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폭염으로 해마다 요금 폭탄 논란을 야기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도 폐지안이 이번에도 무산됐다. 전기를 적게 쓰는 저소득층의 요금을 올려 전기 다소비 가구의 요금을 깎아준다는 '부자 감세' 논란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다.
다만, 누진제 폐지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에서 최종안이 여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사상 최대 영업손실을 기록한 한국전력공사가 전기료 할인폭을 메워야 해, 국민이 비용 부담을 떠안을 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민관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는 18일 개최된 '제8차 누진제 TF 회의'에서 여름철(7~8월) 전기료 누진구간을 확대하는 1안을 최종 권고안으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 측에 제시했다.
■ 7~8월 누진 구간 확대…누진제 폐지는 '불가'
최종적으로 채택된 1안(누진구간 확대안)은 현행 누진제를 유지하면서 7월과 8월 누진 구간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이다.
이에 따라 전기료 사용량 1단계 구간은 200킬로와트시(kWh)에서 300kWh 이하로, 2구간과 3구간은 각각 301~450kWh, 450kWh 초과로 확대된다.
누진제 TF는 "대다수의 국민이 450kWh 이하의 구간에 위치해 있어 이 방안을 선택할 시 할인 대상이 가장 많다"며 1안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업계는 '정부가 파격보다는 검증된 방안을 선택했다'는 반응이다. 1안은 앞서 지난해 여름 기간동안 한시적으로 추진되는 등, 3개 방안 중 유일하게 시도된 적이 있는 방안이기 때문.
다만 1안은 현행 누진제 틀이 유지되는 측면이 있어, 일시적인 제도 완화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누진제는 전기 사용량이 일정 구간을 넘어서면 전기요금이 배가되는 '징벌적 요금제'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 "누진제 개편안, 결국 여론 담아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최종 권고안이 국민 여론 수렴 결과와 상반되는 방향으로 도출됐다는 비판도 거세다.
앞서 TF가 발표한 온라인 의견수렴 결과에 따르면 일반 시민들은 누진제 폐지안인 3안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일부터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 공청회'가 개최된 11일 오후 4시를 기준으로 한전 의견수렴 게시판에 게재된 의견 870여개 중 3안을 지지한다는 의견은 약 90%에 달했다.
산업부는 3안(누진제 폐지안)이 배제된 이유에 대해 "전력사용량이 적은 가구(1천400만)의 요금 인상을 통해 전력다소비 가구(800만)의 요금을 인하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수용성 검토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대국민 토론회는 왜 진행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여론 조사 당시 3안(누진제 폐지안)을 찬성하는 시민들이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해야한다'는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형평성, 수용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하는 것에는 물론 공감하고, 정부가 그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할 책임도 있다"면서 "시민들의 의견이 묵살됐다는 점에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누진제 폐지가 불발되면서 한전의 영업손실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TF의 예측에 따르면 누진제를 폐지하지 않고 1안을 시행하면 폭염 시 2천847억원 규모의 전기료 할인분이 도출된다.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1분기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한 한전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맡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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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는 "최종 권고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한전의 비용부담을 어떻게 줄일 지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며 "공기업인 한전의 영업손실이 지속되면 결국 부담은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누진제 개편안은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 한전이 권고안을 검토해 '전기요금 공급약관 개정안'을 마련하면, 정부는 전기위원회 심의와 인가를 거쳐 개편안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