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나는 닛산..."최고수준 서비스" 약속 어디로?

[이슈진단+] 철수설 부인하던 한국닛산 불명예 퇴장

카테크입력 :2020/05/29 10:09    수정: 2020/05/31 09:01

“한국닛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한국시장에서의 활동을 앞으로도 지속해 나갈 것이다...항상 소중한 고객에게 최고 수준의 제품 판매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나갈 것이다.”

한국닛산이 지난해 9월 30일 수차례 철수설 관련 보도가 나간 후 공식적으로 밝힌 입장이다. 사업 운영 구조 재편을 통해 국내 판매 딜러사 등 파트너사들과 성장을 견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었다.

그러나 한국닛산은 이같은 약속을 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불명예 퇴장 절차를 밟게 됐다.

한국닛산 관계자는 28일 오후 늦게 국내 매체를 통해 전한 입장문에서 “2020년 12월 말 부로 한국 시장에서 닛산 및 인피니티 브랜드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며 “중장기적으로 전세계 시장에서 건전한 수익구조를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본사에서 내린 최종 결정”이라고 밝혔다.

철수 소식을 접한 국내 닛산 고객들은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다. 차량을 중고차 시장에 팔아도 감가상각이 심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 탈 수 밖에 없는 생각을 내세운 고객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철수 수순을 밟게 된다면 부품 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다는 우려 섞인 시선도 나온다.

닛산 6세대 알티마 (사진=한국닛산)

■서비스 요구에 소극적 대처 나타낸 한국닛산

한국닛산은 지난해 1월부터 브랜드 이미지가 거듭 하락하는 악재를 만났다. 고객 서비스 요구에 대한 항의가 빈번하게 일어났고,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시기까지 겹치면서 한국닛산과 인피니티 브랜드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한국닛산은 지난해 1월 경기도 용인에서 신형 SUV 엑스트레일 출시 및 시승행사를 열었다. 이 때 한국닛산 서비스 대응에 뿔난 ‘닛산 SUV 오너스 카페’ 회원들이 시승회장 입구를 찾아 “신차 실내 녹과 불량 미션 초기하자 인정하라”라는 내용 등이 적힌 피켓시위를 했다.

국내 닛산 SUV 차주들은 녹 문제에 대해 한국닛산 관계자 만남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한국닛산은 직원 대신 판매 딜러사 책임자만으로 소비자 문제를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차주들은 이같은 한국닛산의 행위가 “미필적 고의행위에 해당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서비스 대응으로 이미지가 하락한 한국닛산은 엑스트레일 시승행사 이후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공정위로부터 9억원 규모의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인피니티 Q50 2.2 디젤의 과장 연비 표기와 닛산 캐시카이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허용기준 조작 등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닛산 SUV 차주들이 3일 열린 한국닛산 엑스트레일 미디어 시승행사 현장 앞에서 피켓 시위에 나서고 있다. (사진=닛산 SUV 오너스 카페 제공)

■핵심 사양 ‘프로파일럿’ 제외로 사양 차별 논란도

심지어 지난해 2월 출시된 2세대 리프 전기차 국내 모델에는 핵심 주행보조 사양인 ‘프로파일럿’이 빠져 사양 차별 논란이 생겼다.

2016년 최초로 공개된 닛산의 프로파일럿은 현대기아차의 고속도로주행보조(HDA)와 비슷한 성격으로 차선 이탈보다는 차선 중앙 유지를 도와주는 주행보조 기능이다. 게다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같이 작동돼 레벨 2 이상 급의 자율주행 기술 단계를 구현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닛산 관계자는 핵심 사양인 프로파일럿을 제외한 이유를 가격적인 측면과 연관지어 설명했다. 프로파일럿이 도입되면 가격이 100만원 이상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 대한 소비자 부담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2018년 판매 하락도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한국수입차협회 브랜드 등록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닛산 브랜드 누적 등록대수는 5천53대로 전년 누계 대비 19.6% 하락했다.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인피니티는 전년보다 21.0% 떨어진 2천130대가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닛산은 프로파일럿 등의 사양 탑재를 아끼고 가격을 줄여야 전체적인 차량 판매 회복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닛산 2세대 리프 국내 판매가는 S 4천190만원, SL 4천830만원이며 투톤 컬러가 적용시 S 4천260만원, SL 4천900만원에 책정됐다. 2019년 판매 시작 당시 국고보조금 900만원 혜택도 받았다.

2019 서울모터쇼에 전시된 닛산 2세대 리프 전기차 (사진=지디넷코리아)

■오래 가지 못 한 ‘리프’ 판매 효과

국내 환경부 기준 한번 충전으로 최소 231km 갈 수 있는 2세대 리프는 프로파일럿 사양 제외 논란에도 판매가 한 때 승승장구했다.

한국수입차협회가 지난해 4월 3일 밝힌 2019년 3월 수입 승용차 등록자료에 따르면, 전기차는 122대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40배 이상 뛰어오른 기록이다. 2018년 3월 수입 전기차 판매는 단 3대에 그쳤다.

여기서 2세대 리프는 3월 한 달간 국내에서 100대가 판매돼 주목을 받았다. BMW i3는 20대가 판매됐고, 재규어 I-페이스는 2대가 판매됐다. 재규어 I-페이스의 경우 올해 총 19대가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리프 등을 통해 전기차 관련 국내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한국닛산에게 생긴 것이다.

허성중 한국닛산 대표는 지난해 5월 제주국제전기차엑스포 현장에서 진행된 지디넷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V2X(Vehicle-to-Everything) 전기차 충전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차량 출시 방향성은 친환경적인 파워트레인과 안전사양이다. 미래지향적이고 친환경적인 차량을 갖고 오면, 앞으로 닛산이라는 브랜드 인지도가 점차적으로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허성중 한국닛산 대표(사진 오른쪽)가 김대환 세계전기차협의회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한국닛산의 기대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2분기부터 국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한국닛산은 다시 판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닛산은 작년 7월 16일 주력모델인 신형 알티마 시승행사도 기획했다. 신형 알티마는 지난해 서울모터쇼의 핵심 모델로 소개된 만큼, 행사 규모도 크게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여파로 한국닛산은 시승행사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만일 시승행사를 진행할 경우, 닛산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반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내부 분석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철수설 보도 3주만에 입장 낸 한국닛산

닛산 일본 본사의 최악 실적도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다. 지난해 7월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 내용에 따르면 닛산의 지난해 2분기 영업이익은 16억엔(약 174억2천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천91억엔)에 비해 99%나 감소했다. 이로 인해 전체 직원 10% 감원을 선언하기도 했다.

악재가 수차례 겹치기 시작하자 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난해 9월 닛산 일본 본사가 한일간 외교 및 통상 대립을 이유로 한국 시장 철수를 고려한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한국닛산은 “추측성 보도는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수차례 반복하다가 해당 보도가 나간지 약 3주가 지나 “철수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어 한국닛산은 지난해 9월 공식 입장문을 통해 “기존의 사업 운영 구조의 재편을 통해,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한국닛산의 사업 파트너사들과 함께 다시금 건전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이런 노력들을 경주하는 가운데에서도, 한국닛산은 항상 소중한 고객에게 최고 수준의 제품판매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한국닛산은 이 약속을 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공식적으로 국내 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이는 닛산 본사의 글로벌 차원의 전략적 사업개선 방안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한국닛산과 일본 닛산 본사는 소극적인 회사 내 위험요소(리스크) 대처와 고객 소통 부재가 불명예 철수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홈페이지를 통해 철수 계획을 전한 한국닛산 (사진=한국닛산 홈페이지 캡처)

■“2028년까지 애프터서비스는 계속”

국내서 판매된 닛산과 인피니티 브랜드 차량은 한국닛산 철수와 관계없이 오는 2028년까지 전국 애프터세일즈망을 통해 차량 수리 등을 받을 수 있다. 3년 기준의 닛산 무상 보증은 유지된다. 또 닛산은 향후 8년 동안 우리나라 고객이 사용할 수 있는 예비부품을 직접 제공한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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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닛산은 2028년 이후 보증 수리 등의 정책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한국닛산은 홈페이지를 통해 “국내 법규에 의거해 향후 8년(2028년까지) 간 우리의 소중한 고객 분들께 (차량의 품질 보증, 부품 관리 등)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며 “보다 상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추후에 안내 드리도록 하겠다”라고 공지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