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파이법(Delphi method)이라는 의사결정기법이 있다. 그리스어로 ‘델피’, 고대 그리스어로는 ‘델포이’ 라 불렸던 도시국가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델피는 지금은 몇 개 기둥만 남아 폐허가 되어버린 산 중턱의 아폴로 신전이 유명하며, 아폴로가 ‘예언의 신’이기도 하니 당시에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참배객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델포이에서 국가적인 이슈가 생기면 ‘퓌티아’라 불리던 여 사제가 신전의 뒤편 동굴 아래에서 올라오는 유황가스에 취하여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고, 남자 사제들은 이를 오라클(신탁)로 해석하여 시민에게 선포했다고 한다. 이런 사유로 미래를 예측하는 전문가적 의사결정 기법에 생뚱맞은 ‘델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델피의 사제가 전한 신탁은 절대적이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나는 일로 간주 되었는데, 시점이나 표현을 모호하게 만들어서 신탁의 해석이 모두 그럴 듯 했다고 한다. 당시의 사제들은 여러 나라에 깔아 놓은 정보원을 통하여 국제정세에 관련된 고급정보에 접근하려 노력했을 것이고, 신탁의 권위를 깨지 않을 예언을 구상하기 위해 집단지성을 활용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조직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한데, 조직의 결정이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미리 가정한다면 따르는 백성을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델파이 사제의 근심은 근대 가톨릭 교회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승되던 무류성(無謬性)의 원칙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빈번한 신학적 도전 속에서도 교회는 몇 가지 무류성의 교리를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즉 개별교회는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 교회에 의한 결정은 무류하며, 개별 주교의 결정은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 주교단의 결정은 무류하고, 보통 10년 넘게 심도 깊게 토의하는 종교회의(공의회)의 결정은 무류하며, 교황의 가르침 역시 도덕과 신앙에 한정되어 공적으로 선포될 경우 무류하다는 네 가지 교리이다.
네 가지 무류성 중에서 세가지는 집단지성(혹은 통찰)에 의한 결정과 관계된다. 집단지성이라고는 하지만 델파이 의사결정기법이나 무류성 교리의 근저에는 엘리트주의가 내재되어 있다. 불완전한 개별 인간이나 비전문가 집단은 실수하고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도메인에 대한 지식이 충분한 전문가 집단이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목자의 집단적 결정은 오류가 없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도래하면 과거의 전문성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집단의 심리적 편향에 의한 오류는 항상 발생될 수 있고, 미래를 단순하게 바라 봄으로서 상황이 예측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될 돌발 변수를 쉽게 간과하는 전문가 의사결정방법의 역기능을 사회과학자들은 제기한다.
일례로 스탠포드대학교의 힌즈(Pamela J. Hinds) 교수가 주창한 전문가의 저주(The curse of expertise, 1999)는 이러한 전문가 의사결정방법의 역기능을 잘 설명해준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작업성과를 예측하는 실험에 있어서, 전문가 집단은 도메인 지식이 일천한 신참자 보다 못한 예측결과를 보였고, 과업의 완료시간을 추정하는데 있어서 정확도가 가장 떨어졌으며, 새로운 대안을 생각하는 일에도 저항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이한 일은 중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이 가장 정확한 예측을 했다고 한다.
16년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는 21대 총선이 지나갔다. 이를 누구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립, 사회계층간의 이원적 대립관계로 단순하게 해석한다. 그러나 과학적 통계기법과 AI/머신러닝/딥러닝의 뛰어난 정보기술이 보편화된 지금도 투표함을 열어보기까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미디어의 견해를 들을 때마다, 민초들의 집단적 의사결정이 마치 2천년 전의 델파이 신탁 보다 탁월하다고 느껴진다.
바이러스가 없다면 치료하는 백신도 만들어낼 수 없듯이, 인공지능/머신러닝/딥러닝의 학습모델은 데이터의 과거 패턴이 다가올 미래에도 유사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하여 결과를 예측한다. 그러나 물리학자인 타이슨(Neil deGresse Tyson)이 언급한 바와 같이 “과학에서 인간의 행동이 방정식에 포함되면 상황이 비선형으로 변한다.”
한마디로 인간이 활동의 주체가 되면, 전개될 상황을 예측하기 너무 어렵게 된다는 말이다. 백이면 백 명의 생각과 행동패턴이 다양하니,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선형적 예측은 부질없는 짓이다. 노자의 도덕경 73장에는 “천망회회 소이불실”이라는 말이 있다. 델피의 신탁처럼 모호한 말이지만, 혹자는 이를 “하늘의 그물은 얼기 설기하지만, 뭐하나 놓치는 것이 없다!”고 해석한다.
나는 ‘하늘의 그물’을 인간군상의 네트워크로, ‘뭐하나 놓치는 것이 없다’는 말은 오류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그러므로 다양성이 충만한 보통사람이 발현하는 통합적 집단지성은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오류란 과거의 기준으로 판단한 이상치 값이지만, 관점을 달리한다면 상황이 바뀐 것을 알려주는 귀중한 증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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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개성의 총체적 집단지성은 세상을 견인하는 주류이며 정상이지 오류가 아니다. 평범한 인간들이 부지불식간 형성한 네트워크 지성은 결코 예측하지 않는다. 네트워크 지성은 스스로 조직화하고 미래를 만들어 갈 뿐이다.
그 결과로서 예상과 다른 사건이 노골적으로 벌어졌다면, 전문가들은 세상을 못 보는 ‘전문가의 저주’에 걸렸는지 자신을 먼저 경계해야 한다. 통합적 집단지성에 의한 역동적 세상변화를 센스 없이 알아채지 못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헛다리 짚은 전문가들이 하늘의 신탁 앞에 겸손해져야 할 시점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