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2 장원기 사태 막으려면

대기업 퇴직임원 노하우와 지혜 흡수 재취업 보장 필요해

기자수첩입력 :2020/06/18 08:23    수정: 2020/06/18 08:40

중국 반도체 기업 에스윈 부회장으로 부임해 논란이 됐던 장원기 전(前) 삼성전자 사장이 결국 퇴임의 길을 선택했다. 본인의 뜻과는 달리 기술 유출 등 '매국' 논란이 이어지자 사임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장 전 사장의 사례는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 고위 임원 출신이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쫓고 있는 중국 기업에 재취업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대기업 출신 고위 임원이 언제든 중국 반도체 굴기의 든든한 조력자로 변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는 더욱 컸다.

오랜 기간 산업의 노하우와 지혜를 가진 퇴직 임원들의 중국 진출은 단순히 반도체 굴기의 조력자에서 그치는 게 아닌 현실에서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실제 중국 반도체 기업 '푸젠 진화'는 다수의 국내 대기업 출신 임원을 영입해 한국 반도체의 상징인 10나노미터대 D램 개발에 착수할 정도로 위협적인 경쟁자로 성장했다. LCD 산업처럼 한국 반도체 산업도 언제 중국에 주도권을 뺏길지 모를 일이다.

10nm 공정에서 제조된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웨이퍼 중 일부. (사진=지디넷코리아)

그럼 해결책은 없을까. 최근 만난 몇몇 전·현직 대기업 고위 임원들은 이런 상황을 타개할 대안으로 '퇴직임원들의 재취업 보장'을 꼽았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히 말해 '중국으로 가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한계와 제약도 많다. 고액 연봉과 최고 수준의 복지를 보장하는 중국과 비교해 한국 중소·중견 기업의 환경은 열악하다. 또 퇴직 임원들을 모두 수용할 정도로 일자리가 많지 않다. "퇴직 임원도 좋은 일자리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는 말처럼 중국으로 재취업에 나서는 직업선택의 자유도 애국이란 이름으로 언제까지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가속화하고, 이에 따라 반도체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산업적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퇴직 임원들의 국내 재취업 유도는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속도를 내고 있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있어서 그 효과가 기대된다. 코로나19가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를 가져온 상황에서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에게는 대한민국 최고 기업에서 갈고 닦은 고위 임원의 '노하우 전수'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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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정부는 소부장 국산화 정책의 일환으로 '특화 전문인력 공급(퇴직 전문기술 인력으로 지역 상공인회의소별 기업자문단 구성)'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책은 있지만, 실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한국판 뉴딜정책'을 적극 추진 중인 만큼 앞으로 업계와 머리를 맞대 퇴직 임원에 대한 재취업 문제를 포함한 현실적인 기술강국 도약 방안을 마련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정책 추진에 나서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