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행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의 대안으로 계절·시간대에 따른 요금제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내년 신(新) 요금제 시행에 필요한 '스마트계량기(AMI)' 보급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까지 전국 2천250만 가구에 AMI를 설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당장 연말부터 연초 사이에 보급을 가속할 요인이 없어 담당 기관인 한전이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5일 산업부와 한전 등 관계자에 따르면 이달 초를 기준으로 전국 AMI 보급률은 내년 보급 목표량인 2천250만가구의 약 37% 수준에 머물러있다.
■ 내년 '계시별요금제' 개편…AMI 보급률이 관건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는 각 가정에서 측정된 전력사용량을 바탕으로 계절과 시간대별로 분류해 전기료를 차등 부과하는 방식이다.
계절은 여름, 겨울, 봄·가을 3가지로 분류되고 시간대는 전력 사용량에 따라 경부하·중간부하·최대부하로 나뉜다. 전력수요에 따라 저렴한 시간대에 맞춰 사용한다면 같은 양의 전기를 사용하더라도 고지서에 찍히는 요금이 달라진다.
이 요금제를 시행하려면 원격으로 전력사용량·시간대별 요금정보 등 전기사용 정보를 제공하는 AMI가 각 가구에 설치돼있어야 한다. AMI를 설치하면 검침원이 직접 돌며 확인해야 하는 아날로그 계량기와 달리, 전기가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 가능하다.
정부는 매년 반복되는 누진제 논란은 잠재우기 위해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요금제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이면에는 누진제 완화로 점차 악화하는 한전의 재정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도 있다.
산업부는 새로운 요금제 도입으로 전기료 인상 논란도 한동안 이어지겠지만, 각 가구마다 합리적인 전기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울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한전은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전기료 개편에 앞서 지난 9월 말부터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경기·인천·대전 등 AMI가 이미 보급된 아파트단지 2천48가구가 실험 대상이다.
■ 제작·교체작업 오래걸리고 고장도 잦아
AMI 보급이 늦어지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계량기 제작 시 부품을 구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고, 각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계량기 교체 작업을 진행해야해 고객의 동의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기보급된 AMI에서 고장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전은 지난 2010년부터 AMI 보급 사업을 진행해왔다. 10여년간 느린 속도로 보급이 진행되면서, 이미 노후화된 설비들을 중심으로 고장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올해 8월까지 한전에 접수된 AMI 고장·오작동 건수는 누적 29만8천99건이었다. 같은 기간 고장으로 리콜(회수조치)된 계량기는 64만여대에 이른다. AMI 보급에 드는 예산만 1조6천억원 가량으로 추산되는데, 신규 설치비에 추가적으로 재설치비용도 늘어나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까지 단기간에 모든 주택의 아날로그 계량기를 AMI로 바꾸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실증사업을 토대로 우선 준비가 되는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새로운 요금제를 도입해야 할 수도 있는데 같은 주택용 요금제가 지역에 따라 달리 시행된다면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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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전은 이달 30일까지 전기료 약관개정 개편안을 마련하고 늦어도 내년 6월 30일까지 정부의 인가를 받을 방침이다.
한전은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의 합리적 개선, 주택용 계절별·시간별 요금제 도입 등이 포함된 전기요금 체계개편 방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할 것"이라며 "국가적 에너지소비 효율을 제고하고, 전기요금의 이용자 부담원칙을 분명히 해 원가 이하의 전력 요금체계를 현실에 맞게 개편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