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3억5천만 명이 쓰는 간편결제서비스 페이팔이 비트코인 매매와 결제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암호화폐 기반 금융 및 커머스 분야에 뛰어든 셈이다.
페이팔의 이번 행보는 암호화폐 대중화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일반 대중이 페이팔을 통해 암호화폐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페이팔 행보에 자극 받은 다른 주류 금융 업체들이 암호화폐 사업 추진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가 주류 금융 산업에서 다뤄지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더이상 '암호화폐가 사기냐 아니냐'는 논란도 자연스럽게 종식될 것으로 예상된다.
페이팔, 암호화폐 사업 과감하게 추진...어떤 큰 그림 그리나?
페이팔은 지난 21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연말까지 페이팔 지갑에 암호화폐 보관 및 사고 팔기 서비스를 추가하고, 내년 초에는 모든 가맹점에서 암호화폐를 이용한 결제를 가능케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페이팔은 크게 '암호화폐 매매 중개업'과 '암호화폐 결제업' 두 가지 방향으로 암호화폐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투자 자산'과 '화폐'라는 암호화폐의 두 가지 성격을 모두 활용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페이팔의 암호화폐 매매 중개 서비스는 사실상 암호화폐 거래소와 동일한 기능을 제공한다. 페이팔 내에서 암호화폐를 보관·구매·판매가 가능하고, 실시간 가격 변화 추적도 가능하다. 지원하는 암호화폐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비트코인캐시, 라이트코인 등이다.
미국 내 페이팔 계정 소유자는 몇 주 안에 이런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이 같은 기능을 간편송금서비스 벤모로 확장하고 해외에서도 이용하게 할 계획이다.
주목할 점은 페이팔이 단순 암호화폐 매매 중개를 넘어 '암호화폐 금융'으로 사업을 확장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페이팔이 암호화폐 커스터디 전문 업체에 대한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커스터디는 고객 자산을 보관해주고 수수료를 받거나 고객 예치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는 방식의 금융 서비스다. 커스터디 업체를 인수하면 페이팔 내 예치된 암호화폐와 연계해, 다양한 금융 상품을 만들고 운용하는 식의 암호화폐 금융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페이팔이 인수를 위해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빗고(Bitgo)'는 미국에서 암호화폐 기반 커스터디 사업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업체다. 금융산업감독기구(FINRA)의 브로커딜러 라이선스를 획득했고, 자산이전 대행업 및 신탁회사 등록도 마쳤다.
페이팔의 암호화폐 시장 진출 이유에 대해 국내 암호화폐 정보업체 쟁글은 "월렛에 담긴 암호화폐 자산을 대상으로 금융 상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핀테크 비즈니스 확장이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페이팔은 또, 내년 초부터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페이팔에 따르면 전 세계 2천600만 가맹점에서 암호화폐 결제를 받을 예정이다. 가맹점 정산은 결제 당시 시세에 따라 환산한 '법정화폐'로 이뤄지게 해 가맹점이 암호화폐 시세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했다.
암호화폐로 결제가 이뤄지면 페이팔과 가맹점은 결제 수수료를 절감하고 정산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투자자산으로 보유한 암호화폐를 결제에 쓸 동인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용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해 보인다.
암호화폐로 결제하면 '보상'을 지급하는 등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실제 법정화폐로 결제가 이뤄지지만 정산은 암호화폐로 이뤄지게 시스템을 만들 가능성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비트코인 제국주의'를 쓴 한중섭 작가는 "결제를 하면 암호화폐를 리워드를 주는 서비스도 붙일 수 있고 나중에 (화폐 성격이 강한) 페이스북 리브라 같은 스테이블 코인이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를 이용할 수 있게 지원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또 "암호화폐로 결제 하면 즉시 법정화폐로 전환되는 구조를 심리스하게 만들면 결국 이용자와 가맹점은 사실상 법정화폐로 거래하고 중간에 정산만 암호화폐로 이뤄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 작가는 "이 같은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이 모기업인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 연동될 경우, 암호화폐가 커머스 영역에서 실제 쓰이는 사례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해석했다.
페이팔, '주류 금융의 암호화폐 채택' 불씨 당겼다
페이팔의 암호화폐 사업 진출은 암호화폐 대중화에 결정적인 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페이팔 자체의 글로벌 이용자·가맹점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영향력도 대단하지만, 다른 주류 금융 업체에 자극이 됐다는 점에서 더 큰 파급이 예상된다.
그동안 많은 핀테크 업체와 금융 기관들이 암호화폐 사업을 검토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페이팔이 과감하게 치고 나가면서 다른 주류 금융 서비스 업체들도 실제 암호화폐 관련 상품을 내놓기 위해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페이팔 역시 경쟁 핀테크 업체 '스퀘어'가 비트코인 매매 서비스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서비스 지원을 결정한 것이다.
스퀘어는 2018년부터 자사 모바일 앱 '캐시앱'에서 비트코인을 간편 구매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캐시앱 매출 중 비트코인 관련 비중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2분기에는 전체 매출 중 절반이 넘는 8억7천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600% 증가한 수치다.
특히 미국 정부가 암호화폐를 금융 상품의 일종으로 본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기존 금융 사업자들이 이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미국은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 방지(AML), 테러자금조달차단(CFT)에 대해선 규제를 강화하는 반면, 암호화폐가 금융 산업으로 편입될 수 있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재무부 산하 은행 규제감독기관인 통화감독청(OCC)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인가를 받은 모든 은행은 암호화폐 커스터디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공개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OCC는 오는 10월 중 은행이 디지털 자산을 취급할 때 준수해야 할 절차와 정책에 대한 매뉴얼도 배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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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 출신으로 블록체인 업체 밀크파트너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정민 대표는 "지금은 핀테크 서비스들이 널리 쓰이지만 처음에는 은행이 아닌 곳에 돈을 보관하고 전송하는 걸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며 "암호화폐 대중화가 페이팔 진출 하나로 해결되진 않겠지만 분명 시발점이 될 것이고, 더 많은 서비스가 나오고 저변이 확산될 수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조 대표는 또 "페이팔의 암호화폐 진출은 주류 금융 산업에서 '비트코인을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동아 '암호화폐의 쓸모'를 놓고 의구심이 많았는데 이런 논란도 곧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