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세조작 수사, 특금법 시행령 변수되나

시행령 윤곽 나왔지만 논의 사안도 많아...이달 중 입법예고 목표

컴퓨팅입력 :2020/09/09 07:57    수정: 2020/09/09 22:51

내년 3월 도입되는 '암호화폐(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의 세부 규정을 담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신고 수리 주요 요건 중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은 모든 신고 대상 사업자가 받도록 하고, '실명확인 입출금계좌 보유'는 원화 거래를 지원하는 경우에만 적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안이 완성되려면 추가적으로 논의할 사안이 아직 많이 남았다. '실명입출금계좌 발급 요건'과 '가상자산 송금 시 정보 제공 의무(트래블 룰) 적용 방법'이 정리돼야 하는데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논의가 쉽지 않은 사안들이다.

여기 더해 암호화폐 거래 시세조작 등의 혐의를 받는 사업자에 대한 수사와 재판 결과도 시행령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금법에 유죄가 확정된 암호화폐 거래소의 신고를 받아주지 않을 근거가 없는 만큼, 이에 대한 조치를 마련하려면 시행령에 담을 수 밖에 없다. 금융정보분석원(FIU)도 수사 상황과 재판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어, 시행령 개정안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특금법 시행령, ISMS 획득·실명계좌 보유 대상 업체 윤곽

지난 3월 통과된 개정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에 자금세탁행위 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금융회사가 가상자산 사업자와 금융거래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하는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상자산 사업자는 FIU에 신고를 하고 수리를 획득한 경우에만 영업을 하도록 했다.

FIU가 신고 수리를 거절할 수 있는 '신고 불수리 요건'으로는 ▲실명확인 가능한 입출금 계정 보유 여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획득 여부 ▲대표자나 임원의 금융 범죄 경력이 있는 경우 등을 제시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 신고를 수리하지 않을 수 있으며, 각 요건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은 시행령에 위임했다.

이에 특금법 실무 기관인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이달 입법예고를 목표로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금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재정부, 법무부 관계 부처 실무진과 회의를 갖고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는데, 이날 회의 자리에서 시행령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 중 현재까지 대략적인 방향이 결정된 것들이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공유된 내용에는 가상자산 사업자의 범위, ISMS 인증 획득 대상과 실명확인계좌 보유 대상에 대한 기준 등이 포함됐다.

FIU는 가상자산 사업자의 범위에 우선적으로 ▲거래소 ▲수탁사업자 ▲지갑 서비스 기업이 포함돼야 한다고 봤다. 또 ISMS 인증 획득은 모든 사업자가 받아야 하고, 실명확인계좌는 원화를 다루는 경우에만 보유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업계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이다. 업계는 블록체인협회를 통해 "다양한 가상자산 사업자의 유형과 거래 형태를 고려해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 한 바 있다.

정부, 특금법 시행령 입법예고 '목표'는 이달 중

금융위와 FIU는 이달 안에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행령에 위임된 사안 중 추가 논의가 필요한 것들이 많이 남아, 실제 입법예고는 더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FIU 관계자는 "목표는 이달이지만 아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어 더 미뤄질 수도 있다"며 "시행령 개정안을 만들어 금융위에 보고하고 공포하기까지 남은 과정을 역순으로 계산했을 때 아직 시간에 쫓기는 단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금융회사가 가상자산 사업자에 실명확인계좌를 발급해주는 기준과 조건, 절차도 시행령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원화를 다루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경우 실명확인계좌가 없으면 영업 신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발급 요건에 대한 규정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실명확인계좌를 보유한 거래소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개 업체뿐이다.

현재 정부가 파악한 암호화폐 거래소 수만 해도 60여 개 가까이 되는 만큼, 형평성 논란을 피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췄을 경우 실명확인 계좌를 열어줄지 등이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또, 트래블룰 적용 방법도 신중하게 논의돼야 할 사안이다. 트래블룰은 사업자가 가상자산을 보내는 사람(송금인)은 물론 받는 사람(수취인)의 정보를 파악하고, 수취 업체에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를 위해 송금 업체 측에서 수취인의 지갑 주소가 어느 암호화폐 거래소 것인지 부터 알아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표준이 국제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가는 이후 국제 표준에 맞춰 시스템을 재개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트래블룰 적용을 국제 표준 마련 이후로 유예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안을 놓고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시세조작 혐의 거래소 수사·재판 결과 시행령 변수로 부상

여기에 더해 거래 시세조작, 거래량 부풀리기, 투자자 기만 등의 행위로 유죄가 확정된 암호화폐 사업자의 신고 수리를 거절할 법적 근거 마련도 필요하다. 

신고 불수리 요건에 '금융 범죄 경력이 없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암호화폐 시세조작 등은 현행법 상 금융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암호화폐 시세조작으로 유죄가 확정된 업체의 수리를 거절할 근거가 특금법에 없는 상태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시세조작, 자전거래로 수사나 재판을 받는 사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8년 검찰은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임직원 3명에 대해 가짜 계정에 허위 자산을 입력해 1천500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했다. 해당 사건은 올해 1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의 항소로 오는 16일 항소심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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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세 번째로 거래량이 큰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빗은 자전거래를 통한 시세조작으로 1천억원대의 부당수익을 실현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중소 거래소 코미드는 허위로 암호화폐 잔고를 시스템에 입력해 실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꾸며, 사전자기록위작죄와 사기죄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FIU 관계자는 시행령에서 이런 점이 보강되느냐는 질문에 "답변하기 어렵다"면서도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수사 상황과 재판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