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생산 발표' 없었지만…배터리업계, 테슬라發 위기감 커져

테슬라, 배터리데이서 차세대 셀·공정 소개…'배터리 내재화' 지속 추진

디지털경제입력 :2020/09/23 11:05    수정: 2020/09/23 12:10

"지금의 배터리는 너무 작고 비싸다. 공정혁신 만으로도 배터리 가격을 현재보다 56% 가량 낮출 수 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22일(현지시간) 열린 '배터리 데이'에서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전기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선 배터리 가격을 낮춰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업계 이목이 가장 집중된 건 머스크 CEO가 소개한 '4680' 원통형 배터리 셀(Cell)이었다. 숫자 4680은 지름 46밀리미터(mm), 높이 80mm, 즉 배터리의 규격을 의미한다. 이 배터리 셀은 현재 테슬라 전기차에 탑재되는 2170(지름 21mm, 높이 70mm) 셀보다 에너지 집적도는 5배, 전력 공급량은 6배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주행거리는 16% 개선될 전망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2일(현지시간) 테슬라 배터리데이에서 언급한 '4680' 원통형 배터리 셀(Cell)의 가상 모델. 사진=유튜브 캡처

머스크는 배터리 제조 공정상에도 혁신을 불어넣겠다고 강조했다. 값비싼 고열 공정이 필요없는 '건식 전극공정(DBE·Dry Battery Electrode)' 기술을 이용해 제조상 원가 절감을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제조 방식으론 1킬로와트시(kWh)당 130달러(약 15만원)의 비용이 드는데, 이를 100달러 이하로 낮추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테슬라는 지난해 이 기술을 보유 중인 맥스웰 테크놀로지를 전격 인수한 바 있다. 머스크는 "맥스웰 인수 당시만 해도 기술은 콘셉트 단계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더욱 진보했다"며 "기술 도입 이후 엄청난 수준의 생산력 향상과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머스크는 "배터리 셀을 자동차 차체(섀시)와 통합하는 기술을 개발해 공간 활용도를 높일 것"이라며 "고단가인 코발트 함량을 낮춘 니켈 중심의 배터리는 현지에서 원료를 구해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2일(현지시간) 열린 '테슬라 배터리데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혁신기술은 없었지만…완성차 업계 '배터리 내재화' 속도 붙는다

문제는 테슬라가 언제쯤 배터리 내재화를 이루느냐다. 

이날 머스크는 "3~4년 내에 계획을 실행하겠다"고만 했을 뿐, 자체 배터리 양산 시점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테슬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위치한 생산라인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내년 말 10기가와트시(GWh·시간당 10W) 규모로 생산능력을 키워 2030년까지 3테라와트시(TWh)(=3000GWh)로 확대한다는 목표지만, 상용화 시점이 언제가 될 진 알 수 없다.

머스크는 최근까지도 배터리 거래처인 LG화학 등으로부터 배터리 구매물량을 오히려 늘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배터리데이 행사를 하루 앞둔 지난 21일 "우리 스스로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에는 배터리 공급사들이 최대한의 속도를 내더라도 2022년 이후에는 중대한 물량 부족이 예상된다"면서도 "파나소닉과 LG, CATL 같은 협력사로부터 배터리 구매물량을 줄이지 않고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테슬라가 이날 공개할 것으로 예상됐던 '100만마일 배터리' 등 업계를 긴장시킬 만한 신기술에 대한 발표도 없었다. 

그나마 언급된 내용이 오는 2030년까지의 장기 계획 위주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 큰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발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업계도 개발 중인 니켈 함량을 높인 배터리 역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 3사. (사진=각 사)

증권가 역시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이번 배터리 데이는 테슬라의 장기 비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지만, 단기적으론 국내 업체들에게 불확실성으로 작용하던 이벤트가 소멸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테슬라의 전지 수직계열화 계획으로 기술·수급에 대한 주도권 우려가 있었지만, 이번 행사는 오히려 국내 전지 업체의 강력한 시장 장악력을 입증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날 테슬라의 발표를 통해 또 한 번 명확해진 것은 완성차 업계가 너나 할 것 없이 배터리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배터리 내재화는 전기차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배터리 물량 태부족이 예상되면서 모든 완성차 업계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 외에도 폭스바겐·GM·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자체 생산에 투자하는 상황이다. 배터리를 더 싼값에 자체 조달해 수직계열화를 이루겠다는 게 업계의 최종 목표다.

배터리 업계도 이같은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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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업체들이 당장 자체 생산 배터리를 개발하기 전까진 국내 3사(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가 이끄는 배터리 업계로부터 제품을 구매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이후엔 대규모 수익원을 하나 둘 잃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전기차 수요가 높지 않은 탓에, 몇몇 업체를 제외하곤 전기차배터리 사업에서 흑자전환을 이룬 업체도 적다"며 "배터리에 쏟아부은 투자비용을 회수하기도 전에 기술력을 따라 잡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흘러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