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G‧3G‧4G 주파수 재할당 대가 산정방식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과거 경매대가를 기준으로 산정하려 하고, 통신사들은 할당 당시와 비교해 가치가 하락한 만큼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할당 대가를 산정하는 기준이 법적으로 명료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학계에서는 위임입법 위반, 위헌 등의 얘기까지 나온다. 정부가 12월까지 재할당 대가, 이용기간, 기술방식 등 세부 정책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어서 이때까지 얼마나 의견차를 좁힐지 주목된다. 산정방식에 따라 수 천 억원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와 통신사 간의 논리 대결은 막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편집자주]
내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재할당 하려는 주파수는 2011년부터 이동통신 3사에 대가할당하거나 경매를 통해 분배한 2G‧3G‧4G 주파수 310MHz폭이다.
800MHz, 900MHz, 1.8GHz, 2.1GHz, 2.6GHz 등 5G에 사용되는 3.5GHz와 28GHz를 제외하고 대부분 포함되며, 그동안 이동통신 3사는 이 주파에 약 6조8천억원의 할당대가를 지불해왔다.
주파수마다 이용기간이 5년, 8년, 10년 등으로 다르지만 2021년이면 할당기간이 끝나고, 이동통신 3사가 여전히 2G‧3G‧4G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재할당이 필요한 상황이다.
과기정통부는 해당 주파수들이 이동통신 3사 외에 필요로 하는 사업자가 없다고 보고, 상반기 열린 전파정책자문위원회를 통해 경매가 아닌 심사할당 방식으로 재할당키로 했다.
■ 재할당 대가 산정 기준 법적근거 명확한가
여기서 논란이 되는 이유는 과기정통부가 심사할당 방식으로 재할당 방침을 정하고 산정기준으로 과거 경매대가를 반영키로 했지만,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파법에는 ‘주파수를 할당받아 경영하는 사업에서 예상되는 매출액, 할당대상 주파수 및 대역폭 등 주파수의 경제적 가치를 고려해 산정’토록 하고, ‘산정방법과 징수철자, 최저경쟁가격의 결정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통령령인 시행령에는 ‘할당대상 주파수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용도의 주파수가 경매 방식에 따라 할당된 적이 있는 경우’에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용도의 주파수에 대한 주파수할당 대가 등을 고려해 할당 대가를 산정할 수 있다’고만 적시돼 있고 구체적 산정방식이 없다.
이동통신 3사가 납부하는 재할당 대가는 정보통신진흥기금과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 편입되는데, 이를 납부하는 다른 사업자들의 부과기준이 명확한 것과 비교해 차이가 있는 것도 논란거리다.
박종수 고려대 교수는 “방발기금을 납부하는 지상파와 종편의 경우 전년 방송광고 매출액의 100분의 6, 케이블TV와 위성방송, IPTV는 전년 서비스 매출액의 100분의 6, 홈쇼핑은 전년 결산상 영업이익에 100분의 15 범위에서 모두 고시 징수율을 곱해 분담금을 징수토록 하고 있다”며 “주파수 재할당대가 산정기준은 이와 비교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용희 숭실대 교수는 “신규할당과 재할당 때마다 기준이나 방법론이 달라서 시장의 불안정성이 높다”며 “법적 근거는 있지만 산정기준이 논란이 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 신규 할당과 재할당은 같은가
재할당 산정에서 쟁점이 되는 것 중 또 하나는 신규할당과 재할당 대가를 동일한 잣대로 산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과기정통부는 재할당이 신규할당과 동일성이 있다고 보고 유사한 산정방식을 적용한다는 계획이지만 업계와 학계에서는 해당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종수 교수는 “재할당 여부는 정부의 재량행위지만 이통사가 할당 받은 주파수에 대해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왔다는 점에서 대가산정 기준을 정할 때 신규할당과 달리 봐야 하는 측면이 있다”며 “재할당은 주파수 정책에 관한 공익과 사업자의 재할당 사익에 대한 비교형량, 그리고 영업의 자유와 재산권 등에 관한 점도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할당은 경쟁적 수요가 없고 가격경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경쟁입찰자가 없는 가치평가가 대가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신규할당과 재할당의 정부정책 목표 차이 때문이다. 신규할당의 경우 주파수의 효율적 이용촉진, 전파관련 산업의 진흥 목적이 우세하지만 재할당의 경우 기존 서비스 이용자의 보호, 서비스의 연속성 등이 더 중요가치이기 때문이다.
즉, 통신사 입장에서는 이미 제공 중인 서비스를 중단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결정에 따라야 할 수밖에 없고, 정부는 신규할당 때와 달리 산업진흥과 경매를 통한 재정수입 확대란 정책 비중이 낮아졌음에도 이러한 점들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태호 교수는 “통신 산업은 한정된 사업자에 정부가 강한 규제를 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며 “재할당 대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업자가 서비스를 안 하겠다고 할 수 없는 본질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용자보호와 서비스 연속성 의무 부담 등을 감안해 가격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동국대 교수는 “시장관점에서 보면 주파수 시장에 참여하는 정부는 독점 공급자, 수요자는 수요경쟁이 없는 수요독점으로 볼 수 있어 쌍방독점”이라며 “이러한 시장에서 거래가격은 양측의 협상력에 의해 결정되는데 수요자는 이윤극대화를 목적으로 보면 명확한데 정부는 시장 참여자인데 무엇이 목적인지 명확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목적이 명확해야 효율적 균형이 이뤄질 수 있고 이통사의 지불 능력을 고민해야하는데 미래 수익을 현재가치화 하는 방안에 대해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위임입법 위반 소지 있나
업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신규할당과 재할당의 정책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하게 규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헌법규정상 하위법령에 위임할 때 상위법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전파법에서는 할당 시점의 예상 매출액, 할당대상 주파수 및 대역폭 등 경제적 가치를 산정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하위법인 시행령에서는 전파법의 위임 없이 할당대가 할당 시 과거 경매대가를 고려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종수 교수는 “재할당 대가는 주파수 사용 대가지만 사업자 입장에서는 사업의 연속성 측면에서 이를 인정하고 납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사실상 부담금과 유사하다”면서 “현행 전파법에서는 물가상승률, 시장상환 변화 등을 고려한 과거 경매대가 반영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사업자의 예측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1998년 헌법재판소는 부담금 수준을 예측할 수 없는 법령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법률유보원칙을 위배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위임입법 위반 등에 대해서는 과한 해석이라면서도, 정부의 주파수 가치 산정 기준에 대해서는 명확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성엽 고려대 교수는 “과거 경매대가를 고려할 것인지 여부는 정부가 선택할 수 있고 재량행위에 포함된다”면서도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재량권 기준은 주파수의 경제적 가치, 과거 경매가를 반영하는 것이 주파수의 가치를 적절하게 표현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과거의 경매대가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김태호 서울대 교수는 “법학자 입장에서 재할당도 신규할당의 연장측면이라고 본다면 법적 문제는 없고 위임입법의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위법의 소지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깔끔하진 않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수년 전 경매가로 주파수 재할당?…정부, 재량권 일탈”2020.09.17
- 5G 속도, LTE보다 4배 빨라졌다2020.08.05
- 이통사, 3G·LTE 주파수 재할당 '일부 포기’도 고민2020.08.03
- 주파수 재할당 가격 산정 눈치싸움 본격화2020.07.19
때문에 학계에서는 정부가 재할당 산정대가를 결정하는데 있어 법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대가가 부과될 수 있도록 최대한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도 합리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향후 주파수 재할당에서 또 다시 논란이 재현되지 않도록 법을 좀 더 구체화하고 명확하게 바꾸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