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의 권익을 찾기 위해 노동계와 산업계가 줄다리기를 해온 것처럼, 최근 플랫폼 노동자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자 이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단체가 본격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상대는 새로운 산업계, 바로 스타트업계다.
54만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을 찾기 위해 지난 3월 발족한 플랫폼노동연대(이하 플랫폼연대)와, 900여개 스타트업이 모인 이익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은 5일 서울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 토론회에 참여했다.
노동자 측 패널로는 플랫폼연대 외에도 기존 가사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를 대변하다 플랫폼 노동자를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라이프매직케어협동조합(이하 라이프케어)도 참여했다. 각 패널은 이성종 플랫폼연대 위원장, 정미나 코스포 정책팀장, 최영미 라이프케어 대표다.
주최 측에 따르면 플랫폼연대 발족 후 코스포와 공개적으로 한 원탁에 앉아 토론회를 연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플랫폼 노동자의 정의 찾기, 플랫폼 노동자의 처우가 낮은 원인 등에 대해 토론했다.
■“플랫폼 노동자 권익 찾기, 우리나라는 이제 초읽기”
플랫폼 노동자는 앱을 통해 중개받은 용역을 수행하는 이로, 현행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2015년부터 우리나라에서 플랫폼 노동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어느 기관에서도 그들 지위에 대한 확정적인 정의를 내놓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일 한국고용정보원이 국내 플랫폼 노동자 현황에 대한 최초 통계를 공개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통계발표 당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해 ‘기존 연구를 종합하면, 디지털 플랫폼의 중개를 통해 일회성 과업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수입을 얻는 고용형태’라고 정의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플랫폼 업체와 파견근로 등으로 고용계약을 맺는 것도, 그렇다고 매번 노동을 제공받는 대상인 일반인 플랫폼 이용자 측과 계약을 맺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낮은 처우를 받기 십상이다. 사업자가 4대 보험을 가입해주지 않으며, 일터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산업재해 처리를 받기 어렵다.
청소 노동자, 콜센터 직원, 베이비시터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동단체는 이들이 법적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지금도 싸우고 있다. 그런데 플랫폼 노동자들의 처지는 특수고용노동자들보다 더 비정형적이다. 고정된 장소에서 일하지 않으며, 실질 사용자를 특정할 수 없는 프리랜서다. 때문에 플랫폼 노동자를 법적 노동자로 인정받기기까지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이성종 플랫폼연대 위원장은 “플랫폼노동자연대가 추구하는 것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아, 노동법의 적용을 받게 하는 것이다”며 “지금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초읽기 상태다. 특히 일하다 다치는 문제, 당장 실업했을 때 겪는 문제, 기존 특수고용노동자처럼 산재보험을 적용시키는 문제 등 사회 안정망을 확보하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플랫폼 노동자들이라고 따로 구분해낼 것이 아니라 우리 연대는 전체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이같은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한국 시스템 상 한번에 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프랑스가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제도를 마련한 선례를 소개했다. 프랑스는 2016년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프랑스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해 ‘전자적 방식의 플랫폼을 이용해 일하는 비임금 노동자’로 정의했다. 독일에서도 디지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산업4.0 개념에 대응해 노동4.0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자가 보통 직장인처럼 월급받는 노동자는 아니고, 건당 수수료를 받고 있다(그러므로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프랑스엔 플랫폼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집단행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미래위원회에서 플랫폼 노동자 처우개선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으나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면러 “오프라인 특수고용노동자가 온라인으로 가게 된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이나 노동관계법상 노동자성을 잃어가는 게 큰 문제다”고 꼬집었다.
■노동자 단체 "플랫폼이 '거래비용 0으로 만들었다'는 거짓"
플랫폼 노동 시장에서 노동 단가가 후려쳐지는 문제에 대해 플랫폼연대 측은 “플랫폼 업체의 리베이트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고, 코스포 측은 “플랫폼 이용자가 내건 조건에 수요가 있는 것이고, 플랫폼 업체는 이용자의 의사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성종 위원장은 “플랫폼 경제에서 노동 거래 비용이 0이 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며 “일단 플랫폼이 수익을 얻기 위해 수수료를 받았기 때문인 이유가 있고, 중간 중개업체들이 끼게 되면 수수료가 커져 플랫폼 노동자들이 얻는 이익은 더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이어 “플랫폼 개발 업체들은 이런 수수료 거품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어하거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려는 것 같지 않다”면서 “왜그런가 하고 봤더니 중개업 하는 분(2차 대행사)들이 플랫폼 기업하고 유착관계가 있었고, 자기 업체 플랫폼을 쓰도록 리베이트를 하고 묵과했다”고 주장했다.
정미나 코스포 팀장은 “스타트업계 내에선 혁신을 종교로 생각하지 않았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스타트업이 모든 문제를 마법처럼 해결하는 만능술사는 아니란 뜻에서다.
정 팀장은 “거래비용이 당연히 0은 아니다, 다만 우리 벤처 2세대들은 용역 중개에 대한 엄청난 옥상옥 구조와 착취를 만드는 다단계를 대체한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과거 퀵서비스 업체나 직업 소개소를 대체한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수수료가 착취인가, 아니다. 정당한 기업의 수익 모델이다”면서 “외국에 비해 수수료가 비싸다면야 논쟁할 여지가 있지만 현재 이들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플랫폼 노동자의 사용자, '갑'은 누구인가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 ‘사용자’가 없다는 점이다. 플랫폼 업체, 파견업체, 플랫폼 이용자 어느 하나 사용자가 되지 못한다. 이에 노동자들이 연대해 직접 플랫폼을 만들고, 법적 노동자 지위를 확보하자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플랫폼 업체는 실질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직원 관리와 교육, 보험 등 체계를 부실하게 운영한다.
최영미 라이프케어 대표는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로 일하면서 보면, 베이비시터 이런 분들은 비공식 노동자들로 취급받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지금까지 쭉 법 적용을 받지 못했다”며 “2015년부터 플랫폼 노동자들이 확 증가했는데, 우리도 이들을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플랫폼 노동자가 소유하는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왜 자본 있는 사람만 플랫폼을 해야 하나, 플랫폼 노동자들도 스스로 할 수 있다”면서 “플랫폼 종사자들을 협동조합으로 어떻게 보호할지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성종 위원장은 “수수료를 가져가는 플랫폼사가 사용자가 될 수 있지만, 플랫폼 노동자가 (2차 대행사 등을 끼고) 복수의 사용자들과 거래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다수의 사용자가 책임을 지고 노사 관계를 특정해야 할 텐데, 이러한 복수 사용자 개념에 대해 작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됐지만 완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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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사회자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도 "기존 플랫폼 사업자만 사용자로 볼 것이냐, 아니면 플랫폼 노동 대리 대행 업자 등 플랫폼 노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사업자들을 모두 사용자로 볼 것인지에 대해 여러 논쟁이 있다"고 부연했다.
플랫폼 노동자 사용자 특정 문제 외에 노동자 개인 사생활 문제도 제기됐다. 토론에 참여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배달앱을 보면 기사들 얼굴이 그대로 뜨는데, 플랫폼 기업은 이런 부분에서의 사생활은 존중해주지 못한다”면서 “기업이 정보를 가지고 있다 사업을 접었을 때에 대한 대비책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