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PC 주변기기'였던 웹캠이 코로나19로 보편화된 원격근무·온라인 학습으로 제2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웹캠을 할인하는 예약판매가 사흘만에 마감되는가 하면 20년 전에나 쓰였을 법한 30만 화소 제품이 등장해 저가 수요를 공략한다.
서울 도심 집회에 따른 신규 확진자 폭증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던 이달 초 국내 웹캠 판매량은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부 대형 업체는 지난 1일 웹캠 하나로만 수천만 원어치 매출을 올렸다.
웹캠을 구하지 못한 각급 교육기관이 조달 플랫폼이 아닌 오픈마켓에서 웹캠을 구매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유통 업계는 이런 흐름이 코로나19 확산 여부에 따라 올 연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 신규 확진자 치솟던 9월 초, 웹캠 수요도 폭증
지디넷코리아가 한 중견 유통업체를 통해 제공받은 판매 자료(6/8-9/22)에 따르면, 광화문 집회로 인한 확진자 폭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9월 이후 웹캠 판매량이 크게 늘어났다.
※ 참고 : 6월 8일부터 9월 22일까지 해당 업체의 웹캠 전체 판매량을 집계함. 코로나19 확진자는 질병관리청과 국가통계포털이 제공한 수치를 활용. 구체적인 수치는 해당 업체 요청에 따라 비공개.
특히 이달 1일에는 일평균 웹캠 판매량의 60배가 넘는 물량이 온라인을 통해 판매됐다. 네이버 데이터랩이 제공하는 '쇼핑인사이트' 검색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 날 웹캠 정보를 검색한 소비자 비율이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주요 오픈마켓의 웹캠 판매량도 이달 들어 크게 늘어났다.
지마켓은 "이달 1일부터 23일까지 웹캠 판매량을 8월 같은 기간과 비교한 결과 2.9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11번가 역시 이달 23일까지 웹캠 판매량이 8월에 비해 4.3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 30만 화소급 저가 제품에 '웹캠 예판'도 등장
현재 국내 시장에서는 중고 거래를 제외하고 마이크로소프트, 로지텍 등 해외 유명 제조사의 웹캠을 거의 구할 수 없다. 몇몇 업체가 OEM으로 들여오는 제품도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다.
한 대형 수입사 관계자는 "국내 연간 웹캠 판매량이 워낙 적었던 데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으로 가는 물량이 많아 8월 말 이후 거의 수입이 멈춰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지역 교육청에서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1~3만원대 웹캠으로도 온라인 수업 참여에 큰 문제가 없다"고 안내한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해당 가격대에 구매할 수 있는 웹캠은 해상도나 화질, 음질이 크게 떨어져 출석 체크용 이외에는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저가 웹캠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자 일부 업체는 2000년대 초반 화상채팅 용도로 많이 팔렸던 30만 화소급(640×480 화소) 웹캠을 국내에 다시 들여와 1만원대 초반에 판매중이다.
홍콩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제품 가격과 배송료를 합해 약 7달러(약 8천300원)에 판매되는 30만 화소급 웹캠을 공수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한 국내 PC 주변기기 업체는 200만 화소급 풀HD 웹캠 신제품의 예약 판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정가 6만원대의 제품을 25% 할인판매하자 수천 개가 넘는 제품이 불과 3일만에 매진됐다. 다음 추가 제품은 10월 중순 이후에나 들어올 예정이다.
■ 오픈마켓에서 웹캠 사는 각급 학교들.."눈치작전 불사"
일부 학교에서는 조달청 나라장터가 아닌 일반 오픈마켓을 통해 웹캠을 구매하고 있다. 오픈마켓을 통한 웹캠 구매시는 예비비나 교재비 등을 활용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온라인 쇼핑몰 판매자는 "웹캠 유통사가 조달청 나라장터에 새 물품을 등록하는데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반 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당장 웹캠을 써야 하기 때문에 이런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매자들은 대부분 사재기 등을 막기 위해 웹캠 판매 수량에 최대 2개까지 제한을 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대여섯 개, 더 나아가 20개 이상을 한꺼번에 구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판매자와 학교 측의 '눈치작전'이 벌어진다.
이 판매자는 "구매를 진행하는 학교 담당자가 먼저 품의를 올리고, 재가가 난 다음 이 사실을 판매자에게 알려준다. 판매자는 판매 갯수 제한을 재빨리 풀고 학교 측의 구매가 끝나면 이를 원상복구한다"고 말했다.
■ 없어서 못 파는 웹캠 시장, 끝날 기약이 없다
연간 수요가 고작 수 천개 규모였던 국내 웹캠 시장은 올해 내내 기업과 공교육·사교육 분야 수요를 빨아들이며 무섭게 성장 중이다. 일부 대형 업체는 이달 초 웹캠 1천 개를 단일 오픈마켓에 납품해 하루만에 수천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시장 규모는 이미 10만 대를 넘어섰고 15만 대도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런 웹캠 수요가 언제쯤 사그라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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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매업체 관계자는 "지난 8월처럼 예상치 못했던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 웹캠 수요도 이에 따라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나는 추석 연휴 이후가 걱정이다"라고 우려했다.
국내 PC 업체들도 이르면 올 연말부터 데스크톱PC에 웹캠을 기본 제공하는 방향을 검토중이다. 국내 중견 PC 제조사 관계자는 "올해 교육 시장 납품 물량 중 웹캠을 내장한 노트북 비중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