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착각과 트럼프의 오판 그리고 삼성

[이균성의 溫技] 위기의 두 가지 얼굴

데스크 칼럼입력 :2019/07/23 10:35    수정: 2019/07/24 15:03

#경제학이 모든 경제 현상을 모순 없이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주식 투자에 꼭 성공한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나의 결과는 반드시 하나의 원인 때문이라고 할 수 없으며, 같은 원인이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수많은 애널리스트의 주가 전망이 사실 동전 던지기 확률보다 더 높지 않다는 현실은 이 점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주식의 흐름도 묘하기 이를 데 없다. 두 회사가 위기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공감되는 바다. 여기서 ‘위기’는 성장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데 경영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위기의 핵심은 아베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소재의 수출을 막으니 위기라고 판단하는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 만찬에서 연설하는 아베 총리. (사진=일본 외무부)

#재미있는 점은 그러한 위기의 원인이 제공된 시점부터 이들 회사의 기업가치(시가총액)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가총액이 높아진다는 것은 주식을 팔려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 회사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 사례는 대형 기금(거대 자본) 중심의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해당 주식을 매집하는 경우이다.

#기업의 미래가치를 예측하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경영학에 기반한 많은 예측 모형이 존재하겠지만 그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솔루션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투자 주체에 따른 정밀도의 차이는 존재한다. 투자해서 자주 따는 사람과 자주 잃은 사람이 엄연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설명하는 데는 책 몇 권으로도 부족하니 일단 그것을 그냥 ‘촉’이란 말로 표현해보자.

#그 촉이 가장 좋은 사람은 누굴까. 한 번이라도 주식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은 거의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외인(外人). 그렇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일일이 알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그들이 사면 오르고 팔면 떨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사실이다. 왜? 촉이 좋고 힘(자본의 크기)이 세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시장 지배자다. 그런 그들이 이 판국에 삼성의 미래에 베팅을 하고 있다.

#외인들은 일본 조치가 삼성에 나쁜 영향을 미칠 독립변수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어쩌면 중장기적으로 악재가 아니라 호재로 봤을 수도 있다. 왜? 일본의 조치가 삼성 반도체의 국제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되레 더 강화시킬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왜? 시장 생태계가 흔들릴수록 지배사업자의 입지는 더 공고해지는 경향 때문이다. 세계 기업이 삼성에 더 목을 매게 된다는 뜻이다.

#아마존 애플 등 미국의 반도체 수요기업들이 삼성을 잇따라 방문하고 있는 게 증거다. 글로벌 시장은 삼성 반도체를 대체할 기업을 찾는 것보다 일본 일부 소재 기업을 대체하는 수단을 찾는 게 훨씬 더 저렴하기 때문에 자본 생리상 필연적으로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베가 이기는 방법은 딱 하나다. 삼성보다 더 좋은 반도체를 더 싸게 팔 일본 기업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외인들은 아베가 승리할 그 유일한 전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챘다. 아베의 경제보복은 무위로 끝날 것이고 그것이 전쟁이라면 패배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베는 미국의 중재 등 적당한 계기를 만들어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글로벌 입지만 더욱 키워준다는 현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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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화웨이 제재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삼성을 압박한다고 애플이 삼성 반도체를 쓰지 않을 수 없듯이 트럼프가 화웨이를 압박한다고 세계 각국의 통신사업자가 화웨이 장비를 안 쓸 이유는 없다. 그건 끝없는 R&D 투자와 기술 혁신으로 치킨게임을 통과한 지배사업자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독재가 민주를 이길 수 없듯이 정치가 좋은 상품에 대한 수요를 막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

#외인들이 삼성과 SK하이닉스 주식을 계속 매집하는 한 이 싸움과 관련하여 시간은 일본 편이 아니라 우리 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나 정치권이나 기업이나 조급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 편이 될 수밖에 없는 세계 각국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다그치는 일에 매진하는 게 최선이다. 물론 아베가 기어들어올 문은 열어놓고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