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에서 과학을 ‘깜깜한 어둠 속의 촛불’로 비유하며, 사람들이 암흑과 같은 사이비과학(pseudoscience)에 현혹되지 않도록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의 빛을 가져야 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참혹한 역사를 생각할 때, 과학적 근거가 없는 편향된 신념이 불러일으킬 위험을 경고한 그의 주장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인문학자는 과학 지상주의의 폐단을 말한다. 그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더라도 상상력은 인류 발전의 동력이라고 일갈한다. 그리스/로마신화는 물론이고 종교경전 속의 신화적 스토리는 인간공동체의 귀중한 지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과 ‘헤리 포터’와 같은 판타지 소설은 물론 재미난 액션 어드벤처 게임 역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비과학적 상상력은 문명을 진보시켰고,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를 축적했다. 사회 파괴적인 사이비 과학에는 유의해야 하지만, 지나친 합리주의 철학이 사회복리를 저해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도 설득력은 있다.
이처럼 과학과 사이비과학, 사실과 신화는 마치 평행저울처럼 상대가 있음으로써 존재하는 실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둘 다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양비론(兩非論)이 일리가 있다면, 양쪽을 절충하는 중심개념이 필요해진다. 결국은 생각하는 주체로서 인간의 절제된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양극단의 주장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떤 지혜를 가져야 할까?
우리는 신화적 비유로 현재의 상태를 해석하기도 하고, 과학적 이론으로 신화 속에 내재한 합리적 지혜를 건져 올리기도 한다. 상상력(신화)으로 과학을 비유하고, 과학으로 상상력을 판단하는 접근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접근을 위한 좋은 스토리가 시간에 대한 신화이다.
희랍인들은 상대성 이론처럼 이해가 쉽지 않은 시간에 신화적 상상력을 덧붙였다. 시간을 설명하는 신화 속 세 명의 신은 크로노스(Chronos), 아이온(Aion), 카이로스(Kairos)이다.
첫번째 크로노스는 제우스의 아버지로서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르는 물리적 시간을 상징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여러 사람에게 공히 적용되는 객관적 시간이고 정량적으로 측정가능하며 선후가 있는 시간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상대적 크기가 있고 양을 비교할 수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공간 상에 표시한다면 x축으로 길게 뻗어 나가는 눈금표시가 된 선형적인 화살표와 같다. 서양에서는 고급 시계를 크로노미터(chronometer)라 부르곤 하는데 좀 더 멋져 보이려 이름 붙인 듯싶다.
두번째 아이온의 시간은 조금 발전된 차원의 사회적 시간 개념이다. 풍차나 수레바퀴와 같이 순환하는 환원적 시간을 의미한다. 고대의 그림에서 아이온은 반복되는 춘하추동 4계절, 1년 12개월, 하늘의 열두 별자리처럼 영원히 순환하는 이미지와 함께 묘사된다. 아이온의 시간에는 봄에는 씨 뿌리고 가을에는 추수하는 농경사회의 반복되는 시간개념이 투영되어 있다. 아이온의 시간은 앞선 것이 알고 보니 뒤에 있기도 한 선후가 불분명한 시간으로 공간 상에 표시한다면 커다란 환원이다.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아이온의 시간은 설명이 쉽지 않아 자주 생략되곤 했다. 기독교 교리에 윤회의 개념이 없고, 종말론적 인과관계에 아이온의 순환개념이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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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카이로스의 시간은 더욱 발전된 차원의 철학적 시간개념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공간의 한 점으로 상정된다. 그 점은 기하학의 정의처럼 크기도 면적도 없다. 크기를 계량할 수도 없고, 선후도 없으며 접신(接神)하는 깨달음의 순간이며 한 순간의 이벤트이지만 평생 동안 기억되는 개인적 경험의 시간이다. 마치 X맨 영화에서 주변 환경은 정지되어 있는데, 순식간에 적들의 무기를 제거하는 절대자의 초월적 활동시간을 의미한다. 그러한 이유로 카이로스는 ‘행운의 신’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고대 그림에서 카이로스는 앞머리 털만 있고, 뒤 머리는 벌거숭이 대머리로 그려진다. 한번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기회와 행운을 상징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최소한의 자가격리 14일은 크로노스 시간처럼 누구나 거쳐야 하는 물리적 시간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지나가도 제2의 무서운 질병이 아이온의 순환시간처럼 또 다시 우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간에는 공동체적 협동이 필요한 사회적 시간이다. 그리고 마침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금의 곤란은 조만간 사라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때가 되면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는지 생각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아이온의 시간인 현재에는 문제의 발생원인으로 타인을 가리키는 짓은 나중에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내가 가리킨 손가락이 다시 내 뒤통수를 가리키는 순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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