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배터리 전쟁, 타협의 길은 없는 걸까

[데스크칼럼] 총수 회동으로 해결책 찾을 수도

데스크 칼럼입력 :2019/09/26 07:58    수정: 2019/09/26 09:42

반도체와 배터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 거의 모든 것의 교차점이다. 디지털 플랫폼 시대 그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도 이 두 개의 코어를 피해가기 어렵다. 이 교차점을 지나지 않는 자는 과거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그 중에서도 전기차 배터리는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산업의 근간이다. 인체의 아미노산처럼 미래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에너지원이다. 퍼스트 마일에서 라스트 마일까지 거의 모든 이동수단이 이 배터리에 의존해야 할지 모른다. 전기차는 스마트 모빌리티의 정해진 미래다. 그래서 배터리 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오는 2025년 배터리 시장 규모는 1천670억 달러(약 200조5천억원)로 성장해 같은 기간 1천500억 달러(약 180조800억원) 규모인 메모리 시장을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 가능성이 크다보니 미래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놓고 벌어지는 기업간 경쟁도 가히 전쟁 수준이다. LG화학을 비롯해 삼성SDI, SK이노베이션, 일본 파나소닉, 중국 CATL, BYD, AESC, 존슨 컨트롤 등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기술 개발(수율)과 생산능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처럼 글로벌 톱5 정도의 배터리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톱3만 남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LG화학 오창공장에서 임직원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LG화학)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를 둘러싸고 서로 상대를 향해 영업비밀 유출과 특허침해 혐의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기술 탈취와 인력 빼가기가 표면적 쟁점이지만 미래 신시장을 선점해야 하는 두 회사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LG화학은 국내 기업 중에서도 일찌감치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공을 들여왔다. 2차 전지사업을 한지 근 30년쯤 된다. 이미 2009년 미국 미시건 주에, 2016년엔 폴란드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지었다. 고객 영업 채널도 다양하게 개척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르노, GM, 포드, 볼보 등 글로벌 톱티어 자동차 업체에 전기차용 전지를 공급하며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故 구본무 회장 때부터 LG화학이 신에너지 분야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막대한 투자와 연구개발에 시간을 쏟아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LG화학은 파우치형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데, 이는 높은 안정성과 고출력, 에너지 고밀도 등이 요구되는 전기차 배터리 기술특성상 오랜 기술 축적과 가용 능력은 바로 시장 경쟁력과 직결된다. LG화학이 소송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고도화된 기술 역량과 지적재산권(특허), 영업비밀은 기업이 피와 땀으로 일군 자산이다. 기업이 이를 지키겠다고 법에 호소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불과 2년 만에 100여명의 자사 인력을 사전에 전략적으로 타깃팅해 빼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핵심기술이 지속적으로 유출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이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상대가 당당하다면 소송을 통해 이를 증명하면 될 일이라고 소송 완주 의사를 비추고 있다. 승소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고 이참에 SK이노베이션의 선봉을 꺾어놓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생산된 배터리 셀을 살펴보고 있다.(사진=SK이노베이션)

그룹 전체적으로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놓칠 수 없는 미래 먹거리다. LG는 자신들보다 늦게 전자산업에 뛰어든 삼성에게 일등 자리를 내줬다. 반도체도 잃었다. SK 품에 안긴 하이닉스의 전신은 LG반도체다. 남들보다 먼저 첨단산업의 씨앗을 뿌렸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꼴이다. 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없지 않다. 배터리마저 후발주자 격인 SK이노베이션에 자리를 내주면 LG는 설 자리가 없다. LG화학에게 이번 소송전은 국익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는 미래 생존의 문제일 수 있겠다.

SK이노베이션도 할 말이 많다. 100% 공개 채용을 통해 경력 직원을 채용했는데, LG화학이 근거 없는 소송으로 대외 신인도와 물량 수주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호소한다. 특허와 영업 비밀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기술과 사람도 흐르게 마련이다. 앞선 기술은 확산되고 모방된다. 좋은 대우와 연봉을 찾아가는 자발적 이직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끼리 소모적인 소송전은 자칫 외국 배터리 기업들만 이익을 볼 수 있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신소재 개발과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에도 바쁜 와중에 우리끼리 집안 싸움을 하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정유·화학 기업에서 미래 신에너지 기업으로 기업 체질을 바꿀려는 SK이노베이션은 그동안 승용 전기차 파우치 배터리 분야에 기술 리더십을 집중해 왔다. 또 세계 최초로 추진하고 있는 폐배터리 재활용 독자기술 개발은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에서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기회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은 매우 한정적 자원이며 가격 변동성이 크다. 언제 고갈될 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기업과 기술자들이 새로운 전극 소재 발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 차원의 우주 사업에 나서는 이유도 지속가능한 자원 확보 때문이다. 배터리를 제어하는 BMS 기술에서도 하이닉스를 갖고 있는 SK그룹이 더 유리하다는 관측도 있다.

양 측의 주장은 아직까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기업 간 지적재산권 침해에 따른 시시비비와 보상은 마땅히 가려져야 한다. 그래야 과감한 선행투자가 이뤄지고 특허기술에 대한 보호 장치도 마련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재 전기차 배터리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는 기업은 없다. 이제 막 손익분기점을 향해 가고 있는 정도다. 아직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배터리 분야가 획기적인 혁신 기술이 부족해 아직은 진입 장벽도 낮다. 추가로 더 많은 기업이 들어올 여지가 있다는 거다. 시장이 성숙되기도 전에 우리 기업끼리 죽자 살자 싸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소송전을 치루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소송은 결국 취할 것은 취하고, 줄 것은 주는 일이다. 양쪽 다 상처뿐인 소송전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관련기사

추석 연휴 직후 두 회사 CEO가 전격 회동하고 아직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는만큼 감정을 추스르고 허심탄회한 협상을 통한 묘수를 발휘하는 방안을 찾길 바란다. 과거 상도에 어긋난 일이 있었다면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된다. 총수 간에 회동이 이뤄진다면 그 길이 빨라질 수도 있다.

메모리 반도체처럼 배터리 산업에서도 국내 기업이 톱2에 올라 경쟁한다면 그거야말로 국익을 위한 길이다. 그 곳까지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 누가 살고 죽을 지 모른다. 그 때 가서 두 회사가 선의의 경쟁을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그 누구도 최후의 승자를 말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