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의 Newtro] 영국의 화웨이 배제, 잘한 일일까요?

데스크 칼럼입력 :2020/07/16 16:28    수정: 2020/07/16 20:30

영국 정부가 14일(현지시간) 자국의 통신사들에게 화웨이 장비 구매 금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기존에 구축했던 장비도 2027년까지 모두 철거토록 한다는 계획입니다.

일주일 앞선 지난 8일 브리티시텔레콤(BT), 보다폰 임원들이 영국 의회 과학기술위원회의 청문회에 참석해 화웨이 장비를 제거할 경우 심각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영국 정부는 이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영국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그리고 이 같은 결정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들이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사업자들의 손해를 보전해 주지 않는다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은 당연히 이를 소비자들에게 전가시킬 수밖에 없지요. 영국의 5G 구축계획이 지연되는 것은 차치하고 아마도 통신요금은 분명히 인상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실제, BT와 보다폰도 화웨이 장비 교체에 적어도 최소 5년, 최대 7년이 소요될 것이라며 통신 장비를 다른 장비업체로 대체하는데 수십억 파운드를 추가 지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마도 이 같은 수십억 파운드는 고객들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겠지요.

화웨이가 영국 정부의 이 같은 결정으로 통신비 증가, 디지털화 속도 지연, 디지털 격차 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는데, 적어도 통신비 증가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로 인해 각국의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어 그동안 잘 작동해 왔던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제조업 분야에서 자국으로 회귀하는 ‘리쇼어링’이 본격화되는 양상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영국이 화웨이를 배제한 것은 애초에 문제가 제기됐던 백도어, 도감청 등 보안 문제로 볼 수 없습니다. 화웨이는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세계 3대 평기가관이자 스페인 정보국 산하의 인증기기관인 CCN(Centro Criptologico National)으로부터 국제 보안 인증을 발급받기도 했습니다.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이 같은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그동안 전 세계 네트워크 장비시장을 장악했던 미국 기업들이 그랬던 것 아니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합니다. 실제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몇 년 전 러시아로 도주한 에드워드 스노든으로 인해 일부 내용이 드러나기도 했지요.

앞으로 돌아가 제조업계의 리쇼어링 움직임은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에게는 별로 반길 일이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영국에서 화웨이가 빠진 자리에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지만 이런 식으로 경쟁업체가 빠진 자리에 들어가는 걸 반길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국의 화웨이 배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패권경쟁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반대로 중국이 자국 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을 배제시킬 수도 있고, 자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사들이는 물건을 자국 기업으로 돌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가장 수출 산업인 반도체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큰 손이 화웨이입니다. 매년 수조원어치의 물건을 사들입니다.

관련기사

우리나라는 1년 전 일본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반도체 핵심 소재 세 가지의 수출을 규제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물론 정부와 기업들이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문제를 잘 해결해 왔지만 정치적 이슈를 산업 문제로 끌어들이는 것이 얼마나 기업과 산업 전반에 위험한 일인지를 경험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향후 제조업의 자국 회귀 현상이 가속화됐을 때 영국에서의 일이 저 먼 타국에서 벌어지는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