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조작으로 유죄가 확정된 암호화폐 거래소를 내년 3월 시행되는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자 신고제'에서 걸러내지 못한다는 허점이 발견됐다.
금융관련 법률에 따라 벌금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경우 신고를 받아주지 않도록 했지만, 암호화폐 자체가 자본시장법 등 금융관련법률 적용 대상이 아니라 '암호화폐 시세조작'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신고수리 기관인 금융정보분석원(FIU)도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에 이 같은 규제 사각지대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28일 본지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시세조작, 거래량 부풀리기, 투자자 기만 등의 행위로 유죄를 확정받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신청해도,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는 신고 수리를 거절할 근거가 없다.
내년 3월 시행되는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는 자금세탁 등 암호화폐를 이용한 범죄 발생 예방을 목표로, 당국이 사업자를 관리·감독하기 위해 도입됐다. 지난 3월 통과된 개정 특금법에 신고제 도입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특금법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업체는 영업을 할 수 없도록 '신고 불수리 요건'을 명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업체 대표와 임원의 금융범죄 이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금법 제3장 7조 3항에 따르면, 대통령령으로 정한 금융관련 법률에 따라 벌금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5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FIU는 사업자의 신고를 수리하지 않을 수 있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금융관련 법률에는 범죄수익은닉법규제, 외국환거래법, 자본시장법 등이 포함된다.
예컨대 암호화폐 거래소 대표나 임원이 주식 시장에서 시세조종 행위를 하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처벌 받은 이력이 있다면, 해당 암호화폐 거래소가 낸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가 거절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작 암호화폐를 이용해 유사한 범죄를 저질렸을 경우, 이를 걸러낼 근거가 개정 특금법 상 없다는 점이다.
현재 암호화폐가 어떤 금융관련 법률에서도 다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특금법에서 대표자의 금융범죄 이력을 따져 물은다 해도 여기에 암호화폐 관련 유사 범죄는 해당되지 않는다.
법무법인 김앤장의 정영기 변호사는 "특금법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금융관련 법률로 처벌 받은 경우 신고 불수리 요건에 해당한다고 되어 있는데 현재 어떤 금융관련 법률에서도 암호화폐 시세조작을 처벌하지 않고 있다"며 "암호화폐 시세조작이 일반 형법에 의해 처벌된다면 특금법 신고 불수리 요건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암호화폐 거래 시세조작, 거래량 부풀리기, 투자자 기만 등의 사건은 사기나 횡령, 사전자기록위작 같이 일반 형법을 적용 받고 있다.
최근 시세조작으로 1천억원대 부당수익을 실현한 것으로 의심 받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빗'에 대해서도 경찰이 압수수색하며 적용한 혐의는 사기죄다. 허위로 암호화폐 잔고를 시스템에 입력해 실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꾸며 유죄가 확정된 암호화폐 거래소 '코미드'에도 사기죄와 사전자기록위작죄가 적용됐다.
결과적으로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 조성을 위해 '금융 범죄 이력이 있는 자'의 사업 진출을 막겠다면서, 정작 직접적으로 '암호화폐 시세조작 행위를 한 자'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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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수리 담당 기관인 FIU는 본지 취재가 시작된 후에야 이 같은 규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을 고민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FIU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금융업권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지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런 문제 제기가 처음이라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분명히 고민할 필요가 있는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