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즈호은행 사태로 드러난 일본 금융정보화의 민낯

전문가 칼럼입력 :2021/03/03 10:57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일본 메가뱅크 미즈호은행의 전산시스템이 장애를 일으켜 인터넷뱅킹과 현금입출금기(ATM) 등이 작동을 멈추는 바람에 은행거래를 하려던 고객들이 한동안 대혼란에 빠졌다. 장애는 지난달 28일 아침부터 시작돼 2일 오전까지 정상가동 되지 못했다.

장애 원인은 계정계시스템 업그레이드 작업 중 일어난 오류로 추정된다. 전국 5천395대 가운데 2천956대가 오동작을 일으켜 고객이 현금 인출을 위해 현금카드를 ATM에 투입한 상황에서 작동을 멈춰 기계 앞에서 몇 시간 씩 발이 묶이기도 했다.

장애가 발생한 전산시스템은 미즈호은행이 6년 여 개발기간과 연인원 35만명에 이르는 개발 인원, 그리고 초기 개발비만 4천억엔(한화 약 4조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개발했다며 의기양양하게 개통했다.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1년 사이에 3번이나 대형 장애를 일으켰다. 1일에는 급기야 은행장이 방송에 나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즈호은행은 제일근업은행과 후지은행·일본흥업은행 등 3개 은행이 통합해 탄생했다. 통합 초기에는 이들 은행의 이해관계와 은행 시스템을 개발한 정보기술(IT) 기업의 이권 다툼으로 진정한 의미의 통합을 이루지 못한 채 은행별 기존 시스템을 연계하는 상태로 시스템을 운영했다. 장애는 계속되고 빗발치는 고객 항의에 진정한 의미의 통합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개발에 착수해 오늘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메가뱅크인 국민은행이나 우리은행·신한은행 등의 계정계시스템 개발금액은 2천억~4천억원 정도다. 이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시스템임에도 장애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을 보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NTT DATA·후지쯔·히타치·일본IBM 등 일본 간판기업의 개발능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지난해 일본 대표적인 증권거래시장인 도쿄증권거래소 증권거래시스템이 장애를 일으켜 당일 약 3조엔 규모 중권거래가 무산된 사실도 이러한 객관적 의심을 뒷받침 해준다.

얼마 전엔 도쿄증권거래소 사장이 2005년부터 이번 사고에 이르기까지 5회에 걸쳐 대규모 장애가 이어진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 각지 은행시스템 개발 현장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일본 금융 관련 시스템 장해를 보면서 과연 이 같은 대규모 시스템 장애는 왜 일어나게 되었을까 다시 한번 궁금해진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일본 일본 IT 대기업의 프로젝트 관리능력 저하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은 NTT그룹을 중심으로 한 다단계 외주하청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번 미즈호은행의 시스템 개발프로젝트 하청구조를 보면 미즈호은행의 자회사 미즈호 정보총합연구소를 정점으로 1차 하청에 70~80개 회사가 참여하고 2, 3차 하청에 약 1천개 회사가 참여했다고 한다.

일본 미즈호은행 전경.(사진=이더리움월드뉴스)

물론 하청을 주고 개발을 한다고 해서 모든 시스템의 품질이 저하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5년에 걸친 개발기간 이렇게 많은 외주업체를 관리해 가면서 원만하게 프로젝트를 관리해 나가는 것 자체가 커다란 리스크가 아니었겠는가 싶다.

이런 대형프로젝트를 차질없이 진행하려면 철저한 프로젝트관리 방법론에 준거한 프로젝트관리와 품질관리가 필요하다. 이들이 그에 상응하는 프로젝트관리 방법론을 적용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참고로 필자는 일본 지방정부 공무원으로서 13년간 이들 대기업에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이들의 개발 현장을 지켜봐 왔다. 최소한 이 기간 이들이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입증된 개발방법론을 가지고 개발하는 것을 본 적 없다.

또 이러한 다수 기업이 시스템 개발에 참여하면 먼저 철저한 업무프로세스개선을 통해 업무 프로세스를 혁신하고 최첨단 시스템아키텍쳐 등을 적용해야 하지만 시스템 상당 부분이 고전에 속하는 코볼언어를 사용해 개발했다고 하니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도 이들이 빅뱅 형식으로 시스템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업무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과거 시스템을 답습한 무늬만 최신식인 시스템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이번 사태에서 보이듯 일본 은행은 프로젝트 관리능력도, 자체 시스템 개발 능력도 부족하다. 최첨단시스템 구축 능력을 검증 받지 못한 일본 국내 IT 벤더에 개발을 맡기는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스템 개발 주도권을 쥔 IT 벤더들은 넉넉한 개발 공수를 확보하고 시스템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받아 낼 수가 있으니 굳이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성도 없다.

기술 경쟁 없는 세계에서 발전이 없듯 개발된 시스템 품질도 형편없이 낮아서 수시로 장애를 일으켜 사업 영위에 곤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은 장기불황과 제로금리 정책 등으로 인해 메가뱅크와 지방은행 할 것 없이 사업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0개가 넘는 지방은행은 더욱 어렵다고 한다.

지방경제 피폐로 지방기업 대출수요가 급감해 어렵고 또한 정보시스템의 노후화로 인해 전략적으로 신규시스템을 개발하여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지만 이에 소요되는 막대한 개발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복수의 지방은행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기존 시스템 벤더가 운영하는 고가의 계정계시스템 공동운영시스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관련기사

이러한 상황이 급작스럽게 개선될 가능성은 무척 낮다. 언제가 될지 구체적 시기는 모르겠지만 경쟁력이 뛰어난 한국 금융정보시스템 관련 업체가 일본 진출 전략을 세우고 차분히 준비한다면 메가뱅크까지는 어려울지 모르나 일본 지방은행 시스템 시장에 진출할 기회는 충분히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일본에서 금융 정보화를 배웠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금융 정보화 능력이 일본을 뛰어넘어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는 현실을 바로 알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 나서면 하는 바람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본계 부품기업에서 전산관련 업무를 하다가 일본 정보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 이후 한국의 선진 정보기술(IT)을 일본에 소개하고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정보화컨설팅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겸했고 병원과 기업 등에서 IT어드바이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0년간 일본인과 같은 신분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고 느낀 점을 압축 정리한 ‘일본관찰 30년-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라는 일본 정보서적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