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에게도 말했습니다만, 국민은행 파업 시 계좌를 유지해야 하나 옮겨야 하나 생각도 했습니다. 오늘 정맥인증까지 받고 나면 옮기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손바닥 출금' 행사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이다. "최종구 위원장은 국민은행의 40년 고객"이란 윤종규 KB금융회장의 소개에 화답한 말이다. 행사에 참석했던 행원들이 웃자 또 다른 참석자인 김학수 금융결제원장도 "27년, 한 30년 국민은행 고객"이라며 고백(?)했다.
이날 행사는 금융위원회가 유권해석을 통해 정맥인증을 적용할 길을 터주는 자리였다. 길을 터준 금융위원회 수장이 직접 본인인증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힘을 실어주는 자리였다.
행사 내내 이 장면이 뇌리에 남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적절하지 않아 보여서다. KB국민은행을 40년 동안 이용했다거나, 파업 때 주거래 은행을 바꿀 지 고민했다는 발언까지 밝힐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서다. 금융위원장이란 직함이 갖는 무게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아무개가 "30년 동안 KB국민은행을 썼고, 파업 때 계좌를 이동할 지 고민해왔다"고 말한다면 문제될 건 없다. 금융사를 좌지우지할 만한 힘은 갖고 있지 않아서다.
하지만 금융위원장은 다르다. 말 한마디는 곧바로 금융정책의 근간이 된다. 그 금융정책은 결국 금융회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볍지 않은 이유다. 정맥인증 서비스에 가입하기 위해 40년 고객임을 인정해야 했다고 반박해도, KB국민은행과 유리한 정책이 나올 때 최 위원장의 결정은 '객관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전대 금융위원장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주거래 은행 운운하면서 특정 상품을 거론한 적 없다. 괜한 구설수까지 피하는 분위기였다. 금융위가 광화문 프레스센터에 위치했던 시절,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NH농협은행을 그렇게 대했다.
파업 시 계좌를 바꾸겠다는 금융위원장의 말은 윤종규 회장에게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최종구 고객' 입장에서 한 발언이라고 반박하더라도, 금융위원장이란 자리의 무게를 대신하거나 지울 순 없다. 가볍게 웃어 넘기기엔 경솔한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40년 간 국민은행과 거래해 온 최종구 고객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아주 깨끗히 분리해내긴 어렵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이 많아 때론 혼동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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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날 발언이 행사에서 덕담 차원으로 한 말일 수도 있다. 큰 의미 없이 격려하기 위해 한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날 발언은 사려 깊지 못해 보였다. 선의로 가볍게 한 말이라 하더라도 확대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고객' 최종구 위원장의 덕담이 못내 불편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