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시니어 가수의 추석맞이 ‘대한민국 어게인’ 이벤트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눈을 맞추고 호흡하며 노래를 불러 왔을 일흔 넘은 백발가수의 대표곡 중에 ‘무시로’와 ‘갈무리’라는 제목이 새롭게 다가왔다. 별 생각 없이 들었던 노래였는데,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이들 단어의 의미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시로’의 말뜻은 ‘시시때때로’ 혹은 ‘수시로’의 방언이라 하고, ‘갈무리’는 ‘저·장 정리하다’ 혹은 ‘잘 마무리하다’라는 표준말이다. 그러므로 두 단어를 합쳐서 ‘무시로 갈무리하라’는 말은 ‘그때 그때 일을 잘 마무리하라’는 뜻이 된다. 인생에서 그때 그때 일을 잘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기업의 경우도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무시로 갈무리’하는 일은 모든 관리자들의 업무원칙이 될 것이다. 스타트업(start-up)의 경영기법에 그때 그때 일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OMTM(one metric that matters)’이라는 개념이 있다.
OMTM은 제일 중요한 하나의 성과지표를 일컫는다. 창업기업은 짧은 시간에 민감도 높게 변화관리를 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자원이 부족한 그들에게 한꺼번에 여러 목표를 동시에 쫓고, 성과지표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비용효율적이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 창업기업은 특정 시점에 오직 하나의 혁신지표에 관리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초기에는 앱 방문자의 숫자, 그 이후는 재방문율, 다음에는 활동성 높은 사용자의 증가, 매출 전환율, 그 다음은 인당 매출 증가율 등.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가치가설과 성장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단계별 성과지표를 시의적절하게 선택하여 ‘무시로 갈무리(수시로 잘 마무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회사가 성장하면 관리자들이 섣부른 일을 시작하곤 한다. 성과지표를 보다 정교하게 만든다고 OMTM에서 ONE(하나)을 떼어내고 복수의 성과지표인 MTM(metrics that matter)을 창의적으로 도입하려 하는 것이다. 부서별, 직위별, 개인별로 적게는 7개에서 10개 이상의 지표를 부여한다. 담당자가 무시로 갈무리하기에는 에너지를 너무 많은 일에 분산시켜 버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경험에 따르면 목표가 3~5개 이상이 되면, 서로 다른 지표 간에 모순의 관계가 발생하기 쉽다. 한 지표를 개선시키면 다른 지표의 달성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성과지표를 직원에게 강제하는 것은 결국 담당자에게 ‘아무 일에도 집중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 아티카의 강도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행인을 잡아 철제 침대에 뉘이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자르고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잡아 당겨 죽였다고 한다. 침대의 길이를 몰래 조절하였기 때문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영웅 테세우스에게 붙잡혀서 같은 방법으로 침대에서 죽기까지, 프로크루스테스는 이러한 악행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신화는 획일화된 규율과 기준으로 인간에게 폐해를 주는 강제된 권력을 풍자하지만, 프로크루스테스는 침대의 길이를 남 모르게 조작할 수 있었으니, 외견상으로는 OMTM으로 포장된 MTM 침대라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프로크루스테스는 들킬 것을 걱정하면서, 희생자 몰래 침대의 길이를 조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좀 더 악랄했다면, 키만 재지 않고, 발의 길이와 너비, 머리의 크기, 목과 팔의 두께와 길이, 배와 둔부의 사이즈, 정강이의 크기, 코와 귀의 높이까지 재어보고, 넘치면 베어내고, 모자라면 당겼다면 어떠했을까? 지구상의 누구도 그러한 기준을 통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성과지표를 OMTM이 아니고 MTM으로 만드는 일이 이와 같다.
사업목표와 가치지향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섣부른 MTM 성과지표를 들이대어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고 이해당사자들을 당혹하게 하는 관리자들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은 융통성이 없는 정책을 전개하면서 민원이 없기를 바란다. 접근이 쉬운 시스템을 요구하면서, 보안성이 떨어진다고 트집을 잡는다. 서비스 인력을 줄여가면서 보다 높은 고객만족도를 요구한다. ‘아포리아(aporia)’는 그리스어로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혹은 모순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맥락적 사고가 결
여된 아포리안 매니지먼트(aporian management)가 이곳 저곳에서 득실댄다.
오랜 시간 달이고 삭혀야 맛이 나는 음식처럼, 바다 건너 들어온 서양의 음율은 100여년의 뜸을 들여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트로트 음악이 되었다. 음악이 좋아 노래하길 수십 년, 무명가수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짓는 중견가수들을 볼 때면, 삶을 공유한 동네 형동생의 이야기 같아 가슴이 저리고 따라 울게 되기도 한다. 그런 가수들이 노래방 기계로 자기 노래를 부르면 점수는 형편없게 나오곤 한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기계의 점수 만으로 가수의 열창을 평가 절하하지 않는다. 신호처리 샘플링으로 점수를 셈하는 노래방 기계가 온몸을 전율시키는 트로트 가수의 감동 어린 노래를 옳게 평가한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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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열정적으로 몰두할 과업을 가진 직원에게 여러 가지 MTM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섣부른 짓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일을 잘 알고 처신한다. 그들의 의기를 꺾지 않도록 관리자들은 MTM화된 지표에 유의해야 한다. 그 대신에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은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어떤 일이 직원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지, 그 일이 잘되었다는 것을 본인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더욱 잘하도록 하려면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될 지”와 같은 질문이다.
결론적으로 관리자가 과업을 ‘무시로 갈무리(수시로 잘 마무리)’하려 한다면, 각 시점에 걸 맞는 OMTM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로 그 관리자의 상사에 의하여 언젠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강제로 눕혀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니어 가수의 ‘무시로’와 ‘갈무리’ 노랫말에서도 한가지 경영의 지혜를 찾아본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