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생리대'와 방심위 제재 피하는 법

[기자수첩] 기부가 제재 피하는 꼼수인가

기자수첩입력 :2019/03/28 09:04    수정: 2019/03/28 09:14

홈쇼핑 방송 표현을 심의하는 방송통심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제재에 논란이 일고 있다.

GS홈쇼핑이 방송에서 '살충제 생리대'라는 근거 없는 단어를 사용해가며 소비자에게 공포심을 조장해 놓고도 '권고'라는 솜방망이 제재를 받아서다. 권고는 방송심의 규정 위반의 정도가 경미한 경우 내려지는 행정지도다. 쉽게 말해 방심위 제재로 방송 사업자인 홈쇼핑사에 어떠한 법적 손해가 없다.

GS홈쇼핑이 법정제재를 피한 비결은 방심위 제재가 결정 되기 전 '셀프 기부'로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이었다. 방심위원들을 크게 감복시킨 요인이 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선행하면 법정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선례가 돼버렸다.

이번 논란은 GS홈쇼핑이 지난 2월 8일 '맥심 하이진 생리대 세트'를 판매하면서 시작됐다. GS홈쇼핑은 생리대 판매 방송에서 '살충제 생리대'라는 근거 불확실한 표현을 사용했다. 방송에서 쇼호스트가 “고분자 화학흡수체 때문에 일명 살충제 생리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좋은 거겠지 하고 믿고 썼는데, 화학물질이었어요. 살충제 생리대였어요"라고 말하는 등 소비자 뇌리에 '살충제 생리대'라는 단어를 심으려고 했다.

'살충제 생리대'라는 단어는 어디서 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생리대에서는 살충제가 검출되지 않았다. 살충제가 검출된 것은 계란이었다.

GS홈쇼핑은 2017년 12월 30일에 나온 '살충제-생리대 말만 들어도…엄마들은 불안에 떨었다'라는 동아일보 기사 제목을 방송에서 인용했다. 여기서 GS홈쇼핑은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살충제-생리대' 부분에서 하이픈(-)을 빼먹은 것이다. 이 때문에 기사 제목은 살충제 생리대가 됐다. 그리고 쇼호스트들은 방송 내내 살충제 생리대라는 단어를 썼다. 소비자 모두 처음 듣는 단어겠지만 '일명'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살충제 생리대를 강조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화학흡수체가 들어있는 생리대를 비방했다. GS홈쇼핑이 화학흡수체가 들어있는 다른 브랜드의 생리대를 판매 중이면서도 말이다. "화학 덩어리를 어떻게 좋게 감춰놔 봤자, 그 안에 화학 덩어리면 끝인거에요", "소중한 내 몸에 제일 소중한 곳에 이걸 닿게 하고 계세요?"라고 표현하며 순면으로 돼있는 해당 제품의 특성을 강조했다.

GS홈쇼핑은 해당 상품 방송을 세 번 진행했다. 네 번째 판매 방송에서야 내부 심의팀이 잘못을 인지하고 사과 멘트를 했다. '화학흡수체를 사용한 제품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고, 공포감 조성을 통해 구매를 유도한 표현을 한 점 정중히 사과드립니다'라고.

또한 회사는 저소득층 여학생 생리대 지원사업에 4천만원을 기부했다. 잘못된 방송으로 인한 반성의 의미겠지만, 법정제재만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GS홈쇼핑의 전략은 잘 맞아 떨어졌다. 4천만원 기부 선 조치에 방심위원들이 감동했기 때문이다. 한 심의위원은 "벌어들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한 것으로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고 본다"며 "추가 조치가 없었다면 법정제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다른 심의위원도 "내용 자체만으로는 법정제재 수준이지만, 이익을 환원한 점을 높이 산다"고 했다. 또 다른 심의위원은 "방송내용을 갖고 제재수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사후 조치보다는 방송 내용을 갖고 해야한다"면서도 "방송사업자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니 권고 의견을 낸다"고 밝혔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발언도 있었다. 심의위원 중 한명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어서 과징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GS홈쇼핑이 스스로 과징금을 부과해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기부, 사회환원을 '셀프 과징금'이라 표현한 것이다. 심의위원 전원이 권고 의견을 내면서 최종 제재도 권고로 의결됐다.

방심위는 방송사업자의 표현을 심의하는 곳이다. 잘못된 표현이 나왔으면 규정에 맞게 심의를 하고, 위반의 정도에 따라 제재를 내리면 된다. 제재 후에도 관리·감독을 통해 규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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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홈쇼핑사들이 방심위 사무처 지적 이후, 법정제재를 피하기 위해 정정방송이나 사과문자 등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행위는 방심위의 지적과 상관 없는 잘못에 대한 반성이고, 당연한 의무다. 방심위 지적 이후에 일어난 홈쇼핑의 사후조치에 감동받을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번 제재가 선례로 남을까 우려스럽다. 이미 업계에서는 법정제재 피하기 위해 뭐든 기부해야겠다는 말도 나온다. 기부는 대가가 없어야 하는 행동 아니었던가. GS홈쇼핑의 기부는 과징금을 받았어도 할 말 없는 법정제재를 행정지도로 바꿔놨다. 소비자 인식에 일반 생리대는 '살충제 생리대'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놨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