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소비'라는 단어가 있다. 생산부터 유통까지의 과정에서 아동 등 부적절한 노동력 착취가 없고 주변 환경도 심하게 훼손시키지 않았으며 공장이나 농장 주변의 마을과 상생한 물건을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최근 국내에서는 이와 비슷한 '착한 소비'란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서울시가 '제로페이'를 선전하면서 내건 문구인데, 내가 제로페이를 쓰면 소상공인들이 가맹점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돼 착한 소비로 이어진다는 개념이다.
옛부터 '상부상조'를 미덕으로 여겨왔던 시민들은 이를 눈감고 모른 척 하기도 어렵다. 퇴직 후 나 역시 생계형 소상공인이 될 수 있다는 갑갑한 현실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한국의 사적연금 가입 비중은 22.7%며 국민연금을 월 200만원가량 수령하는 이는 전국에 9명뿐이다)
그러나 윤리적 소비와 박원순 시장의 착한 소비는 질적으로 차이가 크다. 윤리적 소비는 그런 제품을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최근 아보카도가 마피아 자금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아보카도를 먹지 않겠다는 것은 윤리적 소비지만,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아보카도에 대한 욕구를 참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반면 박 시장의 착한 소비는 소비자들의 결제 다양성을 빼앗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제로페이와 관한 몇 가지를 생각해보자.
하나는 제로페이 가맹점 수수료가 정말 0%냐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전년도 매출액 8억원 이하의 수수료만 0%며 8억원 초과~12억원 이하는 0.3%, 12억 초과는 0.5%다. 매출 규모가 큰 사업장에 최소한의 수수료를 물리는 게 맞지만, 엄격히 따지면 제로페이의 수수료가 제로(0)는 아니란 뜻이다.
또 제로페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카드사를 옹호한다는 식의 흑백논리도 생각해볼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는 본인이 편리한 결제 수단을 선택하고, 원하는 물건을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에는 다양한 카드사와 결제사들이 더 안전하고 편리한 시스템으로 시장의 선택을 받는다. 그런데 제로페이를 쓰지 않으면 나쁜결제가 되고, 제로페이가 시장원리를 거스른다고 비판하면 카드사 편에 서는 것일까. 소비 행위의 종착지인 결제의 다양성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박원순 서울 시장의 행위가 오히려 포퓰리즘은 아닐까.
대한민국의 노후는 굉장히 불안정하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 개인과 기업연금 '3층 연금체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노동하기 싫어한다는 전제 하에 퇴직 후, 연금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은퇴 후 먹고 살 수 있다는 평균 생활비는 월 290만원이지만 국민연금은 평균 수령액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노령층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도 자아를 실현할 만한 직업은 거의 없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자영업으로 뛰어든 수많은 중장년층의 노후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 대신, 서울시는 본질을 비켜간 정책으로 카드사와 자영업자로 구분짓고 싸움을 붙이는 것만 같다.
다양한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로 혁신적 결제 솔루션을 개발하는 와중에, 굳이 몸집이 큰 '관(官)'이 결제시스템을 개발하고 사용을 권하는 과정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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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에 적용되는 QR코드 결제 표준도 관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바람에 카카오페이는 이 사업에 불참하기로 했다. 제로페이의 가맹점 유치가 얼마나 성공할진 미지수이나 정말 '대박'을 친다면 결제 사업자들은 제로페이의 기술 개발 하청업체로 전락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더 나은 그리고 빠른 결제 서비스가 나온다면 제로페이는 다시 이 서비스를 빼앗고 우위에 서려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