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가 새로운 공공의 적(敵)이 됐다. 영세가맹점주와 소상공인들로부터 수수료를 뜯어가는 집단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이런 여론에 떠밀려 신용카드사들은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선 수수료를 낮추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만족스럽지 못한 눈치다. 신용카드는 영세상인의 고혈을 쥐어짜니 '제로페이(서울페이)'를 쓰라고 한다. 그래야 착한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프레임까지 동원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국민 10명 중 7명은 나쁜 소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국내 신용카드 이용률은 69%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페이에 대해 '관제페이'도 아니며 '사회적 협치'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오히려 몇 가지 측면에서 사회통합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지 의구심을 갖게 만들 뿐이다.
서울페이를 쓰는 소비자에게 소득공제를 해주겠다는 당근도 내걸었다. 하지만 편의성을 고려하면 이런 혜택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올 지는 의구심이 든다. 기술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시민들의 소외 문제도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과연 서울페이는 선하며, 공정한 것일까.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서울페이의 핵심 중 하나는 '수수료 0원'이다. 그런데 그 대가로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맺은 페이코와 카카오페이 등 오프라인 간편결제 사업자들은 소상공인과 영세상점의 정보를 확보하게 된다.
한 가맹점을 개척하면 영업사원에게 떨어지는 몫은 15만원선, 이 돈을 들이지 않고도 가맹점을 늘릴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박원순 시장이 특정기업을 몰아주는 것으로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결국 서울시가 세금으로 상인들의 상점 정보를 모은 뒤 오프라인 간편결제 기업에게 예비 가맹점 정보를 주겠다는 얘기다. 현재 카카오페이와 페이코는 오프라인 간편결제 시장 확대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혁신이란 측면에서도 아쉬운 점은 적지 않다. 자본력은 부족하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똘똘 뭉쳐 모바일 지급결제 기술을 개발하던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개발자를 모집한다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00페이'를 꿈꾼 자들은 개발협력업체로 전락하게 될 전망이다. 그렇다고 정부 주도 사업에 끼지 못한다면 살아남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자발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기술이 보급될 수 있다. 보급은 기술을 한단계 발전시키며, 혁신을 낳는다. 강제로 이용하게 하는 건 오래 가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은 세계 무대를 둘러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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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크립토밸리인 주크, 우리에겐 생소한 몰타 같은 곳을 한번 살펴보라. 이들은 신기술에 대한 실험을 주도하며 관련 기업들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그 바탕엔 기업을 육성하고 사용자들의 편익을 증진시켜, 국가의 역할을 해내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성장한 기업들은 다시 글로벌에서 선진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박 시장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고 싶다. 더 이상 착한 시민이 되기 위해 서울페이를 쓰라고 잡아끌지 말라고. 신기술을 통해 인프라 조성에 나서는 '큰 일'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