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환의 EV세상] 전기차 사용자 배려 안 한 ‘충전방해금지법 개정안’

공동주택은 여전히 단속 제외...완속충전기 12시간 제한도 현실성 떨어져

카테크입력 :2021/01/07 16:07    수정: 2021/01/07 16:07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시한 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 개정안이 대다수 전기차 이용자들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공동주택 등 거주지 내 충전 편의 방안을 아직 내놓지 않은 것이 문제로 꼽힌다.

산업부는 지난 4일자로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일부 개정해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에는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전기차 충전방해 행위 단속에 대한 개정 방안이 포함됐다.

시행령 제18조의6 제1항을 살펴보면 전기차 충전방해 행위 단속 범위는 전기차 급속충전기만 해당된다. 만약 일반 차량이 전기차 급속충전 장소에 주차하거나, 전기차가 충전 없이 충전장소에 주차할 경우, 지자체는 이 행위에 대한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할 수 있다. 반면 완속충전기는 단속 범위에 포함돼 있지 않다. 

정부는 이 점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하고, 완속충전시설에 친환경차가 충전을 시작한 이후 최대 12시간까지만 주차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가 구축한 완속충전기 앞에 정차된 벤츠 E클래스 300e 4MATIC 차량. 충전구는 차량 뒷편 오른쪽에 있다.

현실성 없는 완속충전기 12시간 사용 제한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급속충전 장소에서 2시간 이상 주차하거나 완속충전 장소에서 12시간 이상 주차할 경우 과태료 10만원을 부과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공 완속충전기는 주로 쇼핑몰, 지자체 주민센터, 숙박시설 등에 위치해 있다. 특히 일부 쇼핑몰의 경우 전기차 완속충전과 상관없이 주차 시간 누적에 따라 별도의 주차 요금을 차량 소유주에게 부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완속충전기 사용 제한 시간 12시간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기차 이용자는 네이버 ‘전기차 사용자 모임’ 카페에서 “본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나 직장을 제외한 공공완속충전 시설에 10시간 이상 충전할 이유가 없다”고 평가했다.

스타필드 하남에서 완속충전이 진행중인 현대차 아이오닉 플러그인 (사진=지디넷코리아)

완속충전기는 순수 전기차 뿐만 아니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도 쓸 수 있다. 지디넷코리아가 최근 벤츠 GLC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서울 학여울역 SETEC 주차장 완속충전기를 써본 결과, 배터리 0에서 100%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다.

순수 전기차 사용자들도 시간에 따라 완속 충전 시간과 충전량을 조절할 수 있다. 이는 내연기관 차량이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방식과 똑같다. 특히 장거리 주행의 경우, 완속충전기보다 급속충전기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공 충전 장소에서 12시간동안 머물 일은 거의 없다. 

만약 정부의 완속충전기 12시간 사용 지침이 확정된다면, 일부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소유주의 꼼수 충전 및 주차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같은 상황이 생기지 않기 위한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 지하 2층 주차장에는 위반 행위 과태료 부과 내용이 담긴 '전기차 충전소' 문구가 있지만, 일반차 주차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아파트 충전 스트레스는 여전히 지속될 듯

국내 전기차 연간 등록대수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자동차 분석 기관 카이즈유에 따르면 지난해 신형 전기차 등록대수는 4만6천677대로 전년(2019년) 누계 대비 33.2% 올랐다.

올해 현대기아차가 아이오닉 5와 CV(코드명) 등을 출시하고, 테슬라가 모델 Y 등을 내놓으면 전기차 연간 판매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아파트 등 공동주택 내 전기차 충전 편의성 강화 대책은 여전히 없다. 특히 공동주택에도 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기차 오너들의 거주지 내 충전 스트레스는 앞으로 더 이어질 전망이다.

대전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 이정표. (사진=지디넷코리아)

산업부가 제시한 개정안을 살펴보면 “단, 아파트 등 주거시설에 설치된 완속충전기는 주로 야간수면시간에 사용되는 특성을 고려해 단속대상에서 제외”라고 표기됐다. 산업부는 이같은 특성이 어떤 자료나 통계에서 나왔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아파트 내 전기차 충전에 대한 이웃 간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전기차 충전 공간을 전용 주차 공간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발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파트 입대위 등에서 전기차 충전 시설 설치를 불허할 경우, 전기차 오너들은 외부에 있는 전기차 충전 장소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전기차 오너 A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완속 충전 공간에 주차한 내연기관 차량을 목격했다. A씨는 정중하게 전화로 차량 이동을 부탁했지만, 내연기관 차량 차주는 이 부탁을 거절했다. 주차공간 부족이 주된 이유다.

또 다른 전기차 오너 B씨는 야간이 아닌 주간에도 자신의 전기차를 아파트 내에서 충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정부가 다양한 전기차 사용자들의 거주지 충전 패턴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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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등 공동주택 거주자들을 위한 전기차 충전대안으로 벽면형 충전기와 220V 콘센트 활용 충전기등이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현재 시점에서 제시한 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 개정안은 입법예고 단계다. 산업부 자동차과는 다음달 15일까지 이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개정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만약 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에 대한 대중의 반대 여론이 더 많아질 경우, 해당 개정안에 대한 보완과 수정이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