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금속을 함께 사용할 때 슬러지, 즉 '녹'은 가장 큰 위협요소다. 냉각수 속에 금속 전열관이 들어있는 원전도 마찬가지다. 전열관 표면에 붙는 슬러지를 획기적으로 줄여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는 수화학(水化學)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박원석)은 국내 최초로 원전 증기발생기 전열관 슬러지 부착 모사 실증장치와 슬러지를 저감하는 수화학 기술을 개발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기술은 원자력분야 전문 학술지인 'Annals of Nuclear Energy' 4월호에 게재됐다.
원자로에서 핵분열로 발생한 열은 전열관을 통해 증기발생기 속 냉각수로 전달돼 증기를 만들고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전열관 표면에 슬러지가 붙으면 냉각수로 열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슬러지가 붙은 부분은 부식이 가속화될 뿐 아니라, 유로(流路) 막힘이 발생하고 비파괴 검사의 신뢰도도 떨어트린다.
현재 원전에서는 냉각수가 금속으로 된 전열관을 부식시키지 않도록 증기발생기 속 냉각수에 pH 조절제를 첨가해 알칼리성을 유지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연구원 전순혁·이지민 박사는 여러 조합을 비교 분석해 전열관에 부착되는 슬러지 양을 최소화하는 pH 조절제 종류와 pH 값을 찾아냈다. 국내에서 주로 사용하는 에탄올 아민으로 pH9를 유지할 때보다 암모니아로 pH10을 유지할 때 슬러지 양이 최대 68% 줄었다.
연구팀은 먼저 증기발생기 속에서 슬러지가 발생하는 실제 모습을 구현할 수 있는 실증장치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이 장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크기의 수많은 구멍이 존재하는 슬러지를 정확히 모사할 수 있다. 이 실증장치를 활용해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하는 다양한 pH 조절제와 pH 범위의 최적의 조합을 찾아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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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연구팀은 현상 뿐 아니라 그 원리까지 알아냈다. 물 속 나노입자가 갖고 있는 전하 크기를 나타내는 제타 전위(zeta potential) 개념을 이용해 수화학 조건에 따른 슬러지 입자의 변화를 규명함으로써 슬러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원리를 학술적으로 입증하는 성과도 이룬 것이다.
연구를 이끈 허도행 박사는 "이 기술은 가동 원전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직접적으로 pH 조절제 변경을 위한 원전 사업자와 규제기관의 기술적 근거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