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배터리 싸움 격화...인력유출 논란에서 특허소송까지

양측 주장 '평행선'…업계 "소송 장기화하면 국익에 영향"

디지털경제입력 :2019/08/30 17:11    수정: 2019/08/31 21:59

차세대 먹거리사업으로 부상한 전기차배터리를 둘러싸고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또다시 정면 충돌했다. 올 초 인력유출 논란으로 촉발된 양사의 소송전은 이제는 핵심기술 유출 여부를 따지는 법정싸움 '제2라운드'를 앞둔 상황이다.

두 회사는 지난 2011년 배터리 핵심소재인 리튬이온분리막(LiBS) 특허를 두고 소송전을 벌인 전력이 있다. 당시 소송을 제기한 쪽은 LG화학이었다. LG화학은 자사가 특허를 보유한 분리막 코팅 기법을 SK 측이 침해했다고 주장했지만, 1심과 2심에서 패소 한 후 대법원 판결만을 앞두고 합의해 소송전은 종결됐다.

일진일퇴의 여론 공방전이 예고된 상황에서 양사 갈등의 골은 이미 깊어질대로 깊어졌다. 8년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은 소송을 제기한 회사가 뒤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양대 화학사뿐만이 아니라 LG전자까지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으로 인해 소송전이 그룹간 싸움으로 확전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CI. (사진=각 사)

■ LG "조직적으로 인력 빼가" vs SK "사실무근"

30일 SK이노베이션은 자사 배터리 기술 특허를 침해한 LG화학과 LG전자, LG화학 미국 법인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연방법원에 동시에 제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LG화학 측도 맞소송을 검토하고 있다며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이번 특허소송은 지난 4월 LG화학이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과 ITC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Trade Secrets) 침해 소송'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수년간 핵심 인력을 빼가며 '조직적인 위법행위'를 일삼았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7년부터 자사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R&D)·생산·품질관리·구매·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갔다는 주장이다.

LG화학이 주장하는 입사 서류 핵심 기술 유출 사례. (자료=LG화학)

LG화학은 SK 측이 LG 출신 경력 입사 지원자들의 서류를 통해 배터리 영업비밀을 수집해왔고, 이를 막기 위해 두 차례의 공문을 발송했지만 이후에도 인력 빼돌리기가 계속돼왔다고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하며 향후 법적 절차에 따라 정면 대응하겠다는 입장으로 대응했다. 채용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는 없었고, 경력직으로의 이동은 처우 개선과 미래 발전 가능성 등을 고려한 당사자 의사에 따라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후 한동안은 보도자료 배포를 통한 여론전이 이어졌다. 미국 ITC가 지난 5월 30일(현지시간) LG화학이 제기한 소송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면서 내년 하반기로 예정된 최종판결일까지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듯도 했다.

일본의 무역보복이 기정사실화됐을 때는 양사가 소송을 잠시 멈추고 화해모드로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8년 전 양사를 법정으로 불러모은 '분리막'이 일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었다.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 등 국내 업체에 자사가 양산하는 분리막을 공급할 수 있다고 발언하자, LG 측도 '구매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보이면서다.

LG화학-SK이노베이션 특허침해 소송 일지. (자료=지디넷코리아)

■ 이번엔 SK가 특허소송 제소…그룹간 다툼으로 번지나

그로부터 4개월만에 SK 측이 LG화학 등을 미국 법원에 제소하면서 양사의 법적 공방은 '영업비밀 침해' 논란을 넘어 특허소송으로 재확전됐다.

이번 소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건과는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지만, 이 역시 지난 4월말 소송의 연장선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LG화학도 SK이노베이션 대비 자사 특허 수가 14배 많다는 등의 근거를 들며 맞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SK 측이 주장하는 특허 침해 내용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LG화학과 LG전자의 제품 가운데 상당수가 이번 특허침해 소송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소송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특허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지만, 소송 접수가 완료되면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소송전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불공정 행위가 있었다면 법정에서 시비를 가려야 한다는 입장. 또 다른 하나는 중국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 확장에 나서고, 일본이 핵심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가운데 양사의 싸움이 국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다.

SK이노베이션 연구원이 전기차용 배터리 셀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2011년 12월 시작된 분리막 소송은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후인 2013년 4월 마무리된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번 소송전은 양사의 정면 대결을 넘어 자칫 LG그룹, SK그룹간 대결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이전 소송보다 장기화될 조짐이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SK와 LG의 배터리 사업 시장 타깃, 앞으로의 사업 방향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간의 다툼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면서 "기술유출 분쟁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나중에 탈이 없는 게 당연하지만, 이런 시국에 국내 업체간 분쟁이 길어진다면 양측 모두에 손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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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를 둘러싼 양사의 경쟁이 사실 예견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본격적인 시장 확대에 앞서 배터리 특허 선점이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오는 2025년 배터리 시장 규모는 1천670억 달러(약 202조7천억원)로 성장해 같은 기간 1천500억 달러(약 182조800억원) 규모인 메모리 시장을 앞설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메모리 시장 규모는 연평균 1.8%씩 증가하는 데 반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23%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