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 민사소송 첫 변론기일이 30일 열립니다. 쉽게 얘기하면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에게 망이용대가를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SK브로드밴드는 받아야 한다고 법정에서 다투는 것인데요. 양측의 주장이 팽팽합니다. 이미 유사한 내용으로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데 페이스북이 지난 9월 2심까지 승소했습니다. 때문에 ICT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소송마저 진다면 디지털 주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이러한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기도 했는데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소송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크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사안입니다[편집자주].
넷플릭스가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낸 이유는 간단합니다. 통신사의 망을 이용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CP는 망운용, 증설, 이용 등에 대해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게 요지입니다.
망의 품질을 유지‧관리하는 책임과 의무는 통신사에게 있으니 이를 근거로 CP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게 부당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라 보입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정 내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트래픽이 급증할 것을 우려해 넷플릭스가 품질을 하향 조정해 서비스를 한 사례가 있습니다. 즉, 망의 이용과 품질에 CP가 관여할 수 있는 방증이지요.
■ 1년 새 넷플릭스 가입자 2배, 통신사 망운용 부담 폭증
실제, 국내에서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도 품질에 따라 가격을 달리 받고 있습니다. 기자도 넷플릭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월 9천500원의 베이식 상품은 기본 화질, 월 1만2천원의 스탠다드는 풀HD(1080p), 월 1만4천500원 프리미엄은 풀HD(1080p)와 UHD(4K) 등으로 화질을 달리 제공합니다. 단지 동시접속 계정 숫자에 따라 가격에 차등을 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지요.
따라서 CP가 망운용이나 증설을 직접 하진 않지만 이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더욱이 한국에서의 넷플릭스 성장세를 감안하면 국내 통신사들의 망운용 부담은 적지 않습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넷플릭스는 실적발표에서 3분기 신규 유료 가입자가 당초 목표치에서 30만명 부족한 220만명으로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신규 가입자의 47%가 한국과 일본이 주인 아‧태평양 지역에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아‧태평양 매출은 전년대비 6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로이터는 9월말 기준으로 한국 유료 가입자가 3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지난해 9월 유료가입자가 15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2배 성장을 한 것이죠.
한 마디로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서 폭발적 성장을 하는 동안 국내 통신사들의 망 트래픽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 정부 “구글‧넷플릭스‧페이스북 망 안정성 유지 의무 지켜야”
페이스북에 이어 넷플릭스까지 국내 통신사와의 분쟁이 발생하면서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소비자들의 영상 콘텐츠 소비행태가 변화하고 대용량화‧모바일화하면서 법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분쟁이 잦아질 것을 대비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기 위한 이유가 컸습니다.
개정된 법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국내‧외 CP들과 오랜 논의를 거쳐 ▲일 평균 이용자 수 100만명 이상 ▲일 트래픽 양이 국내 총 트래픽의 1% 이상을 차지할 경우 안정적 서비스 제공을 위한 의무 규정을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업자는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5개사입니다.
해당 법안에는 5개 CP가 ‘오류없이 정상적이며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토록 했는데 ▲서버 다중화를 위한 데이터센터 및 서버 구성의 다중화 ▲콘텐츠 전송량 최적화를 위한 최적 해상도 설정 및 인코딩 기술 개발 등이 포함됐습니다.
또 안정적 서비스를 위한 조치를 위해 반드시 통신사와 협의토록 했고 ▲데이터 센터를 보호하기 위한 서버 보안 관리 ▲네트워크 트래픽 모니터링 시스템 운영 ▲서비스 장애 시 대응 체계 구성 ▲ISP 약관과 품질 차이 발생 시 이용자에 고지 등이 포함된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국내에서 이 같은 법이 만들어지는 동안 구글, 넷플릭스를 포함해 미국에서 기민하게 대응했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자칫 한국에서의 사례가 다른 나라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기 때문이겠지요.
당시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내 사업자들보다 글로벌 사업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했고 이를 대리하는 로펌에서는 통산 문제, 법이 통과된 직후부터는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면서 “때문에 연구반에는 자유무역협정팀 직원도 참여해 주의 깊게 살펴봤고 특정 기업이나 국가를 목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 통상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검증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사업자들이 법을 준수하겠다는 의사표명을 했다지만, 이들에게 준수토록 한 내용이 자율규제에 가까운 이유도 이처럼 통상 문제라는 애로사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와의 분쟁을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 대신 민사소송으로 가려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국내 정책에 적극 따르겠다고 하지만 망이용대가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법정으로 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 넷플릭스가 망이용대가 내면 요금이 오른다?
여기서 간단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만약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망이용대가를 지불하면 넷플릭스가 이용자들로부터 받는 이용료가 올라갈까요?
넷플릭스를 포함한 사업자들은 통신사들이 이용자들로부터 통신요금을 받고 있는데 CP에게 요금을 청구하면 이중부과이고, 또 망이용대가를 받으면 CP는 요금을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같은 인과관계는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어려운 얘기지만, 통신과 인터넷시장은 양면시장(Two Sided Market)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통신사를 규제하는 방법 중 ‘상호접속료’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형 사업자와 중‧소형 사업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인터넷에서는 트래픽을 많이 유발하는 사업자는 조금 더 돈을 내고 중‧소형 사업자들은 일정부분까지 면제를 해줍니다.
앞의 얘기는 사업자 간 이슈지만 또 다른 속성이 있습니다. 통신사들이 기업들에게 받는 비용과 소비자들에게 받는 비용을 적정한 비율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기능입니다. 즉, 통신사가 기업들로부터 받는 비용이 많아지면 소비자들에게는 적게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은 인터넷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부담이 조금 더 많았지만 이제는 소비자의 부담은 줄이고 인터넷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추세로 가고 있지요.
쉽게 얘기하면 오히려 넷플릭스 같은 사업자가 망이용대가를 내지 않아서 통신사가 망의 유지‧보수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면 통신비가 올라갈 수 있는 개연성이 더 큽니다.
실제, 2016년 미국에서는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케이블4위 사업자인 차터(Charter)가 2위 사업자인 타임워너케이블(TWC)과 6위 브라이트 하우스(Bright House)의 합병을 신청했고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를 승인하는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이 중 하나가 향후 7년간 OTT를 포함한 CP에게 망이용대가를 부과하지 않고 연동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미국 케이블‧통신사는 국내와 달리 전기통신사업자가 아니라 인터넷접속사업자입니다). 차터가 자사 케이블가입자가 OTT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OTT 사업자에게 높은 망이용대가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지요.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용자들의 콘텐츠 이용행태가 변화하는 트렌드의 영향이 있긴 했겠지만 망이용대가를 내지 않는 덕에 미국의 OTT사업자들은 크게 성장한 반면, 차터는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차터는 망이용대가 무료 의무 조기 일몰을 요청했고 FCC는 연내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차터 이용자들은 FCC를 법원에 제소했습니다. FCC의 승인 조건 때문에 초고속인터넷 요금이 인상됐고 인터넷 품질이 저하됐다는 이유입니다. 이용자들은 최소 5%에서 40%의 요금인상을 경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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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넷플릭스가 망이용대가를 내서 요금이 올라갈 가능성보다 이로 인해 망운용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통신사가 기존 가입자를 대상으로 요금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법원에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양측의 주장 중 어느 것을 더 합리적으로 판단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