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조건 내놔라"…이동걸 회장, 아시아나항공 불씨 살렸다

채권단 공동투자 유력…정몽규 회장 판단에 촉각

금융입력 :2020/08/27 12:21    수정: 2020/08/28 09:29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무산 위기를 맞았던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의 불씨를 살렸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과의 최종 담판에서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라며 사실상 '가격 인하' 카드를 꺼내들면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동걸 회장은 전날 오후 한 시간 가량 이어진 정몽규 회장과의 면담에서 이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의 원만한 종결을 위해 인수조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란 게 산업은행 측 설명이다.

업계에선 이동걸 회장이 정몽규 회장에게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일정 금액을 매칭해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하는 일종의 공동투자 방안이 대표적이다. 

산업은행은 선을 그었지만, 양측이 최대 1조5천억원을 투입해 총 3조원을 아시아나항공 경영정상화에 투입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사진=산업은행 제공

공동투자 방안이 성사되면 채권단과 HDC현대산업개발은 모두 소기의 성과를 안고 거래를 매듭지을 수 있다.

먼저 HDC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선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당초 지불하려던 약 2조5천억원보다 약 1조원 낮은 가격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HDC현대산업개발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30.77%를 3천228억원에 사들이고 2조1천772억원의 유상증사를 실시하는 계약을 맺었다.

채권단 역시 당장 아시아나항공에 1조5천억원을 쏟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8천억원 규모의 규모의 영구채를 보유해 7천억원만 더 지원하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협상 결렬 시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을 통해 수혈할 것으로 점쳐진 2조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주목할 부분은 인수 확정 전까진 HDC현대산업개발 측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던 이동걸 회장이 전향적인 태도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외부에선 이동걸 회장이 반드시 계약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평가한다.

여기엔 원매자가 나타났을 때 거래를 끝내야 한다는 채권단 차원의 계산도 있었을 것이란 게 일각의 시선이다. 비록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아시아나항공을 채권단 관리 체제로 전환한 뒤 재매각하는 ‘플랜B’를 구상해놨으나 곳곳에 과제가 산적해 있어서다.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을 떠안자마자 경영정상화 자금 지원이나 금호산업이 보유한 구주 처분 방안 등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재매각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다. 항공업이 언제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부터 벗어날지 장담하기 어렵고, 매각을 추진할 때 적당한 인수자가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된 후 현대중공업으로의 매각이 결정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10년 만에 매각을 앞둔 KDB생명도 비슷한 사례다.

덧붙여 이동걸 회장은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과거의 숙제'에서 벗어나 혁신기업 육성으로 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뜻을 줄곧 강조해온 바 있다.

관련기사

관건은 파격적 제안을 받아든 정몽규 회장의 판단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업 회복이 더딘 것은 여전한 부담이나, 채권단이 크게 뒤로 물러선 만큼 HDC현대산업개발으로서는 인수를 포기하기 어려워졌다고 업계는 진단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지난 면담에서 이동걸 회장이 협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만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HDC현대산업개발 측 답변 내용에 따라 금호산업 등 매각주체와 논의해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