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글로벌경쟁 핵심 콘텐츠, 간접지원 확대해야

전문가 칼럼입력 :2020/06/25 13:08    수정: 2020/06/26 21:12

이찬구
이찬구 미디어미래연구소 미디어경영부센터장.

소비 트렌드측면에서 2019년과 2020년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개인화된 가치였다. 뉴트로, 세포마켓, Z세대, 소확행, 숏폼 콘테츠, 1인 콘텐츠 등등 새로운 트렌드의 중심에는 나의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품이나 콘텐츠, 서비스가 존재한다. 즉, 소비자는 물리적 필요에 의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의해 소비하고 이것이 개인의 필요를 다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가치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는 개개인의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품이나 콘텐츠,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 되는 시대, 즉, 기존의 가격 경쟁을 넘어서 가치 경쟁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 산업은 가입자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케이블과 IPTV가 가입자 유치를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는 사이, OTT(특히 글로벌OTT)가 급성장하고 있다. 언젠가 시청자(소비자)는 지상파에서 유료방송으로, 케이블에서 IPTV로 이동한 것처럼, OTT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가입자 경쟁은 저렴한 가격이라는 경쟁요소에 의해 이루어져왔지만, 시청자(소비자)는 사실 자신의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찾아 이동해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넷플릭스의 신규 가입자는 1천58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재택 시간이 증가하면서 당초 예상치였던 700만명의 두배에 이르는 실적을 보였다. 디즈니 등 타 OTT 서비스도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동남아 주요 국가에서 약 8천만명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OTT 서비스를 제공하던 HOOQ은 올해 4월 서비스 종료를 발표했다. 언택트 시대에 비대면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다소 충격적인 소식이다. 다양한 외부요인이 우호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업자는 성장세를 이어가는 반면, 어떤 사업자는 사업을 종료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당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진 탓도 있겠지만, 투자금 조달에 한계를 보였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는 미디어 산업에서의 주된 가치, 시청자(소비자)가 원하는 가치, 콘텐츠 가치에 대한 투자 여부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즈니플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약 2억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자사 콘텐츠에 대한 가치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투자로 인해 성장의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하는 것 역시, 콘텐츠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콘텐츠를 잘 만들거나 다량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역량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시청자(소비자)에게 그들이 원하는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콘텐츠 투자가 시청자(소비자)를 모으고 경쟁우위를 갖게 했다.

국내도 한국형 글로벌 OTT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국내 OTT사업자가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통합OTT가 출범한다한들 규모면에서 국내 사업자가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와 플랫폼이나 서비스 측면에서 경쟁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물론 통합OTT플랫폼 출범으로 덩치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궁극적인 경쟁은 콘텐츠에 있다. 시청자(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개인적 가치를 찾아 떠나는 시청자(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콘텐츠가 유일하다. 즉, 콘텐츠는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의 핵심 요소이자 미디어 산업 전체의 핵심 가치인 것이다.

결국 가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압도적으로 늘어나야만 한다. 콘텐츠 투자는 콘텐츠 특성상 불확실성에 대한 투자이다. 사전에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고, 소비된 이후에야 성공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 콘텐츠다. 단 한번의 성공을 위해서 수백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숙명 때문에 지속적인 투자는 불가피하다. 실패가 두려워서 투자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콘텐츠 역량을 확보할 수 없다. 콘텐츠는 타 산업에 비해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힘이 매우 강하다.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투자하는 사업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를 예견하면서도 꾸준하게 콘텐츠 제작에 투자해왔다. 그러나 콘텐츠를 바라보는 플랫폼이나 정부는 실패를 두려워하여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콘텐츠 강국을 도모하고 있다. 콘텐츠가 미디어 산업의 핵심 가치이자 경쟁요소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글로벌 경쟁을 위해서는 콘텐츠는 필수다. 그러나 콘텐츠 투자를 콘텐츠 사업자에게만 맡겨서는 이를 이룰 수 없다. 플랫폼도 정부도 콘텐츠에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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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에 담긴 1조원의 펀드 조성과 OTT 콘텐츠 세액 공제 등 콘텐츠 투자 활성화를 위한 조치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은 1인 크리에이터와 OTT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실질적으로 콘텐츠 제작 분야에서, 기존 사업자들이 느끼는 혜택은 작을 수 있다. 특히 세액공제의 경우, OTT로 유통되는 콘텐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원방안이 있을 수 있다. 외국납부 세액공제 완화, 해외제작비 세액공제, 콘텐츠 펀드 투자에 대한 공제, 콘텐츠 R&D 세액공제 등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방안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근 발의된 이상헌 의원의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은 국내 콘텐츠산업 역량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의 초석을 만드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단기적인 지원방안 마련도 매우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인 투자 확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는 점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집중 투자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콘텐츠 특성과 궤를 같이 한다. 세제 지원 강화는 콘텐츠에 투자하는 산업에 작은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큰 성과를 얻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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