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 “끼아악!”
고양이와 익룡이 함께 산다.
여기서 익룡은 다름 아닌 고양이를 기르는 ‘집사’다. 괜스레 고양이를 건드려서 손을 물리곤 비명을 내지르는데 목소리가 흡사 익룡과 같다. 최근 구독자 수 41만명을 돌파한 유튜브 채널 ‘아리는 고양이 내가 주인’의 주인공 집사 남기형 씨와, 황금색 줄무늬 고양이 아리의 이야기다. 남 씨의 비명 소리는 영상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특별 음향으로 자리매김했다.
남기형 씨는 지난 2015년 4월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다. 이 채널의 성격은 첫 동영상인 ‘고양이와 사투’만 봐도 알 수 있다. 남 집사는 고양이와 놀면서(괴롭히면서) 자주 할큄을 당하거나 물린다. 이후 올린 영상도 ‘고양이 궁디를 팡팡 해보았습니다(▶영상 확인)’, ‘고양이에게 빗질을 해봤습니다’, ‘고양이와 목욕을 해보았습니다’ 등 고양이가 충분히 싫어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다. 아니, 고양이도 이쯤 되면 즐기는 것일 수도 있다. 남 집사는 일주일에 영상 한 개씩 4년째, ‘주거니 받거니’ 콘셉트를 유지하며 채널을 이어오고 있다.
남기형 씨를 지난 17일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구글캠퍼스에서 만났다. 기자는 영상에서 남 씨의 ‘끼아악’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발성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부산에서 극단 활동을 하다 상경해 최근 대학로에서 새 연극을 준비 중인 연극 배우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꼬불거리는 단발 머리, 수염 탓에 서구적인 인상을 지녔다. 경상도 출신이나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잠시 살았다고 한다. 인터뷰 전 찾아간 자리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원서를 읽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구글캠퍼스는 애완 동물 출입 금지 공간으로 아쉽게도 아리를 만나지 못했다.
■주인공 고양이, 집사는 1인칭 관찰자
남 씨는 아리 영상의 인기 비결에 대해 “아마도 예측 불허성”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신을 펫튜브(애완동물을 뜻하는 펫과 유튜브의 합성어)계 이단아라고 칭했다. 상당수 유튜버가 프레임 중심에 등장해 영상을 이끌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남 씨의 영상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유지한다. 주인공은 당연히 아리다. 라이브 영상 때는 가끔 남 씨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남 씨는 자신이 MC형식의 유튜버와는 다른 이단아라고 표현한 것이다.
남 씨는 “사실 다른 고양이 채널을 많이 안 봐서 모르겠지만 어깨너머 듣기론 내 채널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아리가 내 장난을 다 알고, 또 그것에 군림하려고 하는 콘셉트라고 하는 것 같다”며 “또 들은 피드백으로는 일상에 가장 가깝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다행히 사람들이 재밌다고 생각해주고 많이 공감해준다”고 말했다.
고양이와 관련한 여러 협찬 요청이 들어옴에도 이를 모두 거부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남 씨는 유튜브 광고 수익 외에 협찬 수익은 없다고 밝혔다.
남기형 씨는 “협찬이 많이 들어오긴 하는데, 개인적으로 고집이 있다. 협찬이 들어오면 거기에 맞춰 영상을 찍어야 하는데 그러기 싫었다”며 "내 채널 구독자들은 그것과는 다른 질감의 영상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다만 향후에도 협찬을 받지 않을 계획인지 묻는 질문에는 미소를 보였다.
남 씨가 처음 유튜브에 아리의 영상을 올릴 당시만 해도, 유튜브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물을 올리기 위한 통로였다. 해당 커뮤니티에서 바로 영상을 올리기 어려워 유튜브를 활용했다는 것. 영상 촬영이 미숙해 유튜브에서의 시청 편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세로형 영상이다. 아리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빗질하는 초기 영상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도 퍼져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남 씨는 “아리가 노는 모습을 심심해서 휴대폰으로 찍었고 혼자만 보기 아까워 인터넷에 올리고 싶었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려서 반응이 올라오다 보니 유튜브 조회수도 쌓이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며 채널을 지속할 수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남 씨는 “영상을 10개 정도 올릴 때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채널을 이어올 줄은 몰랐는데, 최근 1~2년 새 유튜브의 위상이 급상승하면서 아리 채널도 함께 성장한 것 같다”며 “난 정말 운 좋게 그 전에 시작했더니 이런 사회적인 현상에 같이 휩쓸려 왔다”고 설명했다.
■아리 일주일 쫓아다녀 영상 한 개...편집으로 재미 배가
아리와의 첫 만남은 부지불식간이었다. 남 씨가 대학시절이던 2010년 여름, 남 씨는 한밤 중에 별안간 인터넷에 ‘고양이 분양’이라고 검색했다고 한다. 검색 결과에는 1분 전 올라온 고양이 분양 글이 떴다. 막 태어난 아기 고양이들을 분양한다는 글이었다. 실제로 한번 가서 봐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게시자에게 연락했고, 다음 날 아리를 만나 바로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남 씨는 “아리와의 첫 만남을 지금 생각해봐도 제가 새벽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운명인 것 같다”며 “갑자기 데려와 서로가 당황하고 놀랐던 게 기억이 난다”고 설명했다.
아리 채널이 지금과 같은 전문 편집 형태의 모습을 갖춘 것은 구독자 약 15만을 돌파한 지난 여름 쯤이었다.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편집팀 ‘눈 프로덕션’과 함께 영상 기획과 편집을 고민하면서 시너지를 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채널명은 집사 본명인 ‘남기형’이었다. 대대적으로 재정비에 들어가면서 채널 이름까지 싹 바꿨다. 이후 구독자 수는 현재 41만까지 급속도로 불어났다.
주로 남 씨가 아리와 함께 일상을 보내다 촬영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는 대부분 남 씨가 생각해낸다. 주로 아침이나 밤에 아리와 촬영한다. 일주일 내내 촬영해도 재밌는 에피소드를 추출할 수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영상은 일주일에 한 편정도가 다다.
남 씨는 “혼자 별의 별 촬영 준비를 다 하면서 영상을 찍는데, 중복 없이 재밌는 영상을 찍으려다보니 일주일에 하나 정도 건지게 된다”며 “아리가 내 말을 알아듣고 척척 연기해주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편집팀의 손을 거치면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서 재치 있는 요소가 드러나기도 한다. 아리 채널을 전적으로 맡는 편집팀의 인원은 2명이다.
남 씨는 “아리는 고양이 내가 주인이라는 채널 이름 디자인이 있는데, 여기서 왕관 그림이 주인이 아닌 아리에 가 있더라”며 “영상 마지막에 눈 프로덕션이라고 같이 뜨는데 이들도 함께 시너지를 내서 인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남 씨는 구독자들과의 강한 결집력을 자랑했다. 가령 시청자가 ‘비명소리가 너무 웃기다’고 댓글을 달면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기보단 ‘차단입니다’라며 장난스런 댓글을 단다고 한다. ‘김메주와 고양이들’, ‘꼬부기아빠’ 등 유명 고양이 펫튜버들과도 댓글이나 이메일로 종종 교류한다.
남 씨는 “시청자들이 아리 편을 많이 들어주고 저를 놀리고 하면서 결집력도 강하다”며 “구독자들과 댓글이나 메일로 서로 반말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어 저희 채널만의 문화, 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받아준 구독자들께도 감사하고 앞으로도 친밀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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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는 고양이 내가 주인'은?
아리는 고양이 내가 주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남기형 씨는 2010년 여름 태어난 지 얼마 안된 황금색 고양이 아리를 분양해 동거 5년만인 2015년 4월 경부터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남 씨는 본업인 연극 배우 일과 유튜브를 병행하며 주 1회 영상을 게재하고 있다. 아리의 손톱을 깎아주거나 털 빗기, 목욕 시키기 등 일상적인 모습을 영상에 담는데 매번 손을 물리서 비명을 지르는 게 재미 요소다. 아리는 주인을 손길을 거부하며 일명 '밀당' 하다 마지못해 손톱을 내주거나 목욕을 완료한다. 한 차례 아리 캐릭터를 굿즈로 만들어 판매한 바 있다.