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곳간 아꼈다 어디에 쓰려고?

나라 살림·코로나 방역도 중요하지만,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전문가 칼럼입력 :2021/01/08 17:12    수정: 2021/01/08 17:25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7일 일본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7천579명을 기록했다. 3일 연속 1천 여명씩 증가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8일 발령된 긴급사태 선언 해당 지역인 일본 수도권(도쿄도, 사이타마현, 지바현, 가나가와현) 확진자 수는 4천명을 넘었다. 전국 확진자 수의 40%를 넘을 정도다.

증가 추세만 놓고 보면 다음 주까지는 하루 천명 단위 확진자 증가가 예상돼 1만명을 돌파하리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본 국민의 코로나 공포심도 커가는 것 같다.

이 와중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비롯한 소위 지도층 인사들이 연일 신년 회식을 거듭하다가 언론에 노출돼 사과를 하는 망신스러운 행태도 보도되고 있다. 한술 더 떠 여야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내놓은 대책이 ‘국회의원들이 회식을 할 때는 4명 이하로 하자’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개탄스럽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천명을 넘나들다가 이제는 1천명 이하로 내려간 한국을 보면 이 정도 상황에도 방역 당국과 정치권, 그리고 국민 긴장감은 일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것 같다. 한국에서 일본처럼 여야 정치권 고위인사나 고위 관료가 회식을 하다가 걸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불 보듯 뻔하다.

재외국민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대한민국 방역 대책은 세계적으로도 칭찬받을만한 일다. 정부 방역지침을 깡그리 무시하는 일부 몰지각한 국민을 제외하고는 참으로 훌륭한 국민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7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스가 총리는 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를 마치고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도쿄도, 가나가와, 지바, 사이타마현 등에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사진=뉴시스)

일본에서도 한국 방역대책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최근엔 한국 사례를 들어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지식인이 늘어나 비교당하는 일본 정부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한국 언론 보도나 많은 국민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정작 한국은 방역 대응에 그리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을 보고 일본 지인들은 “왜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 못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혹시 정부 발표가 전부 거짓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오히려 지난해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보여온 일본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한 대응은 국민으로부터 공분을 살 만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한국이 코로나 검사 능력을 파격적으로 늘려서 선제 대응에 나서자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의 민도가 높아서 한국처럼 코로나 검사를 늘릴 필요가 없다고 망언을 하는 정치가가 있는가 하면,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4천600억원을 들여 국민에게 마스크를 나눠 준다고 해 빈축을 샀다.

또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며 1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보조금을 줄 테니 전 국민에게 여행을 가라고 ‘고투 트레블’이라는 정책을 펴질 않나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라고 ‘고 투 잇’ 정책을 추진하다가 오늘날 코로나 확진자 급증사태를 사태를 초래하는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방역대책이 없다.

일본 국민은 한국 국민과 달리 정부에 불만이나 비난을 퍼붓기보다는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가 하면 회식 등을 자제해 코로나19 상황에서 각자도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새삼 양국 국민의 생각 차이를 느낀다.

]8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의 한 기차역에서 마스크를 쓴 출근길 시민들이 몰려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 국민이 정부에 크게 불만을 표출하지 않은 이유를 찾아보면 한국 정부도 배울 점이 있지 않나 싶어서 사례 몇 가지 소개한다.

첫째, 도쿄도 등 광역자치단체는 재택근무를 장려하기 위해 중소기업이 PC나 태블릿 등을 구매할 때 2천만원 범위에서 단말 구매 자금을 무상으로 지급했다.

둘째,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연속 3개월간 매출액이 60% 이상 감소하면 2천만원 범위 내에서 지원금을 지원했다.

셋째,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전년 동월 보다 매출액이 50% 이하로 떨어진 달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1개 기업당 상한 20억원까지 무담보로 거치기간 2년 무이자, 이후 3년간 1%대의 이자를 포함 분할 상환하는 정책자금을 지원했다.

내가 경영하는 회사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지원을 받아 경영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번 긴급사태 선언 해당 지역인 수도권에서는 식당과 유흥업소 등을 경영하는 사업자는 저녁 7까지만 주문을 받을 수 있고 8시까지는 영업을 종료해야 한다. 대신에 하루 60만원씩, 최대 월 1천800만원까지 보조받는다.

7일 일본 도쿄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시부야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도쿄도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2000명을 넘어서 일일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사진=뉴시스)

일본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자를 지원하는 대책이 많은 편이다. 아마도 일본 국민이 일본 정부의 무능과 무책에 분개하지 않는 것은 퍼주기 정책(한국식 표현으로)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 재정이 넉넉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채발행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다름 아닌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신규 국채발행을 통해 재정수지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국민 지원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어떤가. 내가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가운데 재난지원금 이외에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를 위한 정책은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코로나19에 걸려 죽으나 사업이 망해서 죽으나 매일반이라는 중소기업 경영자, 소상공인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경제 대국이면 뭐하고 일등방역국가면 뭐 하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GDP 대비 국채발행 비율이 40%대인 우리나라가 200%를 넘는다는 일본을 생각해보면 과연 국가 채무가 늘어난다고 돈줄을 꽉 틀어 막는 것이 정말 능사 일까.

국난극복을 해야 하는 이 마당에 재정건전성 우등생국가로 남는 것이 무에 그리 중한가.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자영업자가 거리로 내몰리면 실업자가 증가하고 결국, 그들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한 맞춤형 피해지원 대책을 발표한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상점에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뉴시스)

자영업자를 비롯해 수많은 중소기업 경영자가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데 방역해야 한다고 무조건 문 닫으라고 하고, 참으라고만 하면 그야말로 어려운 사람은 더 어려워지고 돈 있는 사람만 돈을 더 버는 ‘K-격차’만 더 커지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일본 정부 방역대책에 찬동을 못하고 나라 빚내서 여기저기 돈 퍼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세계 최고 방역국가를 유지할 수 있도록 묵묵히 희생해온 의료진들과 형편이 어려운 국민에게 조금 넉넉하게 돈을 나눠 주는 것은 좀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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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나 여야 정치권은 재난지원금을 선별해서 주느니, 전 국민에게 다 주느니, 한번 주고 마느니, 두 번 주느니, 이런 비생산적인 정쟁은 이제 그만하자. 이럴 때 나라 빚 좀 내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을 펼쳐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쓴다

나라 살림도 중요하고 코로나19 방역도 중요하지만,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하지 않는가.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본계 부품기업에서 전산관련 업무를 하다가 일본 정보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 이후 한국의 선진 정보기술(IT)을 일본에 소개하고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정보화컨설팅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겸했고 병원과 기업 등에서 IT어드바이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0년간 일본인과 같은 신분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고 느낀 점을 압축 정리한 ‘일본관찰 30년-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라는 일본 정보서적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