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연구 붐이 처음 시작된 건 1950년대 후반이었다. 그 무렵 미국 국방부 등이 본격 투자에 나서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AI는 두 차례 혹한기를 겪었다. 특히 1980년대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계속된 두 번째 ‘AI 겨울’은 길고도 혹독했다. AI 만능론은 AI 무용론으로 바뀌었다.
이런 한파를 끝낸 건 제프리 힌튼을 비롯한 ‘AI 4대 천왕’이었다. 이들은 딥러닝 바람을 주도하면서 AI 연구 열기를 되살려냈다. 달아오른 AI 열기에 기름을 부은 건 구글이었다. 2016년 알파고 돌풍을 주도하면서 AI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덕분에 구글은 AI 대표주자로 명성을 떨쳤다.
구글은 최근에도 의사보다 유방암을 더 정확하게 진단하는 AI 모델을 선보여 많은 찬사를 받았다.
구글이 AI 강자로 떠오른 건 ‘당장의 실적’을 압박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투자한 덕분이었다. 통제와 압박에서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가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그런데 구글을 이끌고 있는 선다 피차이가 “정부가 AI 분야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피차이는 20일 파이낸셜타임스에 ‘구글이 AI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Why Google thinks we need to regulate AI)’란 칼럼을 기고했다.
■ "GDPR 같은 기존 규제틀도 적극 활용해야"
이 칼럼에서 피차이는 ‘AI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 속엔 기술의 장점이 보증되지 못한 사례로 가득차 있다”는 말로 운을 뗐다. 이를테면 교통 혁명의 밑거름이 된 내연기관은 더 많은 사고를 몰고 왔으며, 정보혁명을 이끈 인터넷은 허위 정보 유포에 악용됐다.
마찬가지로 AI 역시 장점 못지않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딥페이크’ 영상 조작부터 얼굴인식 기술을 악용한 통제 가능성까지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고 피차이는 주장했다. 한 국가나 산업만으론 해결하기 힘든 과제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피차이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벌써 여러 규제 제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글로벌 표준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선 국제 공조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AI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 “중요한 건 어떻게 접근하냐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피차이는 기존 규제들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를테면 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같은 것들이 효과적인 AI 규제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의미다.
그는 또 “훌륭한 규제 틀은 안전성, 설명가능성, 공정성, 신뢰성 같은 것들을 고려해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도구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적용 방법도 제안했다. 이를테면 의료 기기나 AI를 활용한 심장진단 같은 영역에선 기존 규제 틀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반면 자율주행차 같은 신규 분야에 대해선 정부가 관련 비용과 혜택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적절한 새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는 수 십 억명의 삶을 향상시킬 잠재력이 있지만, 이런 것들을 하지 못하게 만들 큰 위험도 공존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책임성 있게 개발돼야만 미래 세대들이 기술의 힘에 대해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란 말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 AI 시대가 제대로 꽃피우려면?
알파고 이후 뜨겁게 달아올랐던 AI 열기가 최근 들어 주춤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에선 세 번째 'AI 겨울'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AI 석학 중 한 명인 요수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도 이런 우려에 가세했다. 그는 최근 BBC와 인터뷰에서 "AI의 능력이 과대 평가됐다"고 비판했다. 기업들의 과도한 마케팅 때문에 실체 이상으로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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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판만 있는 건 아니다. 또 다른 쪽에선 AI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똑똑해진 AI가 무슨 짓을 할 지도 모른다는 비판이다.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AI의 성격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될 것이란 경고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AI 강자 구글의 선다 피차이 CEO가 직접 'AI 규제론'을 설파한 것도 이런 사정을 감안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힘들게 꽃피운 AI 산업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선 '짐작 가능한 규제 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