보다 더 강력한 카드는 찾기 힘듭니다.

팀 우 역시 강단에만 머물러 있던 학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구글이 초기에 각종 사업 방향을 잡는데도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초안을 잡을 때도 큰 기여를 했구요. 연방거래위원회(FTC)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반독점 정책의 근간을 세우는 역할도 꽤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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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력을 가진 팀 우가 FANG으로 대표되는 거대 IT 기업의 독점 문제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요? 온건한 성향의 수많은 관료들을 상대로 “거대 기업을 해체할 경우 잠시 혼란이 있을 순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혁신적인 다른 중소기업을 키워내는 더 큰 효능이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효과적으로 설파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입니다. 팀 우 때문에 거대 IT 기업 독점 문제가 미국 정가에선 더 뜨거운 화두가 될 것이란 점입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