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과 태광산업이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 추진을 위해 맞손을 잡았다. 지난해 말부터 양사 간 관련 논의를 시작한 뒤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합병 추진을 공식화하고, 세부 거래 조건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LG유플러스가 CJ헬로의 지분 인수 결정을 내린지 일주일 만이다. SK텔레콤은 급변하는 유료방송 시장에서 미디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실제 최근 유료방송 시장은 IPTV와 케이블TV의 합종연횡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SK텔레콤은 LG유플러스에 앞서 지난 2015년 CJ헬로의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의 합병 인허가 과정에서 발목이 잡혔지만, 일찍이 미디어 시장에서 규모를 키우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과거 CJ헬로 인수합병 추진이 무산되고 3년 뒤 티브로드와 SK브로드밴드의 합병 추진은 모두 SK의 미디어 사업 경쟁력 강화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두 번의 케이블TV 인수합병 시도에서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가 주목된다.
■ MOU부터 맺고 거래 조건 협상
SK텔레콤은 태광산업과 함께 국내외 재무적 투자자(FI)를 대상으로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통합법인에 투자 유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SK브로드밴드를 SK텔레콤의 100% 완전자회사로 전환한 뒤 CJ오쇼핑이 가진 CJ헬로 지분을 인수해 합병에 나섰던 절차와 차이를 보인다.
CJ헬로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인 반면, 티브로드는 비상장회사고 사모펀드 지분이 포함됐다는 점이 과거 인수합병 추진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다.
주목할 부분은 양사가 FI 대상 투자 유치에 나선다는 점이다.
SK그룹 내 M&A 통으로 불리는 박정호 사장이 최근 추진해온 기업 합병 사례를 보면 ADT캡스 인수 때와 유사한 측면이 보인다.
ADT캡스는 M&A 시장에서 약 3조원의 기업가치 평가를 받았다. ADT캡스 인수를 앞둔 당시 SK텔레콤은 도시바메모리 인수에 가장 공을 들였다. SK텔레콤은 ADT캡스의 잠재적인 인수 후보 1순위에 꼽혔지만, SK하이닉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시바메모리 컨소시엄에 자본과 노력을 보다 많이 기울였다.
도시바메모리 지분 참여를 완료한 이후 ADT캡스 인수전에 뛰어든 SK텔레콤에게 3조원의 M&A 비용은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맥쿼리인프라자산운용과 공동으로 ADT캡스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SK텔레콤은 7천20억원 만으로 지분 55%와 경영권을 확보했다.
ADT캡스 역시 비상장회사다. SK텔레콤의 자본 만으로 인수한 회사는 아니지만, 자사의 ICT를 더해 단순 물리보안 회사에서 종합 ICT 보안회사로 키워내 기업공개를 통해 상장 차익을 얻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통합법인도 이같은 전략에 따라 SK텔레콤과 태광산업 간의 세부적인 거래 조건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케이블TV M&A 시장에서 통상적으로 가입자당 인수 가격을 매기면 티브로드는 약 1조2천억원의 가치로 평가받는다. LG유플러스가 CJ헬로 지분을 인수하면서 가입자당 약 40만원의 기업가치를 인정한 기준에 따른 계산이다.
ADT캡스 경영권 확보와 같은 전략이 티브로드 합병 추진에서 나온다면, SK텔레콤이 지출하는 비용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티브로드 합병 추진에서 비용을 아끼게 되면 SK텔레콤은 다른 케이블TV 인수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지난해 상반기 정부 통계 기준으로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통합 법인은 LG유플러스와 CJ헬로의 가입자 기준 시장점유율에서 1% 포인트 뒤처진다. 즉, 케이블TV 2위 회사를 품어도 국내 유료방송 시장에서 3위를 못벗어난다는 뜻이다.
KT 진영과 매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딜라이브와 지주사 전환에도 특별히 M&A 시장에서 관심을 받지 못했던 CMB가 최근 들어 SK텔레콤과 M&A 논의가 본격적으로 오가는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 SK그룹 내 미디어 사업 위치 고민
박정호 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SK텔레콤 외에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도 겸하게 됐다. 박 사장은 SK브로드밴드 대표로 취임한 직후 사내 첫 메시지를 통해 방송통신 융합 1등 회사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사장은 또 새해 들어 지난달 SK브로드밴드 직원과 소통 자리를 갖고, SK브로드밴드의 미디어 사업 경쟁력으로 그룹의 ICT 역량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단순히 SK브로드밴드의 유선 통신 기반 상품과 서비스가 모회사 SK텔레콤의 무선 사업의 번들 상품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디어 사업에서도 자체적인 역량으로 기업가치를 일굴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SK브로드밴드는 옥수수를 통해 OTT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왔고, T커머스 사업을 출범시키면서 미디어 기반 커머스 시장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지상파방송사와 OTT 사업의 협력에 나서는 이례적인 행보도 보였다.
SK텔레콤이 5G 통신 상용화에 앞서 킬러 콘텐츠를 미디어 부문에서 찾는 점도 SK브로드밴드의 지위가 달라진 점이다.
그런 가운데 티브로드와 합병까지 추진하게 되면서 SK브로드밴드의 그룹 내 위치에 관심이 쏠린다.
당장 SK텔레콤은 인적분할이나 물적분할 등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통합법인, 옥수수와 지상파 푹(POOQ)의 통합법인 등 SK그룹의 미디어 사업 방향에 주어진 과제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같은 점도 과거 CJ헬로 합병 추진 당시와 티브로드의 합병 추진이 SK그룹 내에서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부분이다.
■ 규제당국의 인허가 온도 차이도 확연
SK텔레콤이 가장 고민할 부분은 정부의 인허가를 얻어야 하는 점이다. 공정위의 불허로 CJ헬로 인수합병 시도가 무산된 아픈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정부 내 분위기는 방송통신의 융합을 더욱 부추기는 편이고, 공정위원장은 과거 CJ헬로 M&A 불허 결정은 잘못된 일이라는 입장까지 밝혔다.
이는 충분히 과거에 비해 유료방송 시장의 M&A에 대한 정부기관의 문턱은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인허가 과정을 예단키는 어렵다. 방송통신 산업의 경우 단순히 기업결합만 따질 문제가 아니라 케이블TV가 가진 지역성, 방송의 공공성 등도 인허가 과정 속에서 다뤄질 문제이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가 CJ헬로 지분을 인수하면서 합병은 뒤로 미룬 것도 과거 케이블TV M&A 불허를 고려한 이유다.
SK텔레콤은 곧장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을 추진키로 했다. LG유플러스가 정부의 인허가 심사 단계를 일부 줄였다면, SK텔레콤은 케이블TV 사업을 유지하더라도 법인은 합병절차를 다시 밟겠다는 것이다.
업계와 정부, 국회 안팎에서는 LG유플러스의 CJ헬로 최대주주 지위에 오르는데 큰 걸림돌은 없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관련기사
- SKB-티브로드 합병 추진…유료방송 합종연횡 속도전2019.02.21
- [김태진의 Newtro] LGU+는 왜 합병 대신 인수를 택했나2019.02.21
- 유료방송 M&A...찬반 논란 → 인수 경쟁으로 돌변2019.02.21
- 'LG유플러스+CJ헬로'發 유료방송 짝짓기 시나리오2019.02.21
이와 함께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도 무난히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회 한 관계자는 “정부가 LG유플러스의 케이블TV 인수는 승인하면서 SK텔레콤의 케이블TV 인수합병을 또 다시 불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유료방송 시장에서 인수합병 시도는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