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암호화폐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시가총액 2위 블록체인인 이더리움을 창시한 비탈릭 부테린이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디코노미)에서 '암호화폐의 근본적인 가치'란 주제로 한치 양보 없는 팽팽한 토론을 벌였다.
두 사람은 지난 해 10월 트위터를 통해 설전을 벌이면서 관심을 모았다. 루비니와 부테린이 같은 무대에 올라 논쟁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루비니 교수는 토론이 시작하자마자 "암호화폐가 기존 금융 시스템보다 중앙화돼 있고 효율성도 낮으며 안전성도 떨어진다"고 몰아부쳤다.
이에 맞서 부테린은 "암호화폐가 정부나 독점적인 기업의 검열에서 저항할 수 있게 한다"면서 이미 실질적인 가치를 사회에 주고 있다고 받아쳤다.
두 사람은 '금융 시스템에 검열저항성이 필요한가'란 주제를 놓고도 한치 양보 없는 공방을 벌였다.
루비니 교수는 "탈세나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만 익명성을 선호한다"며 "검열저항성은 암호화폐의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반면 부테린은 "지금 인터넷 상에서 검열은 점점 심해지고 있으며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암호화폐 기술 분야의 중요한 경향으로 떠올랐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두 사람은 블록체인의 기술적 한계로 알려진 '트릴레마(확장성, 탈중앙성, 보안성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충족하는 일) 해결 문제를 놓고도 팽팽하게 맞섰다.
부테린은 "분산화, 확장성, 보안을 모두 갖추는 일이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며 최근 기술 발전 상황을 설명했다.
반면 루비니 교수는 "완전히 확장가능하고 안전한 분산노드가 가능하다는 것은 그냥 (암호화폐 옹호자들의) 생각일 뿐이다"고 일축했다.
이날 두 사람의 토론은 기존 입장 차만 재확인한 수준에서 끝났다. 어느 누가 우세한 토론을 벌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토론은 그 상징성 만으로 의미가 있다. 루비니는 기존 경제 질서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부테린은 새롭게 등장한 암호화폐 경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의 토론으로 관중들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기존 질서에 도전하며 스스로 가치를 입증해 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다음은 두 사람의 토론 전문이다.
■ 암호화폐, 근본적 가치는 있나 없나?
누리엘 루비니 교수(이하 루비니): 암호화폐는 기존 금융시스템보다 더 중앙화되어 있고 문제가 많다고 본다.
이것(암호화폐)은 화폐가 아니다. 누구나 쉽게 암호화폐를 만들 수 있다. 수천개가 있다. 토큰 발행이 정말 쉽다. 금융시스템도 아닐 뿐더라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결제도 못하고, 안전하지도 않다. 가치를 저장하는 기능도 없다. 가치도 한시간에 20% 증가했다가 또 떨어질 수 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정말 사기적인 시스템이다. ICO 자체가 사기일 뿐아니라 가격조작도 심하다. 월가보다 더 심하다.
암호화폐는 기존 금융 시스템에 비해 훨씬 안정성이 떨어진다. 거래소 해킹도 많다. 전혀 분산화돼 있지 않다. 분산화된 거래소라는 것도 중앙화돼 있다. 하룻밤에 갑자기 부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기존 금융 시스템보다 훨씬 문제가 많다고 본다. 거품이 나타났다가 터지게 될 것이다.
비탈릭 부테린(이하 부테린): 먼저 검열저항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정부는 기업 경영에 비밀리에 개입하기도 하고, 은행 지불 시스템에는 적극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실제 일어나고 있다.
많은 경제 영역에서 독과점도 우려된다. 기업의 영향력이 중앙화돼 있어 (소비자/사용자에 대한) 검열이 일어난다. 그래서 (암호화폐의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검열 저항이라는 측면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암호화폐를 지불에도 쓴다. 언젠가는 (기존 금융 시스템과) 동등해 지는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미 동등한 수준에 이른 것도 있다. 해외 송금이 그렇다.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에겐 더 큰 장점이 있다. 나는 여러 곳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기존 시스템으로) 내가 사는 곳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내 생각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이러한 용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분산화된 금융이 가능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비금융 분야에서 애플리케이션 이용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본다.
■금융 거래에 익명성-검열저항성이 필요한가?
루비니: 법 집행자들은 범죄자들을 검거할 때 암호화폐를 추적하는 것이 쉽다고 얘기한다. 돈이 있는 지갑을 찾으면 범죄 활동들이 눈에 띈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암호화폐가 익명성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미)
하지만 모네로는 익명성이 보장되긴 한다. 그런데, 스위스은행 계좌는 익명성이 문제가 됐다. 그래서 고객확인(KYC)을 하고 모니터링을 하고 세금을 매기는 것 아닌가.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게 보통 금융 시스템이다. 모든 것이 등록해야 제대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탈세나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만 익명성을 선호한다. 이름을 밝힌다는 게 검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부테린: 프라이버시는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프라이버시는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 인터넷을 보면 국가가 검열을 하기도 한다. 파일 공유가 자유롭지 않은 것도 일종의 검열이다. 기술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암호화폐 기술 분야의 중요한 경향이다.
루비니: 정부가 규제를 하는 이유가 있다. 인터넷에서 상당한 자금이 움직이고 있는데, 횡령, 탈세, 테러리즘, 인신매매 이런 불법적인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모든 금융 거래를 익명화하는 데 찬성할 국가는 아무 곳도 없다.
암호화폐의 익명성이 범죄의 특성이 되고 있다. 비트코인이 완전한 익명성을 보장했다면 그 어떤 나라도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크립토는 다음 세대의 스위스은행 계좌가 되어선 안된다. 정부는 익명성을 가진 암호화폐를 옹호할 수 없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말고 문제가 아니다.
부테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탈세는 은행 계좌를 들여다 볼 수 있고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다. 탈세를 하는 건 과세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세계에서 쿠키를 팔았다고 했을 때 판매에 대한 세금을 매긴다면, 그 거래가 회계와 일치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 해야한다. 물론 블록체인, 비트코인을 가지고도 가능하다. 특정한 거래의 세밀한 부분도 증명할 수 있다. 이런것들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 같다.
중앙화된 지급 플랫폼의 문제는 불필요한 여러 정보를 과하게 수집한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트릴레마를 극복할 수 있나?
루비니: 블록체인이 확장성, 탈중앙성, 보안성 세 가지를 다 갖출 순 없다. 중앙화에 대해 말씀드리면 현재 암호화폐는 거래의 확장성이 없다. 비트코인은 초당 7~10건의 거래만 가능하다. 확장성을 높이려면 중앙화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분산화된 상태에선 수많은 컴퓨터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확장성이 없다.
비트코인의 부의 불평등화는 북한보다 심각하다. 개발자의 중앙화도 심해지고 있다. 비탈릭을 독재자라고 부른 것도 그런 의미다. 기존 금융 시스템보다 중앙화된 게 많다.
부테린: 통계를 보면 북한의 지니계수는 0.95이고 비트코인은 지니계수가 0.88이다. 미국은 0.8이다. (*지니계수는 부의 편중을 보여주는 지수로 1에 가까울 수록 불평등함을 의미한다.) 이런 수치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한 사람이 여러 주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측정할 수 없다. 나도 비트코인 계좌만 20개다.
또 분산화, 확장성, 보안을 모두 갖추는 일이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샤딩은 그 기술 중 하나다. 샤딩을 통해서 확장성이 크게 증가될 것이다. 샤딩으로 분산화도 강화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스테이트 채널이나 플라즈마 시스템도 있다. 이런 기술이 현재 존재하고 있고 적극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루비니: 동의하지 않는다. 작업증명(PoW)은 확장성이 없고 지분증명(PoS)은 2013년부터 2년 안에 하겠다고 했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PoS는 더 중앙화돼 있다. 더 많은 권력이 몰려 있어서 안전하지도 않다. 캐스퍼나 샤딩 같은 굉장히 이상한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확장하려면 모든 시스템은 중앙화되어야 하고 보안이 안될 수 밖에 없다. 이 트릴레마(세가지 요소가 얽혀 있는 딜레마 문제)는 절대 불가능하다.
부테린: PoS는 코스모스가 하고 있고 이더리움2.0도 테스넷에서 시작했다. 트릴레마는 분산되어 있는 많은 사람이 모든 거래를 확인해야 한다는 가정에서 생긴다. 트릴레마의 해결책은 검증자를 두고 그들이 거래를 증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기술들이 진전되고 있다.
루비니: 완전히 확장가능하고 안전한 분산노드가 된다는 것은 그냥 (암호화폐 옹호론자들의) 생각일 뿐이라고 본다.
■암호화폐 무제한 양적완화 문제 없나?
루비니: 의견을 말씀드리면, 시장이 붕괴됐다. 지난해 엄청난 가치가 사라졌다. 98%까지 가치가 떨어진 게 1년 안에 일어났다. 실질적인 양적완화를 한다 해도 이런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짐바브웨이나 베네수엘라는 정말 예외다. 그렇다 하더라도 암호화폐가 법정화폐 인플레이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부테린: 미국 달러의 인플레이션의 대안으로 암호화폐가 관심을 받은 게 아니다.
암호화폐 가치가 완전히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초기 자산의 현상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안정성이 돌아올 것이다. 주식, 금 시장을 봐도 똑같은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 지금은 단기적인 현상일 뿐이고 장기적으로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역시 암호화폐 경제성도 개선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암화화폐는 안정적이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 법정화폐를 대체할 순 없다. 틈새를 보고 있다. 아직 실사용사례가 많진 않지만 스마트 컨트랙트 애플리케이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법정화폐를 대체하는 것이 암호화폐의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다.
■ 중앙은행이 암호화폐를 채택하고 있는 추세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루비니: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지 논의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은행이 진짜 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준비금을 보유하는 것이다. 디지털 화폐가 준비금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할 때는 분산원장 방식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발행하게 될 것이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암호화폐와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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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테린: 정말 멋진 생각 같다. 하지만 걱정되는 점도 있다.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에 정부가 모든 거래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금융 시스템은 중개자가 있고, 한개 기관이 거의 수억명의 거래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암호화폐 영향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프라이버시를 가질 수 있다는 거다. 이런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은 중앙은행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