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수신료 폐지 국민투표를 겪고도, 연간 40만원의 수신료를 납부하는 스위스의 현황을 담은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끈다.
미디어미래연구소는 최근 ‘TV 수신료에 관한 연구: 스위스 수신료 생태계 다이나믹스’를 주제의 보고서 M-리포트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는 4개 공식 언어를 사용하고, 이를 공영방송이 각각 방송하는 방식이다.
스위스의 수신료는 공영방송사 SRG 산하 4개 방송국이 사용한다. 독일어 방송을 하는 SRF, 불어방송을 하는 RTS, 이탈리어어 방송을 하는 RSI, 로망슈어 방송을 하는 RTR 등이다. 이외에 60여개 민영 로컬 TV와 로컬 라디오가 특정 조건에 따라 수신료의 일부를 받아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 소장은 “인구 870만명 수준인 스위스가 4개 국어 방송을 하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연방국가로서 지역을 존중하며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인접하고 있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인구를 의식한 것”이라며 “국가의 정체성 수준의 문제를 넘어 높은 시장 경쟁상황을 감안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18년 수신료 폐지 국민투표도 진행됐다. ‘No Billag’란 이름의 구호는 공영방송으로부터 수신료 징수를 맡은 Billag를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투표 결과 약 72%의 반대로 부결됐다. 수신료를 계속 내야 한다는 국민 의견이 모인 것.
SRG 외에도 수신료 혜택을 받는 방송사업자가 많다는 점이 투표 결과에 영향을 줬다. 또 스위스 정부는 많은 방송 프로그램이 광고나 후원만으로 재정조달이 불가능하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현지 지식인들은 수신료가 폐지될 경우 상업주의에 치중된 인기 영합 방송으로 외국 영향력이 커지고 일반 가구에서는 기존보다 더 많은 미디어 관련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김국진 소장은 “국민투표상황은 SRG 만의 위기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결과는 수신료 수혜를 받아온 모든 시민들과 모든 사업자들의 성과일 수 있었다”며 “수신료가 실제 거둬지는 언어지역과 수신료가 할당되는 언어지역 간의 불균형도 수신료와 관련한 국민의 의사가 분산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국민투표가 진행된 뒤 현지 수신료징수기관은 Billag에서 SERAFE AG로 바뀌었다. 가구 내 단말기의 숫자에 상관없이 수신료가 부과되는 등 모든 가구는 보편적 요금을 지불하게 됐다. 또한 수신료를 일반세금으로 전환하여 모든 가구에 부과하게 되었다.
수신료 수준은 국민투표 실시 여파에 따라 2019년 451 스위스프랑(CHF)에서 지난해 365 CHF, 올해 335 CHF로 낮아졌다. 현재 약 41만원 수준이다.
이와 함께 SRG는 3대 개혁을 발표했다. 운영예산에서 1억 CHF를 절감하고, 저녁시간 영화에 대해 광고와 온라인 광고를 금지키로 했다. 수신료를 단말 기준이 아닌 모든 가구에 부과하고 민영방송 지원도 확대했다.
특히 SRG가 지상파 디지털방송을 종료한 점이 눈길을 끈다. 스위스 내에서 지상파 디지털방송신호를 직접 수신하는 세대가 적어 비용절약 차원에서 지상파 디지털송출 수신을 포기하고, SRG의 모든 TV채널은 디지털 유료방송에 의해 수신토록 한 것이다.
김 소장은 “SRG가 1억 CHF 절감조치를 선언하고, 수신료를 인하하기 시작했고 비용절약 차원에서 디지털 송출 수신을 포기한 것은 국민투표를 통한 강력한 소통의 결과”라며 “국내에서도 사안을 피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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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스위스는 TV수신료에 대한 기업들의 지불을 요구하는 것이 단지 TV신호를 수신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미디어에 대한 제도적,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정과 이에 대한 기여를 공유하는 것”이라며 “공영방송의 존재는 연방제를 유지하고 민주주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과 여론의 다양성과 교육, 오락에 기여하는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결국 수신료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며 “수신료 가치에 대한 평가가 과거에 대한 평가성도 있고, 미래에 대한 평가성도 있다고 본다면 최소한 이 둘 중 하나는 제대로 평가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